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점은 여전히 재택을 고수하는 일부 기업이있다는 것이다
아래 글은 <맨 노블레스> 2023년 3월 호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너희 회사는 요새도 재택해?
요즘 IT 기업 종사자에게 새로 생긴 안부 인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건 팬데믹 때문이다. 하지만 엔데믹이 찾아와도 ‘네카라쿠배’로 대표되는 테크 기업들은 재택을 없애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 자율 근무제를 도입하는 곳이 생겨났고, 이러한 흐름에 전통적 대기업까지 적극 동참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지난해 말 갑자기 들려온 카카오의 전격적 전면 출근 전환 공지는 시대가 다시 변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카카오뿐이 아니다. 뒤이어 SK텔레콤, 엔씨소프트 등이 대면 근무를 공식화했다. 도대체 반년도 채 안 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애초에 근무 환경이 급속도로 변한 계기는 이른바 ‘개발자 모셔가기 경쟁’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자 테크 기업들은 호시절을 맞는다. 연일 매출과 영업이익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발자의 몸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온라인 기반 서비스를 만들면 반드시 개발 인력이 필요한데, 경력과 실력이 준수한 이들의 숫자는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치킨 게임이 시작된 곳은 게임업계였다. 2021년 3월 넥슨이 재직자 연봉 일괄 800만 원 인상을 선언한 후 연봉 인상 릴레이가 이어졌다. 하지만 무제한으로 연봉을 올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생겨난 것이 복지 경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것이 ‘풀 재택’ 근무였다. 어디서 재택근무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블라인드에선 우리도 따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재택 없이는 이직한다는 협박이 난무하고, 인사팀에선 근무 제도 개선안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5000억 원을 들여 신사옥을 짓고도 주 5일 재택근무를 선언한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연봉과 복지의 증가는 이익 감소로 이어진다. 심지어 일부 중소업체는 인건비부담이 경영 악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시장이 워낙 호황이니 묻혔을 뿐이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악화되고, 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회사들도 결단을 강요받게 되었다. 버티면 줄어든 이익에 화가 난 주주와 투자자들의 압박이 문제고, 그렇다고 임금과 복지를 줄이자니 내부 반발이 문제였다. 차라리 미국의 빅테크 기업처럼 대규모 감원을 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나았을까?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등이 엄청난 직원들을 순식간에 정리했지만, 우리는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건드린 것이 재택근무였다. 이를 폐지한다고 해서 금전적 이익 자체가 크진 않지만, 상징적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고용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재미있는 점은 재택을 고수하는 일부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꿋꿋하게 재택을 지킨 회사들은 앞으로 채용 시장에서 앞서나갈 가능성이 크다. 경영 환경이 악화되어도 재택이라는 약속을 지키는 곳이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출근을 선언해도 여전히 네이버가 재택을 고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재택근무가 고용 시장에서 환영받는 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조만간 다시 유행처럼 번져나갈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