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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Sep 02. 2017

미아로 발견된 아이, 시인되다

[비하인드 스토리펀딩 1편] 김경원 군 이야기


광주 광천터미널에서 세 살배기 아이가 발견되었다. 터미널 측은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아이의 부모는 찾을 수 없었다. 아이는 그렇게 미아가 되었다. 그 후에도 그 아이를 찾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부모가 찾지 않았을까? 그 아이가 지체장애인이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차마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웠던 것일까? 부모를 만난 적이 없으니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아이는 광주의 장애인 시설로 들어갔다. 그러나 장애인 시설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다른 시설로 옮겨야 했다. 부모에게 이별을 당한 경원 군은 어디든 마음을 붙일 만하면 이별을 겪어야 했다. 시설을 옮겨 다니며 이별에 익숙해질 무렵 경원 군은 중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경원 군의 인생에 이별뿐만 아니라 고독과 외로움이 더해졌다. 경원 군은 어떻게든 버텨야 했기에 시를 썼다. 특히나 얼굴도 모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옮겼다. 경원 군의 삶에 환대나 우정 같은 따뜻한 감정을 보여줄 사람은 정말 없는 것일까? 스토리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경원 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모로 마음이 아팠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내가 꿈꾸는 세상은

필 한 자루면 시 하나

뚝딱 만들어내는 세상
시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상

- 김경원, <내가 꿈꾸는 세상>


어디선가 나타난 좋은 친구


고3이 된 경원 군은 재하라는 친구를 만났다. 재하 군은 경원 군이 쓴 시를 보자마자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대입을 앞둔 삭막한 고3 교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기 마련인 그 공간에 재하 군은 경원 군의 시를 붙여놓았다.


시커먼 남학생들만 있는 공간에서 '시가 과연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은 경원 군의 시를 읽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시에는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경원 군의 시에 위로를 받았는지 다들 새로운 시가 나오길 기다렸다. 고3 남학생들은 그렇게 경원 군의 팬이 됐다. 삭막했던 교실엔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그래서 재하 군은 경원 군의 따뜻한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토리펀딩의 문을 두드렸다. 여기까지가 재하 군의 이야기다.


“광주에 사는 고3 학생입니다. 날마다 시를 써서 삭막한 고3 교실을 밝혀주는 경원이의 친구이자 경원이의 시집 발간 모임 대표입니다. 경원이는 3세 때 터미널에서 부모님과 이별했으며 지체장애가 있는 친구입니다. 경원이는 이후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해왔고 고3이 된 지금 시를 씁니다. 학생 시인 김경원, 경원이가 계 속 해서 시를 쓸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후원금은 경원이의 시집 발간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시집을 발간하고 남은 후원금은 고등학교 졸업 후 시설에서 퇴소하여 지역 사회로 자립해야 하는 경원이의 자립 지원금으로 사용됩니다.”


펀딩 신청서를 보고 펀딩 파트원들은 고민했다. 펀딩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창작자를 꼭 만나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인터넷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펀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신뢰가 매우 중요하고 신뢰를 확인하기 위해선 만남만큼 확실한 게 없다.


광주에 있는, 그것도 학생을 어떻게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했다. 프로젝트를 맡은 김주영 PD가 김재하 군에게 연락했다. 


“스토리펀딩은 PD와 꼭 만나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재하 군이 잠시 머뭇거렸다. “제가 고3이라 자유롭게 다닐 수는 없는데요, 엄마에게 물어볼게요.” 며칠 후 답이 왔다. “엄마에게 허락받았어요. 경원이 시집을 꼭 내고 싶거든요. 엄마와 같이 용산역에서 만나주실 수 있을까요?”


김재하 군은 KTX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했다. 재하 군의 어머니와 함께였다. 어머니는 고3인 아들이 스토리펀딩 때문에 공부에 소홀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아들의 무모한 도전을 응원하고 있었다.


삶에서 만나는 최고의 선물, 우정


재하 군과 어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펀딩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원 군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모두 모였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경원 군을 도왔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장우혁 군과 정우영 군은 경원 군의 시집에 들어갈 삽화를 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원 군의 옆 반 친구들도 같이 돕기 시작했다. 경원 군의 시가 전세계에 알려질 수만 있다면 정말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친구들은 시를 외국어로 번역했다. 일본어에 능통한 태훈 군은 시를 직접 일본어로 번역했다. 번역만으로도 감동적인데, 성채 군은 경원 군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나에게 엄마란
부르기 가장 힘든 사람입니다.

나에게 엄마란
너무나도 미운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나에게 엄마란
이미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존재입니다.

나에게 엄마란
그 이름이 너무나도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나에게 엄마란
정말 못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엄마라는 그 이름을
불러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하략)
- 김경원, <엄마에게>


‘널 위해 우리는 별이 될 수 있을까?’ 프로젝트는 4회에 걸쳐 진행됐다. 매번 올라오는 글은 길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왠지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경원 군의 시를 엮어 시집을 내려는 펀딩은 목표액 500만 원을 훌쩍 넘어 1156만 원을 후원받았다. 경원 군의 시에 공감한 후원자도 많았지만 경원군을 위해 열심히 뛰는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후원자들도 많았다.


“경원 군의 첫 시집 출판을 정말 정말 너무나 축하합니다. 정식으로 출판되면 시집 꼭 구입할게요. 펀딩 후원이 이렇게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 게 감동적입니다. 펀딩을 시작한 재하 군에게도 큰 박수 보냅니다.”
- 후원자 히리아 님


“정말 감사합니다. 경원 군의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을지 생각만으로 벅차오르네요. 너무 감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재하 군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학생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후원자 123213 님


친구를 위해 준비한 가장 멋진 출판 기념회


2016년 8월 24일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3학년 3반 교실에서는 김경원군의 시집《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9월은 수시 원서 접수로 바빠지기에 우선 출판 기념회부터 연 것이다. 이때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없겠구나.’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뭔가를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뭐든 가능하다는 학생들의 생각은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꺾이곤 하는 나를 반성하게 했다.


출간 기념회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김재하 군이 소감을 전했다. “처음 시집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만 해도 이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현실이 됐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더니 이렇게 시집 한 권이 우리들에게 왔습니다.”


경원 군의 담임선생님은 경원 군이 가장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경원 군이 나태주 시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특별했다. 지체장애인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면서 중학교 시절 왕따까지 당했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라는 <풀꽃>이라는 시를 읽으며 경원 군이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원 군은 ‘나도 자세히 보면 정말 아름다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가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의 삶과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경원 군을 보며 나태주 시인은 경원 군을 위한 시를 지었다.


밤사이
초롱초롱
너를 생각하는 마음들

어둔 하늘
별이 되었다가 아침이면
초롱초롱
풀밭 위에 별이 되어 또다시 피었네



별꽃 같은 마음이여
오래오래 그 자리 피어 있거라 어두운 세상을 밝혀 다오
- 나태주, <별꽃: 김경원 군을 위하여>



끝나지 않은 우정, 남은 이야기


경원 군과 재하 군의 아름다운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펀딩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여운이 오래갈 것만 같은 프로젝트였다. 경원 군도 재하 군도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대입에 방해될까 봐 따로 연락을 주고받진 못했다.


그러다 재하 군의 어머니를 통해 뜻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경원이같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스무 살이 되면 장애인 시설을 나와서 보통 공장에 취직하는데요, 프로젝트를 보고 곳곳에서 후원해주겠다고 했대요. 경원이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해서 하고 싶은 동물자원학을 공부하고 있다네요.” 경원 군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먼저 놓였다. 재하 군의 소식도 궁금했다. “재하는 서울교대에 들어갔어요. 더 좋은 학교에도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꼭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내심 아쉬워하셨지만, 그래도 아들에 대한 믿음은 단단해 보였다. 스토리펀딩팀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온 경원 군과 재하 군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도 동화 같았다. 스토리펀딩을 시작하기 전 경원 군의 짧은 생애를 보며 환대와 우정을 경험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내가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봤다는 생각을 했다. 경원 군은 앞으로도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재하 군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돕는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다.


스토리펀딩은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좋다. 학생의 마음 담은 작은 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주변의 모든 스토리가 소재가 될 수 있다. 당신의 스토리는 힘이 있다.  




* 스토리펀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 가진 창작자를 만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전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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