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중계 유료화 덕분에, 오히려 리그의 자생력이 길러지지 않을까?
아래 글은 <맨 노블레스> 2024년 3월 호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올해부터 3년간 한국 프로야구(KBO)를 온라인에서 시청하려면 OTT 브랜드인 티빙(TVING)을 통해야 한다. 티빙은 이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 해 기존 가격 대비 두 배 높은 연간 400억 원의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제 돈을 내고 프로야구를 시청해야 하느냐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티빙은 4월까지만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5월 1일 이후로는 이용권을 구매해야 프로야구 중계를 볼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프로스포츠가 탄생한 이래 스포츠 중계는 무료인 적이 없었다. 프로는 아마추어와 달리 돈을 받고 전문 직업으로 삼는 이들을 뜻한다. 그리고 이들이 받는 돈은 중계권을 비롯한 다양한 수입원을 통해 마련된다. 그렇기에 애초 프로스포츠는 돈을 내고 즐기는 것이 맞다. 더구나 해외에서는 이미 스포츠 중계가 유료화된 지 오래다. 온라인뿐 아니라 TV로도 유료 채널로만 이를 시청할 수 있다.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펍에서 모여 이를 관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왜 그동안 스포츠 중계가 무료라고 착각해 온 것일까? 국내 프로스포츠 중계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유료화 없이도, 홍보 효과와 광고 수입을 통한 일부 보전만으로 충분히 입찰에 도전할 만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자 티빙을 비롯한 OTT 플랫폼이 여기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가격은 합리적인데 스포츠 중계만큼 효과적으로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콘텐츠는 드물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시즌은 약 8개월에 달한다. 팬들을 해당 기간 동안 플랫폼에 묶어둘 수 있는데, 가격은 최근까지 200억 원 남짓이었다. 16부작 드라마 시리즈가 최소 100억 원 이상 제작비가 드는 점을 고려하면, 매력적인 가격이다. 티빙이 과감하게 기존의 두 배인 400억 원을 부를 수 있었던 것도 가성비가 좋다는 판단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중계권 경쟁은 어떻게 될까? 아마 점진적으로 유료화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중계권 가격 또한 적정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미국은 이미 애플과 아마존이라는 선례가 있다. 우선 애플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미국의 최상위 프로축구 메이저 리그 사커(MLS)의 10년 장기 중계권을 계약하며 리그를 함께 키워가고 있다. 리오넬 메시를 MLS에 데려올 때 애플이 직접 개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동행으로 작은 리그는 큰 투자처를 만나 성장할 수 있고, OTT 입장에서도 안정적 콘텐츠 수급이 가능해진다. 국내에서는 쿠팡플레이가 이러한 관점으로 K리그에 접근하고 있다.
반면 아마존처럼 아예 가성비를 극대화하는 투자 전략도 가능하다. 아마존은 중계권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지자, 미국 내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인 미국 풋볼 리그(NFL) 중계권을 목요일 경기만 독점으로 확보한다. 해당 프로그램 시청률은 전년 대비 24% 증가했고, 이러한 영리한 접근법을 통해 지난해 아마존은 극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앞으로 중계권 가격이 현실화되고 유료화되면 OTT뿐 아니라 국내 프로스포츠리그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는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해외에 비해 기본적인 팬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구단 운영 수익이 서포터스가 아닌 대기업의 홍보 비용에서 나오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서포터스가 지불하는 돈에 의존하지 않으면, 서포터스를 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유의미한 수익이 중계권을 비롯한 팬덤 기반에서 나온다면 구단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리그의 자생력 또한 점차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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