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박 2일로 서울 잠실(蠶室)을 다녀왔다. 새삼 잠실이 다시 보였고 롯데그룹의 고 신격화 회장이 참 대단하다 느껴졌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졌다. 한편 신격호 회장이 건설한 롯데월드에 빌붙어 먹고사는 MBC의 기생은 퍽 이채로워 보였다. 첫째아이 라온이가 키자니아(kidzania)로 어린이집 졸업여행을 다녀온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그 일을 두고 둘째 바론이가 무척 부러워하며 제 형에게 미주알고주알 묻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키자니아는 롯데쇼핑센터 안에 있는 체험형 테마파크이자 직업체험장이다. 아내는 라온이 어린이집 졸업을 기념하고 바론이 키자니아 체험을 위해 서울 롯데호텔 1박을 계획했다. 우리는 그리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 대신 고층건물로 빙 둘러싸여 공기 나쁘고 물 나쁜 잠실로 간 것이다. 체크인한 첫날에는 롯데월드를, 체크아웃한 둘째날에는 키자니아를 갔다.
2.
잠실처럼 누에(蠶)와 관련된 지명은 거개가 조선시대 대규모 뽕나무밭이었거나 누에를 대량으로 치던 양잠소가 있던 곳이다. 잠실 옆의 잠원도 마찬가지. 잠실은 문자 그대로 ‘누에의 집’이었던 만큼 조선사회를 지탱했던 농업과 함께 양잠업의 메카였다. 그 명성에 걸맞게 이곳에는 국립양잠소 ‘잠실도회’가 설치됐다. 잠실도회는 지금의 서대문구 연희동 쪽에 있던 서잠실과 함께 설치한 동잠실이다. 잠실이란 지명은 세종 때 명명됐다. 서초구 잠원동의 잠실은 송파구 잠실보다 늦게 생겨 신(新)잠실로 불렸다. 이후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잠실리의 잠(蠶) 자와 인근 신동면 신원리의 원(院) 자를 따서 잠원(蠶院)으로 바꿨다. 잠실과 잠원에서 전해오는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누에 치는 이가 모두 여자였기로 감독관이 궁궐의 환관 곧 내시였다는 것이다. 스캔들의 원천 차단. 양잠업이 얼마나 중차대한 국가기간산업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랄 수 없다. 한편 경복궁에는 고종이 직접 관리하는 뽕나무밭이 있었고 왕비가 손수 비단 짜는 시범을 보이는 ‘친잠례’가 때때로 열리기도 했다. 고종은 뽕나무만 손수 관리한 게 아니라 궁내에 논을 두어 두 팔을 걷고 모심기도 했다. 이것들의 바탕은 본질적으로 균전제라는 징수제에 있었다. 한편 경북 상주시 두곡리 은척면에는 수령(樹齡) 300년(추정) 된 뽕나무 노거수가 있다. 뽕나무가 이렇게나 오래 사는 것도 신기하지만 높이가 자그마치 12m, 둘레는 2.7m인 것도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이 노거수에서 아직도 누에고치 30㎏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의 뽕잎을 매년 낸다는 건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이다. 이 ‘은척면 두곡리 뽕나무’는 상주의 오랜 양잠 역사와 전통을 입증해주는 기념물로 지난 2020년 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앞서 1972년 12월 29일에는 ‘은척면의 뽕나무’로 경상북도기념물에 지정됐다. 근 50년을 더 살아 꼭 300살에 이르러 국가도 인정한 귀한 유산이 된 것이다.(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뽕나무는 수령 600년(추정) 된 강원 정선 봉양리 뽕나무로 알려져 있다.)
3.
롯데월드는 ‘신격호의 월드’다. 신격호의 월드는 사실 ‘박정희의 월드’였다. 박정희의 월드를 위해 삼성창업주 이병철과 현대창업주 정주영 두 걸출한 쌍두마차가 선봉에 섰다. 1970년대 강남개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은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그야말로 뽕나무밭이 변해서 푸른 바다가 된 격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비만 오면 한강이 범람해 ‘사람 살 곳 못 됐던’ 뻘밭 천지를 박정희의 지시로 이병철이 메우고 정주영이 아도치다시피 해 그 땅을 매입했다. 박정희 정부는 국가기간산업으로 강남개발에 나섰다. 그리 강남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천지개벽 상징이 됐다. 정주영이 압구정을 알차게 먹었다면 신격호는 잠실을 일거에 점령했다. 1973년 박정희는 일본에 있는 신격호를 불러다가 호텔사업을 떠맡긴다. 여기엔 비사(祕史)가 있다. 1970년 11월 서울시의 대대적인 부정식품 단속 결과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 정부는 이를 구실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던 신격호를 호출해 ‘딜’을 한다. 호텔사업을 맡아주면 롯데제과의 영업정지처분을 해결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박정희기 이런 제안을 한 까닭은 당시엔 고급호텔이 없어 국빈들이 방한했을 때 묵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고 국가가 운영하는 호텔은 만년적자였기 때문이었다. 신격호는 잠실에 롯데호텔을 짓는 중에 호텔 옆에 롯데백화점을 짓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엔 정부의 강력한 도심 과밀화 억제정책으로 백화점 허가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외국인 투숙객을 위한 쇼핑시설 건설을 명분으로 허가를 받았다. 이후 설계를 변경해서 허가 때보다 훨씬 크게 지어 롯데호텔과 동시에 롯데쇼핑센터를 완공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그해 그달의 일이다. 다음은 신격호의 생전 인터뷰. “박정희 대통령이 나를 청와대로 불러 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반도호텔과 워커힐이 적자가 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운영을 민간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시면서 인수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호텔경영에 대해서는 경험도 없었고, 생각도 한 적이 없었기에 반도호텔만을 인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새 호텔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8층짜리 호텔을 한창 올리고 있는데 대통령 경호실에서, 호텔에서 청와대가 보이게 된다면서 18층까지만 지으라고 했습니다. 38층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고 있는 건물을 어떻게 반 토막낼 수가 있겠습니까. 기술적으로 불가능했지요. 그래서 제가 청와대와 당시 국무총리에게 진정을 하여 본 계획대로 38층짜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신격호와 박정희의 첫 만남은 1963년이었다. 이때 신격호는 박정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은 신격호 앞에서 일본의 경제통계를 자세히 인용해 가면서 어떻게 하면 일본의 선진 경제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인가 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격호는 ‘군인이 어떻게 저렇게 경제문제와 통계를 잘 파악하고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저런 사람이 지도자로 있는 한국에는 투자해도 안심이다’란 판단이 섰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 이미 부자가 된 신격호는 생전 인터뷰에서 모국 투자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일본 내 인사들은 백이면 백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 투자를 만류했다고 한다.
4.
생전 신격호는 기자를 상대로 롯데월드에 대해 이런 답변을 유도한다. “롯데에 한국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나. 좋게 보고 있나 나쁘게 보고 있나.”(신 회장) “어린 시절에 롯데월드에서 즐겁게 놀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롯데에 있습니다.”(기자) 신격호가 바란 대로 꾀한 대로 우리가 간 롯데월드엔 주중임에도 추억쌓기 중인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실내 공기는 매우 나빴다. 라온이 바론이는 아직 이런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퍼레이드를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나는 ‘탈출’을 모색했다. 롯데월드 안에서 점심을 먹자는데 이건 도무지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싶었다. 내 돈 내고 내 시간 쓰고 짐승마냥 먹어야 하는 이 상황을 나는 참아내지 못했다. 식당마다 만원이었다. 아이들이 먹고싶다는 피자가게는 189번째로 예약됐다. 189번!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예약번호였다. 결국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퍼레이드를 볼 요량으로 추러스가게 앞에 줄을 섰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라온이에게 야멸차게 말했다. “라온아, 세상에는 해야 할 경험과 할 수 있는 경험이 이것 말고도 무진장 많단다. 이런 경험은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거란다. 이건 정말이지 개돼지나 할 경험이지 생각 가진 인간이 할 경험은 아니란다. 두 번 다시 이런 경험을 갖지 말도록 하자.” 그 길로 아이 손을 붙잡고 그 인간지옥을 탈출했다. 롯데백화점 식당에 가 아이들이 피자 대신 고른 돈가스집에서 호의호식했다. 아내도 비로소 탁월한 선택이라고 치켜세웠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맛있는 돈가스와 메밀국수는 처음 먹어봤다. ‘신격호 월드’의 맛집 수준은 놀라웠다. 그런 돈가스와 메밀국수는 매일 먹으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호텔을 찬찬히 살펴봤다. ‘아니 1970년대 지은 호텔이 이렇게나 견고하고 우아할 수가 있나.’ 롯데호텔 건설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참고가 되는 신격호의 말이다. “롯데월드타워의 모든 기록은 역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공간의 효율성보다 구조적 안전성에 최우선을 둬 설계했다. 40층마다 대나무의 마디 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설치했다. 진도 9도의 강진과 초속 80m의 바람에도 견디도록 했다. ‘앞으로 지진이 나면 무조건 롯데월드타워로 대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롯데월드타워에 적용된 설계와 핵심 기술은 이전의 대한민국 건축사에서는 볼 수 없던 것들이 많다.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은 매 순간이 새로운 시도였고, 모든 결과는 대한민국의 신기록이었다. 장부상으로는 회수 불가일지 몰라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얻는 무형의 이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서울의 품격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이 프로젝트는 사업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다만 타지에 가서 번 돈으로 한국에 좋은 건축물, 국제적 명물로 한국이 자랑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롯데의 비전을 품고 잠실벌에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는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꺼이 우리 국민과 고객 모두에게 ’가족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바친다.”(동아일보 기사)
5.
98세까지 산 신격호는 죽기 3년 전 ‘월드’에서 쫓겨난다. 장장 70년간 일궈온 세계였다. 하지만 그는 ‘롯데판 왕자의 난’의 희생물이었다.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랄까. 재벌가에는 아버지를 재끼는 그런 식의 푸닥거리가 곧잘 펼쳐진다. 그렇대도 신격호의 신화는 여적 건재하다. 잠실 월드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일찍이 대한민국이 발전할 것은 자명하지만 대한민국 기업인들은 여지없이 고꾸라질 것이란 걸 내다봤다. 무차입경영을 원칙으로 삼은 그에게는 IMF 외환위기의 ‘저주’도 비껴갔다. 그는 1980~1990년대 미국 포브스 선정 세계 3~4위 부자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는 특별히 마천루를 선호했다. 최근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남현희 스캔들(‘전청조 스캔들’이 적실한가?)로 유명세를 탄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을 세우기 훨씬 전의 일이다. 신격호의 말이다. “(대한민국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사람들이 즐기러 올 것 아닌가. 세계 최고 건물이란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좋은 광고선전이 된다. 무역센터도 될 수 있고 위락시설도 될 수 있는 그런 건물을 지어야 한다.” 우리 라온이 바론이는 롯데월드의 휘황찬란함을 전부 뒤로하고 키즈카페에 들어가 50분간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 키즈카페는 영국 잉글랜드 지방의 대표 민화 <잭과 콩나무> 등 유명 우화를 모티브로 했다. 키즈카페 속 콩나무는 하늘과 닿아 있다. 신격호는 그가 이룩한 시그니엘 원뿔형 꼭지가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그 사후 손만 내리면 닿기를 바랐지도 모른다.
6.
키자니아. 이게 물건이라면 물건이고 요물이라면 요물이겠다. 내 눈엔 그리 보였다. 롯데그룹과는 무관한 것이 그 일원인 양 꾸민 꼴이 꼭 언론사의 양아치 짓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조소가 나왔다. 첫인상인 키자니아 로고가 롯데리아를 빼닮았다. 키자니아는 MBC가 수익사업으로 구상해 대박을 터뜨린 것인데, 미취학 아동~초등저학년 대상 직업체험장이다. 현재는 MBC 자회사 MBC 플레이비에서 본사의 라이센스를 받아 자체적으로 운영 중이다. 지자체마다 비슷한 직업체험시설이 있는데 키자니아가 그 선구 격이다. 헌데 가만 내실을 살피면 소방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 소방관체험 딱 1개 말고는 구태여 그리 비싼 돈을 주고 여기를 찾을 까닭이 없다. 나머지는 대전에도 다 있는 것들이다. 키자니아가 아이들에게는 일말의 꿈과 희망을 심어줄는지는 몰라도 그 이면의 진실은 MBC가 전부 협찬받아 코흘리개들한테 거금을 착취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것이 키자니아의 불편의 진실이다. ‘협찬인생’ MBC의 원업(冤業)이 작지 않다.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대전 어린이회관은 2시간에 1인당 3,000원인데 반해 키즈카페는 오전 10시~오후 3시까지 1인당 5만4천원(성인1+아동1 패키지 기준)이다.
7.
라온이 바론이는 기차 타고 택시 타고 버스 타고 호텔 가서 잔 것만으로도 신명이 양껏 돋았다. 롯데월드와 키자니아는 옵션이었다. 엄마의 졸업여행 기획은 아빠엄마에게 무척 힘든 일정이었다. 이왕 쓸 돈과 시간이라면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집과도 가까운 증평 벨포레 리조트를 갔더라면 돈 놀이 시간 먹거리 네 마리 토끼 모두를 너끈히 잡았을 것이다. 정말 쓰러지지 않은 게 용타할 정도다. 롯데월드와 키자니아 속 땀내 쩐내 음식내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돈다. 정말이지 딱 한 번이면 족할 경험이다. 나는 두 아들에게 이왕이면 저잣거리 흥청대는 풍속 대신 고아한 풍취를 심어주고 싶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대우창업주 김우중의 말은 지극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