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다 Apr 25. 2023

한 예비신자의 이야기

with 함글 23. 2. 18

 나의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셨을 때 성경통독으로 태교를 하셨다. 여기서 예상할 수 있듯이 나의 외갓집은 기독교 집안이다. 외할아버지는 98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동네 교회에 다니셨고, 이모부와 외삼촌은 교회에서 장로 일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기로 엄마도 내가 어릴 적에는 교회를 다니시고 구역 예배도 보셨다.


 그 영향으로 나도 예닐곱 살쯤 처음 교회에 갔던 것 같다. 새로 왔다고 혼자 세워놓고 환영하는 그 분위기가 낯설어서 조금 무섭고 떨렸다. 그 교회를 오래 다니지 못했다. 학교도 학원도 다녔지만, 교회에서 자꾸 다른 친구를 데려오라고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엄마도 교회 특유의 어떤 분위기가 맞지 않으신다며 언젠가부터 개인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셨다. 성경을 읽거나 기도는 하시지만 교회에 가거나 다른 교인들과 어울리지는 않으셨다. 그렇지만 개인 신앙생활을 계속하신 엄마 덕분에 나는 하느님, 예수님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일례로 어릴 적에 어린이 성경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있다. 두꺼웠지만 어린이용 책답게 알록달록한 그림들과 쉽게 풀어 쓰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럭저럭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이야기책처럼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있었다. 멋도 모를 초등 꼬꼬마 시절, 아파트 입구에서 어느 교회 목사님을 만났다. 그 목사님은 왜 내게 하나님을 아느냐고 물었을까? 조그맣고 빼빼 마른 꼬마였던 나는 하느님을 안다고 치기 어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목사님은 자기 교회에 나오라면서 무슨 기도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인자한 인상과 좋은 음성에 끌려 그 목사님과 눈 꼭 감고 두 손 모으고 그 아파트 입구에 서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그분은 내 손을 꼭 붙잡으시고 '제 안에 주 하나님을 모시오니 주님 제게 오소서' 같은 내용의 긴 기도문을 외우며 따라 기도하게 하셨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 보면 그 사건이 상당히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은 응당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분의 따뜻한 손길과 진지한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에도 교회에 정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크고 작은 좋다는 교회는 다 다녀봤지만 마음 가는 곳은 없었다. 부모님께 받은 성격 때문인지,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교회에 가면 어딘가 어색하고 어려웠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성당에 다니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성당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작은 이모는 외갓집 사람들 중 혼자 성당에 다니셨고  집안사람들은 다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문제는 성당은 교회처럼 그냥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6개월간의 예비신자 교육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마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 반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리하여 나는 예비신자 교육을 두 번이나 시작했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포기해야 했다.


 그런 내가 다시 예비신자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주님의 계획이셨을까. 지난해 10월, 지인이 알려준 덕분에 성당에 전화해서 예비신자로 덜컥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예비신자를 모집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서야 시작했다는데, 어떻게 늦지 않고 등록했다. 벌써 2월, 4월의 세례식까지 얼마 안 남았다.


 교육은 3월까지 한 달 반 정도 남았는데, 4개월 동안 매주 성당에 출석하여 미사를 보고 교리 공부, 기도문  암기를 해야 했다. 성경 필사로 마태오복음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는 과제도 주어졌는데, 다 쓰고 보니 스프링 노트 한 권이 빼곡히 채워졌다. 이번 주면 일반 교리는 마무리되고 신부님이 주관하시는 집중 교리 강의와 몇 가지 중요한 과정들이 남는다.  


 사실 내가 세례를 받는다고 성당에 잘 다닐지 자신은 없다. 예비신자 교육은 받으며 느낀 것은 공부든 일이든 신앙이든 결국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이야 내게는 좋은 뜻이듯 나쁜 뜻이든 공기 같은 존재고 자연스러운 존재다 보니 그분을 부정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분께서 어찌 된 일인지 그분의 자녀를 이토록 게으른 사람으로 창조하셨는지, 참 신의 뜻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다만 그분은 끊임없이 나를 부르시니, 나도 끊임없이 응답드리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 이후 4월 중순에 세례 잘 받고 가톨릭 교인이 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글 쓰는 자신을 바라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