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고인의 마지막 영화

by 배윤성

제 첫 소설 "충무로 디스토피아"

연재합니다. 관심의 댓글 무조건 환영합니다.


현직 영화 프로듀서가 직접 집필한 따끈한 데뷔작!


​제1화. 고인의 마지막 영화


"컷. 다시."


나는 배달통을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조명이 엉망이다. 복도 센서등이 너무 창백한 형광색이라 짜장면 랩의 윤기가 살지 않는다. 이건 느와르가 아니라 싸구려 호러 톤이잖아.


나는 발로 바닥을 툭 차서 센서등을 껐다. 칠흑 같은 어둠. 스마트폰 플래시를 켰다. 각도는 45도 상단, 렘브란트 라이팅.


찰칵.


화면 속 짜장면과 단무지가 비로소 처연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완벽하다. 고객이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느낄 식욕과 연민, 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담아냈다.


[배달 완료. 사진이 전송되었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아저씨! 문 앞에다 두고 가시라고 했잖아요! 왜 안 가고 서 있어요?"


벌컥 문이 열리고 슬립 차림의 여자가 튀어나왔다. 302호 여자. 나의 관객이자, 별점 테러리스트.


"죄송합니다. 호수가 사진에 나와야 하는데 너무 어두워서..."


"아 어딜 봐요? 미친 거 아냐? 빨리 가세요!"


쾅. 문이 닫혔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헬멧을 고쳐 썼다.


2030년, 서울. AI 드론이 하늘을 뒤덮은 시대라지만, 드론 놈들은 이런 달동네 골목길까진 못 들어온다. GPS가 안 터지는 낡은 빌라,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그런 '음영 지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내 이름은 박찬혁. 15년 전, 나는 충무로의 라이징 감독이었다. 내 데뷔작 <새벽의 추격자>는 관객 274만을 동원했고, 제작사 대표들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시나리오 한 장만 달라고 애원했었다.


지금? 지금 나는 '쿠팡이츠 휴먼' 배달 기사다. 내 유일한 관객은 짜장면이 불었다고 리뷰에 1점을 남기는 302호 여자뿐이다.


"띠링-"


[오늘의 수익: 52,000원]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5만 2천 원. 10년 전, 내 영화 현장에서 조감독들에게 회식하라고 주던 돈에도 한참을 못 미친다.


'그만하자.'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며 자위하는 것도 지쳤다.


그 때 문자 알람이 울렸다, “부고. 故오현수 님이 금일 작고하셔서 부고를 전합니다. 빈소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 시대의 마지막 휴머니스트로 꼽혔던 내 마지막 사수. 오현수 감독님이 돌아셨다고? 연락을 못 드린지 벌써 3 년이나 지났다. 그 사이에 감독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인가.


급하게 오토바이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요즘에 내 나이에는 거의 경사가 없다. 매번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잔뜩 들린다. 부친상, 모친상, 빙부상...


검은 양복도 없어, 오랫동안 입던 짙은 색 자켓 하나만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고양 시민 장례식장.


감독님은 돌아가셔도, 그 흔한 대학 병원 장례식장에도 못 들어갔나보다.



"조명 꼬라지 하고는."


나는 국화꽃을 놓다 말고 미간을 찌푸렸다. 영정 사진을 비추는 핀 조명의 색온도가 너무 높다. 창백하다 못해 시체처럼... 아, 시체 맞구나.


향을 피우고 절을 두 번 올렸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내리며 배달을 한 탓이다.


상주도 없는 텅 빈 빈소. 오직 거대한 벽걸이 모니터만이 웅장한 음악을 토해내고 있었다.


[故 오현수 감독 추모 영상]


화면 속에는 생전 오 감독님이 그토록 혐오했던 '매끈한 CG' 범벅이 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평생 찍은 거친 질감의 필름 영화들을 AI가 학습해서 '리마스터링' 한 것이다. AI로 생성된 오 감독님의 현장 지휘 영상이 쉼 없이 멋지게 돌아가고 있었다.


"감독님, 저거 보이십니까? 감독님이 평생 찍고 싶어 했던 스펙터클이 저기 있네요."


나는 영정 사진을 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10년 동안 영화 한 편 못 찍고 굶어 죽은 그가 남긴 유작이... 저 영혼 없는 AI 영상이라니. 저것도 알고 보면 새 정부가 공약한 맞춤형 AI 복지 서비스였다. 고인의 생애를 돌아보는 영상 전 국민에게 기본 제공. AI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이었다.



"어이구, 박 감독. 왔어?"


등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낡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소매 끝이 다 해진 양복.


김태수 작가였다. 현직 'AI 감정 데이터 라벨러'. 하루에 수만 건의 텍스트에 '슬픔', '분노' 태그를 다는 인간 기계.


"얼굴이 반쪽이네. 밥은 먹고 다니냐?"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 다 그렇죠. 작가님은요?" "나야 뭐... 기계들한테 '인간의 눈물' 가르치느라 눈 빠진다."


김 작가가 향을 피우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텅 빈 식당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육개장 그릇에서 올라오는 김이 유난히 처량했다.


"다른 사람들은요?" "올 사람이 있나. 다들 살기 바쁘지. 영화판 망하고 나서는 부고 문자도 스팸 취급하잖아."


그때였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우당탕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잠시만요! 장비 좀 들어갑니다! 아우, 무거워."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쏠렸다. 마치 <고스트버스터즈>처럼 등에 거대한 기계통을 메고, 한 손에는 소총 같은 흡입 노즐을 든 남자. 작업복 위엔 하얀 먼지가 수북했다.


<스마일 홈케어 - 매트리스 진드기 박멸 팀장 남정식>


"아니, 형! 장례식장에 그걸 메고 오면 어떡해!"


내가 소리치자, 남 대표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왔다.


"야, 말도 마라. 여기 오는 길에 오피스텔 작업 하나 뛰고 왔어. 딜리버리해주는 차가 급하게 내려주고 가버렸어. 인정머리 없는 자식"


그는 쿵, 소리를 내며 거대한 진드기 청소기를 테이블 옆에 내려놓았다. 15년 전, 영화판에서 투자사와 드디어 도장을 찍었다며 "하하하 박 감독 해보고 싶은 거 이번에 다 해봐!"라고 외치던 제작자 남정식 대표. 그가 지금 내 눈앞에서 육개장 국물을 옷에 튀겨가며 허겁지겁 밥을 말아 먹고 있다.


"오 감독님도 참... 갈 거면 좀 곱게 가지. 고독사가 뭐냐, 고독사가."


남 대표가 소주잔을 채우며 탄식했다. 그의 말대로 오 감독은 월세방에서 일주일 만에 발견됐다. 사인은 영양실조 및 합병증.


"그래도... 마지막 관객은 있었네." "누구?" "AI 스피커. 발견될 때까지 계속 클래식 음악 틀어주고 있었다더라. 그래도 생존 반응 통보해서 주민센터 직원이 일찍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김 작가의 말에 우리 셋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인간이 떠난 자리를 기계가 지키는 세상. 벽걸이 TV에서는 여전히 AI가 만든 오 감독의 가짜 인생이 화려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마시자."


내가 잔을 들었다.


"감독님 가시는 길, 우리라도 떠들어 드려야지." "그래. 우리끼리라도 '오케이' 사인 내 드려야지."


짠. 세 개의 소주잔이 부딪쳤다. 탁한 소리가 났다.


빈소에는 우리 셋, 그리고 진드기 청소기 한 대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잠시 후 이 적막한 장례식장이, '난장판'으로 바뀌게 될 줄은.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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