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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 Apr 20. 2023

동안, 그 상대성에 대하여

with 함글 2022. 10. 17

*예전에 글모임에서 썼던 글인데, 브런치 작가신청 할 때 올렸습니다. 조금 퇴고하여 올립니다.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내 나이를 원래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듯하다. 내가 나이를 밝히면 대부분 동안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일들이 수년간 쌓이다 보니 내 나이에 비해 좀 어린 티가 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얼굴이 정말 어려서가 아니라 화장기 없는 얼굴과 안경, 하나로 자주 묶는 머리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거기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일단 나는 피부가 유난히 예민해서 화장품은 아무거나 못쓴다. 얼마 전에는 스킨, 로션이 똑 떨어졌는데 그날 하필 예비 화장품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엄마 것을 빌려 썼는데 몇 분 만에 온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리면서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깜짝 놀라 금방 씻어냈지만 화끈거림은 하루 동안 이어졌다. 이것은 가장 최근의 예시이고, 그전에도 새 화장품을 처음 접했을 때, 혹은 쓰는 도중에, 이런 두드러기, 뾰루지 등 소위 피부가 뒤집어지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안전한 스킨로션을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 헤매야 했다. 결국 스킨, 로션은 찾았지만, 그 이후의 본격적인 화장을 하는 것이 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파우더팩트, 색조 화장품들까지 일일이 고르고 찾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래서 가능한 화장은 포기하고 다니다 보니 이젠 거의 안 하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안경은 초등 4학년 때부터 써왔다. 이 안경을 벗고 싶어서 라식수술을 알아보려고 안과에 간 적도 있다. 수술을 상담하기 전에 여러 가지 눈 검사부터 받았다. 검사를 다 받고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가 이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환자분은 수술이 어렵겠네요."

라고 말해서 나도 대뜸,

 "왜요?"

하고 물었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다시 보면서 말했다.

 "각막이 너무 얇아요. 이 정도면 깎을 수가 없어요. 아마 태생적으로 그러신 것 같은데... 렌즈를 삽입한다고 해도 난시 축이 좀 독특하셔서 특별히 렌즈를 제작하셔야 하는데 그러면 가격이 대략... 천만 원이 넘어가죠."

 음... 의사의 표정이 복잡했던 이유를 알겠다. 그리고 내 표정도 복잡해졌다.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과,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 어쩔 수 없죠..."

 그렇게 내 라식, 라섹, 눈 수술은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혹자는 렌즈를 끼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나는 눈도 참 피부만큼 예민하여 몇십만 원 주고 맞춘 하드 렌즈도 적응하는 데 결국 실패했고, 일반 소프트렌즈로는 의사도 말했듯이 난시 축이 특이하여 교정이 안 된다. 렌즈를 끼어도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질 뿐 흐릿하게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안경은 내 신체 일부가 되고 말았다.


 머리. 그렇다. 머리라도 좀 잘하고 다니면 좋지 않겠는가. 내게는 뿌리 깊고 유서 깊은 유전의 힘으로 만들어진 반곱슬머리가 있다. 이 머리는 참으로 자연의 무질서와 궤를 함께하는 유려한 곡선을 갖고 있다. 특히 앞머리는 소 핥은 머리라고 하여 뒤쪽으로 뒤집어져 앞머리를 만들면 이상하게 벌어지고, 길게 기르면 구불구불하게 이마를 장식한다. 매직스트레이트를 하는 것도 잠시뿐, 한, 두 달이 지나면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야성미가 드러나는 앞머리로 돌아간다. 그뿐인가. 손재주가 없는 것은 아닐진대, 유독 머리를 하는 손재주는 저 바닥이라, 어른이 되었어도 고데기들과도 친해지지 못하고 드라이기는 젖은 머리 말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삼재(세 가지 재앙)로 얼굴이 실로 동안인 것이 아니라 꾸미지 못하여 수수해 보이는 것이라고 나는 결론지었다. 이런 나의 얼굴이 가져오는 장점과 단점은 다음과 같다.


 장점은 어린 척, 어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동물이고 인형이고 크고 작은 보송한 것들을 몸살 나게 좋아한다. 나는 아트x스, 버x샵 같은 데 가면 정신을 못 차리고 구경하다가 결국 자그마한 하나 정도는 손에 들고나오게 된다. 밥 먹는 거, 옷 입는 거에 크게 신경은 안 쓰는데 이런 크고 작은 예쁘고 보송한 것들에는 신경 쓰고 산다. 지인이 '나이가 들어도 참 위화감 없는 얼굴이라 좋겠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 '아, 동안이 이렇게도 작용할 수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얼굴에는 단점도 참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람들의 신뢰성을 얻는 것, 특히 어려운 지식이나 전문적인 것, 혹은 일상생활에서 배운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면 그것이 높은 신뢰도를 얻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은행 창구에서 펀드나 보험 상품을 든다고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연륜이 있어 보이는 직원의 설명에 더 신뢰가 가는가, 아니면 새파랗게 젊고 어려 보이는 직원의 설명에 더 신뢰가 가는가. 같은 말을 하는데 외양이 어떤지에 따라 신뢰성이 다르다는 심리학 실험의 결과를 들고 오지 않더라도, 나는 대학교에서 회사에서 이런 일들을 종종 겪었다. 네가 뭘 알아? 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한 건 동안이란 상대적이란 것이다.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생각보다 손해인 경우도 있어서다. 스무 살이 훌쩍 넘었는데 술을 사면서 주민등록증 보여달라는 것도 귀찮고, 택시를 타고 학생 소리 듣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고, 회사에서 전문성을 의심받는 것도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을 즐겨야지. 차근차근 나이드는 만큼 얼굴에도 나이가 찾아올테고, 지금이 그리워지는 때가 올 것이다. 결국 많은 것이 상대적이다, 동안이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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