희소성과 확장성이라는 상반된 2개의 가치를 모두 얻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늘 뉴스레터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 'Louis Vuitton’s Formula for World Domination'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으니, 여유가 되시면 같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달 초 유럽 여행 중,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우연히 거닐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샹젤리제 거리는 주요 명품 브랜드의 매장들이 모두 모여 있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이처럼 여러 브랜드들이 각기 매력을 뽐내던 와중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매장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쿠사마 야요이와의 협업을 알리기 위해, 그녀의 상징인 도트 무늬로 벽면을 장식한 것은 물론, 거대한 쿠사마 인형까지 등장시킨 루이비통의 플래그십 스토어였습니다. 특히 이러한 파격에선, 구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가 쿠사마처럼, 루이비통 역시 헤리티지와 트렌드 모두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고요.
그리고 이러한 미친 존재감만큼이나, 최근 루이비통이 보여준 성장세 역시 눈부십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명품 브랜드 최초로 연 매출 200억 유로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는데요. 이는 한화로 환산하면 약 28조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구찌와 에르메스의 매출을 합한 금액과 비슷한 규모니 정말 엄청나지 않습니까? 더욱이 루이비통의 위상은 매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브랜드 가치 역시 모든 패션 브랜드를 통틀어 1위라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처럼 루이비통을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로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럭셔리 브랜드 특유의 희소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루이비통 고객의 외연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쿠사마와의 협업과 같은 브랜드 캠페인 활동부터, 가격 정책, 유통 전략까지 전방위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하나의 브랜드가 희소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건,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루이비통 만큼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데요. 국내에서 비슷하게 묶이는 에르메스와 샤넬만 하더라도, 범접 불가능한 이미지는 갖추고 있지만, 대신 외형적인 규모의 성장은 어느 정도 포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루이비통이 3대 명품 브랜드라 불릴 정도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항상 수요보다 적게 만들고, 그나마도 쉽게 살 수 없도록 통제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알고 보면 처음부터 루이비통이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일례로 2014년만 해도 핸드백의 절반 이상이 1,500유로 미만의 가격이었다고 하는데요. 2021년 기준으로는 그 비중이 20%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돈이 충분하다고 해도, 루이비통을 쉽게 살 수 없다는 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루이비통의 매장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고요. 현재까지도 직접 판매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속적인 가격 인상과 독점적인 유통 전략은 샤넬과 같은 경쟁 브랜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략이긴 합니다. 다만 이들과 루이비통의 결정적 차이는, 상업성을 추구한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십여 년간 적극적인 외연 확장을 동시에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루이비통은 에르메스나 샤넬과 견줄만한 초고가 핸드백 라인을 꾸준히 늘려왔는데요. 한편으로는 보다 쉽게 고객이 접근 가능한 비교적 저렴한 제품 라인도 꾸준히 출시하였습니다. 취급하는 상품군도 가죽 제품에서 의류, 신발, 보석, 향수 등으로 계속 넓혀가고 있고요. 이로 인해 매장 수는 10년 전과 비슷하지만, 평균적인 크기는 30% 이상 커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확장성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 덕분에 경쟁자 대비 훨씬 큰 규모의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겁니다.
특히 1997년 마크 제이콥스를 크리에티브 디렉터로 기용한 것을 시작으로, 세간의 이목을 끄는 트렌디한 이미지를 선점한 건, 고객 확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더욱이 근래 들어선, 2017년 슈프림과의 협업이나, 2018년 버질 아볼로 영입 등을 통해 젊은 고객들의 열렬한 지지 또한 받고 있기도 하고요. 지금은 럭셔리 브랜드를 넘어, 패션 전반에서 이러한 경계 없는 협업과 확장이 대세가 되었지만, 루이비통은 여전히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으로 움직이는 브랜드입니다. 올해 2월 버질 아볼로의 후임으로 패션 비전공자인 가수 출신 셀럽 퍼렐 윌리엄스를 기용하며 세상을 다시 놀라게 했던 것이 한 사례고요.
당연히 이러한 행보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도 존재하긴 합니다. 때론 명품 브랜드가 장인정신이 아닌 매출과 수익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하고요. 더욱이 이렇게 너무 확장성에 매몰되다 보면, 본연의 희소성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브랜드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도, 루이비통은 희소성과 확장성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지속해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과업인 만큼 그 결실도 달콤하기 때문인데요. 전문가들은 작년 루이비통의 수익 마진이 무려 50%에 가깝다고 추정합니다. 매년 꾸준히 성장하여 수백억 유로에 이르는 엄청난 매출 규모에, 말도 안 되게 높은 이익률까지 정말 사기적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루이비통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아주 소수지만, 비슷한 경지에 다다른 브랜드가 간혹 있기도 한데요. 속한 시장은 다소 다르지만, 나이키가 대표적입니다. 나이키는 D2C를 강화하며 재고를 통제하고, 한정판 전략을 통해 상품 가치를 높이며, 럭셔리 브랜드들의 전략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안 그래도 시장 1위였던 매출 규모를 더욱 빠르게 성장시키며 2위 아디다스와의 격차를 벌리는 중이고요. 또한 패션 브랜드 가치 1,2위를 루이비통과 다투는 최대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루이비통이 패션 브랜드 1위 자리를 두고 펼쳐지고 있는 나이키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찾아야 할 마지막 퍼즐은 역시나 디지털 전환이 아닐까 싶은데요. 명품 브랜드는 온라인 판매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에, 루이비통 역시 이를 잘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게임 산업에 투자하는 등 디지털 채널에서도 고객 경험을 증진시키는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인 걸로 보이는데요. 과연 루이비통이 새로운 혁신을 통해 나이키마저 물리치고 더 압도적인 위상을 구축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