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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Sep 04. 2017

“살아 있는 한, 행복을 찾으려고..”

[비하인드 스토리펀딩 2편] 오롯이 기록되는 할머니의 삶

아들의 돌 잔칫날, 외할머니가 오셨다. 아들에겐 증조 외할머니지만 나에겐 외할머니다. 여든의 외할머니는 아직 정정하시다. 외할머니가 내게 하얀 봉투를 건네셨다. 아들의 돌잔치 때문에 주셨겠지만, 오랜만에 할머니께 세뱃돈을 받는 기분이라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잠시 기분이 들떴다. 그러다 문득 봉투를 내려다본 나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봉투에는 ‘애할머니가’라고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글씨는 그날 처음 본 것이었다. 여름방학에 시골에 내려가면 선풍기를 틀고도 부채질을 해주시고 겨울방학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앉히고 이불까지 덮어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만 느꼈지, 할머니의 글씨를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마음 한구석에서 짠 내가 나기 시작했다. 문득 ‘애할머니’가 ‘외할머니’보다 더 많은 사랑을 담은 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나에게 할머니라 불리기 전에 할머니는 어떻게 사셨을까? 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을까? 그리고 글자는 어떻게 배우셨을까?



배움의 장에서 외면받은 소녀들


스토리펀딩에는 할머니들의 도전 프로젝트가 종종 개설된다.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도 계시고, 한글을 넘어 시까지 쓰는 할머니도 계신다. 얼마 전 카메라를 배우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불편함을 겪는 할머니의 사연은 매체에서 흔히 다뤄진다.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단체 위더스(with us)는 이 이슈가 매번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할머니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나서게 됐다.


학생들이 할머니에 집중한 이유는 단순했다. 할머니들이 소녀였던 시절, 여성들에게는 한글 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오빠나 남동생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생계전선으로 불려 나왔다. 덕분에 소년들은 힘든 형편에도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소녀들은 배움의 장에 발조차 들이지 못했다.


드디어 한글을 배우다


특히 학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연이 하나 있다. 경북 봉화군의 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집으로 배달된 고지서를 읽을 수가 없었다. 수도 요금을 내려고 해도 직접 은행까지 찾아가 묻고 또 물어야 했다. 한글을 읽지 못해 일상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사기꾼들이 접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할머니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학생들은 할머니들을 찾아가는 이동 학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에게 연필을 잡는 법부터 가르쳤다. 한글을 몰라 삶이 힘드셨던 할머니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한글을 배웠고결국 한글을 읽고 쓰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한글로 가장 먼저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셨다.


“슨생님 공부 가르쳐 주신 득분애 농협도 가고 돈도 차아서 새금도 내고함니다. 은행 업무는 읍매에 나가는 소장이나 지인에게 부탁했는데 이제는 내가 직접 할 수 있겠다. 부탁했다가 사기당하는 할머니들이 얼마나많았는데 감사함미다.”


할머니들은 그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아들에게 쓰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들 태우야,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되어 기쁘면서도 눈물이 난다.”


이런 감동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스토리펀딩을 진행했다. 제목은 ‘한글에 스며든 할머니의 주름’. 펀딩 금액은 할머니들의 지속적인 한글 교육 사업에 활용되고 후원자들에게는 할머니의 글씨를 모티브로 삼은 캘리그래피 엽서와 가이드북을 제공했다.



요즘 특정한 일이나 경험의 재미를 강조하기 위해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글을 배우는 것만큼 이전과 이후 세계의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일은 없다.


“어르신들이 한글 배우고 직접 쓴 편지 보니 울컥합니다.” - 카사르 님


이런 후원자의 관심과 애정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진행될 펀딩은 아마 성공할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한글 공부로 할머니들의 갑갑한 세상이 시원하게 열리는 일이 꾸준히 계속되길 바란다. 스토리펀딩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


녹진한 삶이 녹아나는 시


위더스와 함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웠다면 경북 칠곡의 할머니들은 시를 배웠다.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프로젝트는 이정화 프리랜서 작가가 진행했다. 평생 농사만 짓던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치면서 느꼈던 것들을 시로 풀어보는 프로젝트였다.



순박한 할머니들의 촌철살인과 깊은 삶의 지혜들이 그대로 시에 묻어 나왔다. 웹상에서 잠깐 읽고 지나가기엔 시들이 정말 좋아 결국 《시가 뭐고?》라는 책으로 엮었다. 경상도 할머니들에게 어울리는 제목이다.


마늘을 캐가지고 아들딸 다 농가 먹었다

논에는 깨를 심었는데 검은깨 농사 지어서

또 다 농가 먹어야지

깨가 아주 잘났다
- 박차남, <농가 먹어야지>


1933년에 태어나 글이라고는 ‘일본 글’이 기억의 전부인 박차남 할머니의 시다. 귀도 어둡고 걸음도 느린 할머니는 ‘동무들도 보고 글도 배우는’ 학교가 가장 좋다고 말씀하신다. 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것은 나이 들어 얻은 새로운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박차남 할머니는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깨달은 점을 시로 풀어냈다. 바로 뭐든 농가(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이 보기에 어색할 수도 있지만‘잘났다’는표현은 수십년간 농사를 지은 고수만이 쓸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고 한다.


인지 아무거또 업따묵고 시픈거또 업또하고 시픈 거도 업다갈때대가곱게잘가느 게 꿈이다

- 박금분, <가는 꿈>


1931년생 박금분 할머니에게는 곱게 삶을 정리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 마음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다가 시 안에서 풀어냈다. 글쓴이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80이 넘으면 상귀신 아이가, 밥 묵고 지끼니까 사람이제”라고 하셨다.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따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절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그래도 뽀뽀는 안 해밧다
- 박월선, <사랑>


1932년생인 박월선 할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을 왔다. 결혼이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성화에 할머니는 시집을 가기로 결정했다. 남편감이 못생겼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할머니는 사진 한 장만 보고 금세 남편감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할머니가 좋아했던 잘생긴 남편은 그만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을 병으로 일찍 잃은 것도 안타까운데, 할머니에겐 남편과 ‘둘이 찍은 사진’마저 없다.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온 할머니는 이제 세 아들을 도시로 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사랑에 대한 할머니의 시에서는 아직도 남편을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한 편 한 편의 시에는 할머니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시로 풀어낸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한 여성이 겪어야 했던 고된 삶에 대해, 인생의 황혼기에 바라보는 죽음에 대해, 진솔한 바람에 대해 단순하지만 뜨거운 감정을 끌어냈다. 나는 몇 번이고 눈시울이 붉어졌고 수많은 후원자들이 가슴 뭉클해했다. 이 프로젝트에 2만 원을 후원하면 《시가 뭐고?》를받을 수 있었다. 오래도록 감동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할머니도 그렇다


학생들이 위더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할머니들께 글을 가르치고 프리랜서 작가가 할머니들께 시를 쓰게 했다면 밀알복지재단은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복지재단에서 만난 다섯 명의 할머니들은 1년 동안 사진 찍는 법을 배운 후에 출사를 다녔다.



카메라도 기계인데 할머니들이 다루기에는 복잡하지 않을까, 배우실 수는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할머니들의 열의 앞에서 문제 되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무언가로 프레임을 채우고 자기를 표현하는 사진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맞았다. 일흔셋의 할머니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만의 취미를 갖게 되었다며 행복해했다.


“지금껏 인생에 큰 소원이 없었어요. 이제 사진을 찍는 순간 죽을 듯이 행복해지니 카메라가 나를 다시 살게 합니다.”


이제 할머니들은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라 시선을 고정하고 가까이에서 진득이 지켜봐야 하는 하나의 장면으로 여기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그간의 삶까지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할머니는 “사진으로 일상을 관찰하다 보니 내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또 사진을 찍으며 자아를 찾은 할머니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나간 시간만 확인시켜주는 주름진 얼굴에 손사래를 치던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예쁜 구석을 하나하나 찾아내게 되었다.


가장 위대한 창작은 삶의 기록이다


할머니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나도 모르게 ‘애할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 할머니들은 남편을 위한, 아들을 위한, 오빠나 남동생을 위한,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한 삶을 살았다. 할머니들이 삶의 주체가 되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며 사진을 찍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외할머니의 삶이 더욱 궁금해진다.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할머니들은 말한다.


“살아 있는 한, 이렇게 행복을 찾아 나서려고요.”


할머니들의 도전은 스토리펀딩에 오롯이 기록되고 있다. 그 기록은 한 인간의 ‘삶’이다. 언젠가 나도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 외할머니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 스토리펀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 가진 창작자를 만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전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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