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올리브영이 등장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은데요
아래 글은 2023년 03월 15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작년 12월에 쿠팡과 CJ제일제당이 공급가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드렸던 것 혹시 기억하시나요? 언론에서는 이를 '햇반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유사한 사유로 신경전을 벌이던 롯데마트와는 올해 초 화해를 한 반면, 쿠팡과의 갈등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초 업계에서는 한두 달 이내에 해결될 거라고 봤던 전망이 완전히 어긋난 겁니다.
이렇듯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서, 우려의 시선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CJ제일제당은 지난달에 있었던 컨퍼런스 콜에서, "특정 유통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하게 높은 건 아니다", "다른 플랫폼을 통해 충분히 상쇄하고 있다"라고 밝히는 등, 애써 여유로운 척했지만 뒤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 중입니다. 최근 네이버 '도착보장' 전문관에 입점한 것이 대표적인데요. 여기에 더해 컬리와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컬리 온리' 상품 공동 개발에 나서는 등 전방위적으로 탈쿠팡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소 시간이 더 걸리고 있을 뿐, 둘은 결국 전격적으로 화해할 가능성이 더 크긴 합니다. 아무리 다른 채널들이 있다지만, 국내 최대 유통 채널로 부상한 쿠팡 없이 간다는 건 CJ제일제당 입장에선 아무래도 부담스럽고요. 쿠팡 역시 협상 결렬로 인해 '갑질 기업'으로 인식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싸움은 어떻게 결론이 날까요? 아마 구체적인 내용이 대중에 공개되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갈수록 더 유리한 건, 결국 쿠팡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햇반, 비비고를 비롯한 CJ제일제당의 대표 상품들이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심지어 햇반의 경우, 경쟁사 제품 대비 오히려 비싼데도 선호도가 높기도 하고요. 하지만 햇반은 분명 대체재가 존재하지만, 쿠팡의 로켓배송이 주는 편의성은 그 어디에서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한 차이점입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리는 장을 볼 때 필요한 상품들을 한 번에' 사길 원합니다. 그리고 쿠팡의 로켓배송만큼 '다양한 상품을 묶음배송으로 빠르게 배송'해주는 서비스는 없습니다. 아무리 햇반을 좋아하는 소비자라도, 물건을 따로 사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별도로 구매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거죠. 차라리 햇반 말고 다른 즉석밥을 사면서 쿠팡에서 쇼핑을 하는 것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더군다나 쿠팡이 온라인 장보기 시장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워낙 절대적이기에, 이러한 이탈은 무시할만한 규모가 아닐 거고요.
그래서 결국 햇반의 부재가 장기화되면, 결국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올 여지를 주게 됩니다. 햇반의 품질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즉석밥 브랜드들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요. 분명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햇반을 구매하던 소비자들도 많을 텐데, 이들이 다른 즉석밥들을 경험하게 만든다는 건 결코 CJ제일제당에게 유쾌한 일은 아닐 겁니다.
또한 여기서 더욱 결정적인 건, CJ제일제당이 아무리 협상을 거부하더라도, 쿠팡에선 여전히 햇반이 팔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 판매자들이 햇반을 매입하여 판매하는 걸 막을 순 없으니까요. 특히나 그중에 선 풀필먼트 서비스인 로켓그로스를 활용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기존 로켓배송과의 차이는 없어집니다. 솔직히 쿠팡 입장에선 크게 아쉬운 점이 없는 거지요. 반면에 CJ제일제당은 경쟁자들에게 점유율을 빼앗기거나, 자신들의 통제 없이 상품이 쿠팡에서 판매되는, 2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강제로 골라야 하는 상황이니 둘 중 누가 불리한지는 명백합니다.
이처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 중인 CJ제일제당. 하지만 아무리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더라도 현재의 대처 방식은 아쉬운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지금처럼 유통 채널 다각화에만 너무 매달리는 방법은 한계가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누구나 CJ제일제당이 급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플랫폼들과의 협상 역시,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고요. 무엇보다 네이버나 컬리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다면, 추후 이어질 공급가 협상 과정에서 또다시 잡음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거죠.
따라서 CJ제일제당 같은 제조사들은 궁극적으로는, 매출의 일정 비중 이상을 D2C 채널을 통해 판매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이렇게 되면 플랫폼의 압박에서도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자체 플랫폼을 키우는 건 매우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CJ 더마켓을 비롯하여, 농심몰, 동원몰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D2C 채널을 론칭하였지만, 이 중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곳은 전무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CJ그룹은 올리브영이라는 아주 훌륭한 유통 채널을 가지고 있는데, CJ제일제당이 이를 전혀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건 정말로 아쉬운 일입니다. 올리브영은 오프라인 헬스&뷰티 스토어 시장은 물론, 온라인 뷰티 플랫폼 중에서도 압도적인 1위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온라인에선 컬리와 무신사 등 강력한 후발주자들의 추격에 시달리고 있기도 한데요. 뷰티 카테고리 하나만으론 구매 빈도 측면에서 너무 불리하기에,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둘이 손을 잡는다면, CJ제일제당은 안정적인 판매 경로를 확보하고, 올리브영은 식품 카테고리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이들의 협력이 계열사 간 거래에는 여러 법적 제약이 있고, 대기업 특유의 사일로로 인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충분히 고려할만한 전략적 옵션임은 분명하기에, 실현된다면 상당히 재밌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