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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Aug 20. 2023

이상한 날

조난을 당해 만난 좋은 사람들


 자이언 국립공원의 사우스 캠핑장에 머무른 적이 여러 번 있다. 전에는 못 느꼈는데 작년과 금년에는 밤에 바람이 몹시 불었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아니라 텐트기둥이 무너질 정도라는 거다.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 미국의 네 귀퉁이를 다 다녀 보았지만 여기처럼 바람이 센 곳은 경험하지 못했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너무 심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밤새 잠을 설칠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텐트가 무너질까 봐 걱정도 되고 바람이 텐트에 부딪치며 펄럭이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이래 저래 잠을 설쳤다. 


 고대하던 투윕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세수하고 커피 끓여마시고 아침도 든든하게 잘해 먹고 텐트를 걷는데 기둥이 접어지지를 않았다. 접어지지 않는 텐트는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2013년 8월 , 텐트를 사서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플로리다에서 메인까지 미국의 구석구석을 같이 다녀 준 텐트다.

9년 전  투윕캠핑장에서 당당했던 우리 텐트는 9년 후 투윕을 가는 날 수명을 다 했다.

9년 동안 참 많은 곳을 같이 다녀준 제2의 우리 집이 수명을 다했다. 섭섭했지만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자이언 국립공원 캠핑장의 대형 쓰레기통에 넣어 보내주었다. 마음이 짠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투윕은 그랜드 캐년에서 가장 외진 곳, 그곳에 가려면  텐트가 꼭 있어야 한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세인트 조지로 텐트를 사러 가는 중에 엔진에 이상이 있다는 경고 불이 들어왔다.  세인트 조지의 현대차 딜러에 전화를 했더니 운전을 하지 말고 서있으라고 했다. 무슨 이상이 있는지 모르는데 계속 달리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토잉카를 기다렸다.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으아... 이건 아닌데....

30분쯤 기다리다 시동을 걸어보았더니 경고등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딜러에 전화하니 살살 와보라 했다. 딜러에서 조사하더니 혹시 가솔린을 어디서 넣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시골길을 지나다 질이 좋지 않은 기름을 넣으면 그럴 수도 있는가 보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아이스박스에 얼음도 채우고 타이 식당에 가서 점심도 먹고 투윕을 향해 출발했다.

길 상태가 9년 전보다 더 나빴다.

비 포장도로를 두 시간 정도 달려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공원 사무실에 도착하니 샐리라는 자원봉사 레인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었다. 공원 사무실에서 보내 준 허가서를 받고 기다렸다고 했다. 그녀의 밝은 미소에 여기까지 오느라고 한 고생이 다 사그라들었다. 여기서부터 6마일이 좀 험하다고 조심해서 잘 가라고 말해주었다. 한번 왔었노라는 말에 그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도 해 주었다.

여기 오려고 차도 새로 샀는데 지난 2년 동안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바로 그 투윕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목적지로 향했다.

길은 점점 험해졌다.

마지막 1.6마일을 남겨놓고 차가 헛바퀴를 돌더니 바싹 마른 사막의 모래와 바위 사이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난감했다. 여긴 하루에 차가 한대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이다. 9년 전 왔을 때 우리 말고 딱 한 명이 있었지만 그 사람은 일주일 동안 캠핑장에서 책만 읽던 사람이다. 해는 뜨거웠고 한 시간이 넘도록 도와줄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다. 


 차가 한대 왔다. 피닉스에서 온 오웬(Owen)과 짐(Jim) 그들의 배우자가 도와주려고 했지만 장비가 없어 속수무책이다. 

두 시간 후 또 한대가 왔다. 나무 판때기를 차 밑에 깔고 빠져나와 보려고 했지만 실패. 캠핑장에 가서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아보겠다고 갔다.  


 또 한 시간이 지나고 차가 한대 왔다. 도와주고 싶지만 투입의 해지는 것을 보려고 몇 년을 별러 왔다며 그냥 갔다.

또 한 시간 후 세인트 조지에서 아들과 함께 온 벤 오브라이언이 차를 멈추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캠핑장으로 장비를 가지러 간 오웬과 짐, 벤이 힘을 합쳐 자기 일처럼 시도했다. 

이번에는 검은색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 텍사스에서 온 두 남자다. 

자기에게 밧줄이 있는데 뒤에서 잡아당기면 차 아래 혹시 흠이 생길 수도 있는데 우리가 허락한다면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하자고 하니 자기차에 밧줄을 매어 아주 조심스럽게 뒤에서 잡아당겼다. 너무나 다행히 차가 잘 빠져나왔다. 


우리 차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우리 차는 그곳에 세워두고 

캠핑장비는 벤의 차에 싣고 우리 두 사람은 오웬의 차를 얻어 타고 캠핑장을 향했다.

캠핑장에서 오웬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투윕으로 해 지는 걸 보러 왔다는데 우리를 도와주느라 일몰 시간이 거의 다 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벤의 차를 타고 투윕전망대로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해가 이미 내려간 후였다. 9년 전 왔을 때도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내려간 후였다. 그게 아쉬워 이번에는 일찍 출발해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생겨 아쉬웠다.


벤과 그의 아들 토마스



캠핑장비만 남의 차에 겨우 싣고 와서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벤의 아들 토마스가 사과 한 알, 물 한병 크래커 한 봉지, 빵 하나를 가져와 먹으라고 주었다. 눈물이 나게 고마웠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하루 지난 보름달이 떠올랐다.

코로나로 여행을 하지 못할 때 가장 오고 싶었던 곳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 보았던 그 많은 별들이 달빛 때문에 많이 보이지 않았다.

참 길고 힘든 날이었다. 10년 가까이 온 미국땅을 돌아다닌 텐트가 망가지고 새로 산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고 

편하게 여행했을 때는 만나지 못할  정말 친절한 사람들을 위험한  일이 생긴 덕분에 여럿 만났다.

 세상에는 아직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이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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