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유통 채널이 살아남으려면, VIP 고객들을 유지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컬리가 고객 등급 제도를 개편합니다. 7월 1일부터 일정 구매 금액 이상을 충족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컬리 러버스' 제도를 폐지하고, 상위 구매 고객 9,999명을 위한 새로운 VIP 제도를 선보인다고 밝힌 겁니다. 기존의 5개 등급으로 나뉘었던 '러버스'와 달리, 이번 제도에서는 구매 실적 기준 최상위 고객 999명을 VVIP로, 나머지 9,000명을 VIP로 선정한다고 하네요. 혜택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기존에는 최대 7%의 적립을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컬리 멤버스 무료 이용, 무료 배송 쿠폰 증정, 전용 상품 큐레이션 및 전용 상담 라인을 제공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최상위 VVIP 고객에게만 제공되는 웰컴 기프트와 다이닝 위크 경험입니다. 컬리는 컬리 러버스 시절부터 최고 등급인 더퍼플 고객에게 매월 선물을 제공해 왔지만, 이번에는 '디저트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아틀리에폰드'와 협업하여 자체 제작 상품을 선사한다고 하니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죠. 그리고 '다이닝 위크'라는 이름으로 미슐랭 레스토랑과 협업하여 전용 메뉴를 선보이는 오프라인 경험까지 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VIP 제도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백화점이 떠오르지 않으신가요? 우선 최상위 999명을 선정하는 방식 자체가 신세계 백화점의 VIP 클럽 '트리니티'를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전용 큐레이션, 오프라인 경험 등 여러 점에서 백화점 VIP 제도와 상당히 유사한데요,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컬리의 전략적 방향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컬리의 VIP 제도 개편에 담긴 의도와, 이러한 변화가 패션 업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컬리의 VIP 제도 개편은 지난 '컬리 멤버스' 론칭처럼 마케팅 비용 효율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간 컬리가 운영해 온 러버스 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패션과 달리 장보기 커머스는 아무리 부자라도 소비 한계가 존재합니다. 옷은 사서 쟁여놓을 수 있지만, 사람이 먹는 양은 한정적이기 때문인데요. 이는 백화점이 VIP 제도를 활발하게 운영하는 것과 달리 대형마트가 이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운영을 포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컬리 러버스의 핵심은 최대 7%까지의 추가 적립 혜택이었습니다. 많이 사는 고객이 소중한 것은 그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문당 마진이 적은 컬리의 사업 구조 특성상, 러버스는 손익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백화점들은 높은 수수료 마진으로 VIP 대상 추가 할인을 하더라도 총이익이 증가하는 구조였고요.
그래서인지 컬리는 이번에 새롭게 도입한 VIP 제도에서 과감하게 적립 혜택을 없앴습니다. 컬리의 핵심 고객에게서 얻는 총수익은 커지게 된 것이죠. 상위 1만 명으로 고객 수를 제한하여, 전체 VIP 규모를 조정해 비용 통제도 더 용이해졌습니다. 물론 대신에 주는 혜택의 강도는 세져야 했지만요. 등급 산정 기간을 1개월에서 6개월로 바꿨기에, 예를 들어 선물 단가를 올려도 충분히 감당 가능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번 제도 개편은 역시나 비용 절감이 주목적이었구나 싶기도 한데요.
하지만 분명 컬리는 비용 절감 외에도 또 다른 노림수가 있습니다. 전용 큐레이션 및 상품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는데요. 우선 웰컴 기프트와 다이닝 위크를 누릴 수 있는 VVIP와 달리, 상위 9,000명에 달하는 VIP들이 누리는 혜택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입니다. 컬리 멤버스는 유료 멤버십이라 해도 월 1,900원에 불과하고, 무료 배송도 그리 강력해 보이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핵심은 전용 큐레이션과 상품에 있으며, 여기서 얼마나 차별화를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고객의 잔존 수준이 결정될 거라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컬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번 개편을 통해 당장의 비용은 줄어들지 몰라도, 운영 공수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별도의 상품 딜을 만들어야 하고, 다이닝 위크 등 새로운 콘텐츠도 개발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컬리가 상품 공급 업체와 VIP 고객 모두가 만족할 큐레이션을 만들어낸다면, 컬리는 막강한 바잉 파워를 얻게 됩니다. 초창기 컬리의 성공은 차별화된 상품 덕이었습니다. 거래액 규모가 커지면서 이 부분이 희석되었는데요. 이번 개편을 계기로, 다시 과거와 같은 독특한 구색 보유가 가능해진 겁니다. 다소 비싸더라도, 좋은 품질이라면 사줄 확실한 수요를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또한 동시에 상품 공급자들도 컬리에게 더욱 메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소수의 고소득층을 타깃 하는 이들에게 있어 컬리의 대안 판매처를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인데요. 이와 같이 컬리는 VIP 전용 큐레이션 강화를 기반으로 다시 상품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컬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올해 1분기 컬리의 최초 분기 흑자를 이끈 주요 공신 중 하나가 '뷰티컬리'였는데요. '뷰티컬리'는 론칭 당시부터 백화점 1층 화장품 브랜드를 온라인으로 옮겨오겠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부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을 수 있었던 건, 기존 컬리가 가진 프리미엄 브랜딩을 토대로 브랜드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고요. 동시에 비교적 고가의 컬리 상품들을 구매하던 고객들은 소득 수준이 높아, 옷과 화장품에서도 비슷한 소비 성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식품에서 화장품이라는 외연 확장을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거고요. 그리고 앞으로 컬리는 쿠팡, 올리브영 등과 경쟁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 내 백화점 포지션을 강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위해선 프리미엄 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는 고객이 필요하기 때문에, 컬리는 VIP 고객들을 유지하고 더욱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향후 컬리가 뷰티를 넘어 패션과 리빙으로 확장하는 초석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컬리는 올해 들어 패션 카테고리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요. 여기에 합류한 곳들은 삼성물산 패션부문, 코오롱 등 패션 대기업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자사몰의 경쟁력이 상실되면서 마땅한 온라인 판매 채널이 없다는 거였는데요. 고객이 유사한 컬리를 대안으로 테스트 중인 겁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컬리가 패션 구매처로써의 경쟁력은 특출 나지 않아서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이는데요. 컬리가 자신들이 가진 상당한 구매력을 지닌 약 1만 명의 VIP 고객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어필한다면, 앞으로는 충분히 좋은 브랜드들을 더 많이 데려올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명품 버티컬 플랫폼들이 작년을 기점으로 흔들리면서, 해당 시장도 현재 비어 있다는 점도 호재이고요. 이처럼 빈틈들을 컬리가 VIP 고객을 무기로 잘 비집고 들어간다면, 생각보다 빨리 패션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마켓컬리', '뷰티컬리'에 이어 '패션컬리'가 등장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는 겁니다.
물론 컬리가 패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리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건, 식품 카테고리의 힘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식품은 분명 소비 한계를 가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구매 주기가 짧아 고객의 방문 빈도를 유지하고 잔존시키기에 가장 높은 활용도를 가집니다. 이는 최근 백화점들이 식음료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시작으로 엄청난 집객 효과를 체감한 이후, 더욱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가장 주목할만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곳은 신세계 백화점입니다. 올해부터 향후 2년간 미슐랭 가이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VIP 고객을 대상으로 미식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하고요. 이어서 최근 강남점에선 '하우스 오브 신세계'라는 백화점과 호텔을 결합한 공간을 열었습니다. 가장 먼저 미식 공간을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최초로 입점시켰다는 다양한 미식 브랜드와 파인와인 전문관 등을 통해 VIP 고객들을 끌어들일 계획이라 합니다.
온라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화점들이 집객 효과를 위해 식품관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던 것처럼, 에이블리와 지그재그 역시 푸드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푸드 상품을 통해 거래액 성장을 만들겠다 보다는 고객 확장과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큰 것으로 보입니다. 푸드 상품들은 구매 주기가 짧아서 고객들이 더 자주 방문하고 사게 만들 수 있고요. 이는 곧 플랫폼 전체의 로열티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각기 목적에 따라 장보기 커머스는 패션으로의 확장을 꿈꾸고, 패션이 주력인 채널들은 식품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한 모든 것들은 사실 모두 양질의 고객을 확보하고자 하는 액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요. 앞으로 결국 유통 채널들은 더 많은 양질의 고객들을 유지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이를 위해 고객들과 더욱 깊은 유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VIP 제도도 바꾸고, 푸드 카테고리도 강화하는 것도 결국 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고요. 더욱이 구매력이 뛰어난 고객은 한정되어 있고,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고객들을 두고 여러 유통 채널들이 경쟁하는 모양새가 될 겁니다. 과연 이러한 노력의 끝에 누가 최종적으로 VIP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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