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공동체가 되어버린 둘, 협력하여 멋진 성공을 거두길 기대해 봅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작년을 기점으로 패션 플랫폼 시장 내에서 1위 사업자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버티컬 커머스 시장에서도 패션 카테고리는 특히 경쟁이 치열하였는데요. 남성 브랜드 패션의 무신사, 여성 패션 브랜드의 W컨셉과 29CM, 동대문 기반의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각축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무신사가 분야를 막론하고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 가운데, 에이블리와 29CM가 각각의 영역 내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잡으면서 어느 정도 시장이 정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온라인 패션 시장 성장률은 급격히 둔화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패션 시장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21년 기준으로 16.9%에 달했으나, 22년 15.2%로 소폭 하락한 뒤, 작년에는 5.4%라는 한 자릿 수로 급락하고 맙니다. 고금리, 고물가로 인한 전반적인 소비 둔화 영향도 분명 있겠지만, 팬데믹 기간에 앞당겨온 성장이 한계를 맞이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리오프닝 이후 오프라인 소비가 회복되면서, 온라인의 성장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는 결국 시장 1위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성장 정체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요.
그렇다면 브랜드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국내 인디 패션 브랜드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일부는 메가 브랜드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무신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입점 브랜드 중 연간 거래액 10억 원 이상을 기록한 곳이 모두 500여 개로 전년 대비 46%나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100억 원, 1,000억 원 이상으로 성장하는 사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보통 국내에서 연간 매출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하면 메가 브랜드라 칭하곤 하는데요. 마뗑킴이 작년 이 고지를 넘어섰고, 마르디 메크르디 역시 올해 달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국내 시장에만 의존한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디 브랜드들이 각광받는 건, 소비재가 취향에 맞게 잘게 쪼개져 소비되고, 또한 여러 인프라의 발달로 누구나 브랜드를 론칭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생겨난 '소비의 파편화' 덕분인데요. 이처럼 정체성이 뚜렷한 만큼 국내 내수 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마르디 메크르디만 해도 올해 해외 매출 목표를 300억 원으로 잡을 정도로 미리부터 준비해 왔고요. 이와 같이 성장 한계라는 장벽을 마주한 패션 플랫폼과 브랜드들은 자연스레 해외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구체적인 움직임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고요. 그렇다면 플랫폼과 브랜드는 과연 글로벌로 향할 때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게 된 트렌드는 플랫폼보다는 브랜드가 더욱 주도권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봅니다. 사실 이미 국내 패션 시장 내에선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이 너무나 압도적입니다. 백화점이 트렌드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무신사 랭킹'으로 대표되는 패션 플랫폼 내 인기도가 브랜드의 성공 척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면 상황이 완전 반대가 됩니다. 브랜드의 인지도가 플랫폼의 것을 뛰어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구글 트렌드를 기준으로 '무신사', '마뗑킴', '마르디 메크르디'라는 3가지 키워드에 대한 관심도를 비교해 보면요. 국내에선 무신사가 비교불가할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며 나머지 둘을 압도하지만, 일본에선 반대로 브랜드들의 관심도가 무신사를 앞지릅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건, 이미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이들 스타가 글로벌 브랜드들의 앰버서더로 활동하는 건 물론, 이들이 입고 먹는 모든 것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자연스레 이들이 착장 한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덩달아 관심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에 더해 브랜드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이미 해외 팬덤을 확보한 브랜드들도 상당수인데요. 이러한 인기는 주요 브랜드들의 오프라인 쇼룸의 외국인 매출 비중이 7~90%에 달하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국내에서 성공하려면 패션 플랫폼이 유일한 선택지인 것과 달리 해외 진출에선 여러 대안들이 존재하는 것도 브랜드에게 힘의 우위를 주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굳이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도, 면세점 입점, 홀세일 계약, 크로스보더 플랫폼, 브랜드 에이전시 등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고요. 면세점과 티몰 같은 채널을 활용하여 중국과 동남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크메드라비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브랜드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상황에서 플랫폼과의 협업은 최선의 해외 진출 옵션이 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일단 패션 브랜드가 단독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현실을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해외 진출을 겨냥하여 브랜드를 운영하기보다는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확장을 하곤 하는데요. 국내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데, 해외 진출은 국내 시장과는 결이 많이 달라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선 홀세일 계약은 고객에게 판매되고 피드백을 받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서 인디 브랜드의 최대 장점인 속도를 살리기 어렵고요. 크로스보더 플랫폼은 브랜딩에서 한계가 있으며, 면세점이나 오프라인 직진출은 일부 대형화에 성공한 브랜드 이외에는 고려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패션 플랫폼들은 이러한 필요들을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통한 해외 진출을 생각하면, 이들의 글로벌 스토어를 통한 판매 정도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백화점 연계 팝업 스토어, 해외 쇼룸 운영 등 필요한 기능들을 대부분 준비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패션 플랫폼이 '해외 진출의 모든 것'을 대행해 주기도 합니다. 에이블리의 일본 서비스, '아무드'가 대표적으로 기존 에이블리와 쉬운 연동 기능을 제공하여, 브랜드와 셀러는 클릭 한 번 만으로 일본 시장까지 판매처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려면 결국 현지 브랜딩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파편화된 소비는 로컬 트렌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이며, 이를 올라타려면 결국 자신들의 뚜렷한 색깔을 드러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플랫폼의 지원은 바로 이 브랜딩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들은 이미 국내에서 브랜드들과 협업을 하여 같이 브랜드를 키운 경험과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미 가장 진도가 많이 나간 브랜드 중 하나인 마르디 메크르디만 해도, 일본 시장 진출 초기에, 공식 온라인 스토어 오픈을 비롯하여, 마케팅, 물류, CS 등 실무적인 부분은 모두 무신사의 지원 하에 이뤄졌다고 하고요. 무신사는 유명 배우와의 콜라보, 백화점 팝업스토어 등을 기획하여 마르디 메크르디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플랫폼들이 이러한 브랜드의 해외 진출 지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패션 플랫폼들이 '플랫폼'으로 해외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국내 시장 주도권 경쟁은 일단락되었어도,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하여 수익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 투자 여력이 부족합니다. 실제로 지그재그는 글로벌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을 정도이고요. 또한 해외 시장에는 이미 터줏대감들이 즐비합니다. 일본의 조조타운, 독일의 잘란도, 영국의 아소스 등이 로컬은 물론이고 글로벌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가격 끝판왕 급인 쉬인이라는 괴물이 영토를 확장 중에 있습니다. 자라나 H&M, 유니클로 같은 거대 브랜드들조차 쉬인 때문에 흔들리고 있고요. 이에 따라 단지 가격 경쟁보다는 브랜드 콘텐츠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직접 진출보다는 브랜드 우회 지원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 건데요. 가장 먼저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W컨셉은 초기 국내 브랜드들의 인지도가 너무 떨어져서 한계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은 브랜드 현지 마케팅에 더욱 힘을 쏟고 있고요. 해외에선 후발주자였던 무신사는 이러한 것을 미리 파악한 것인지, 아예 플랫폼 론칭보다 브랜드 해외 진출 지원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이렇게 브랜드를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사는 2022년 글로벌 스토어를 오픈한 것은 물론, 글로벌 앰배서더로 뉴진스를 발탁하는 등 인지도 올리기에 힘쓰고 있고요. 아예 일본 내 오프라인 거점도 검토 중이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한국 패션 생태계가 커져가고, 구성원인 패션 플랫폼도 성장하는 것이 이들이 그리는 큰 그림일 건데요. 이렇게 일종의 운명 공동체인 플랫폼과 브랜드가 앞으로 손을 잡고 해외 시장에서 더욱 큰 성공을 거두는 소식들이 앞으로 많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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