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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n 29. 2024

에어비엔비 영역표시

신라면 광고는 아니고요...

낯선 장소를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길거리 냄새를 킁킁 맡다 한쪽 다리를 냅다 들어 오줌을 분사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강아지들은 왜 자꾸 길에다 오줌을 싸? 짝꿍에게 물어보니 강아지들이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란다.


일주일정도 지인의 강아지를 맡아준 경험을 빼고는 강아지에 대한 경험이 전무해서 그런지 난 강아지들의 영역표시 행동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낯선 향기가 나는 곳에 내 오줌 냄새를 입히는 것이 마음의 안정이라도 주는 것일까? 정말 그게 도움이 된단 말인가?


세계여행 중 1n번째 에어비엔비에 도착한 어느 날,  나는 드디어 강아지들의 영역표시를 마음속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의 에어비엔비(숙소)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숙소 안으로 들여놓으며 빠르게 숙소 상태를 스캔하는데 담배 찌든 내가 코를 찔렀다. 이 정도 골칫거리는 호스트에게 컴플레인하기도 어렵다. 당장 해결해 줄 수 없는 사항이면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는 것 자체가 더 귀찮은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벌써 머리가 아프다…


일단 거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곳곳에 재떨이가 눈에 띈다. 아무래도 북마케도니아는 실내 흡연 문화가 있는 나라라 그런지 이전 게스트가 숙소에서 줄담배를 피워댄 모양이다. 방 창문도 모두 열어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매섭지만 코를 찌르는 담배냄새가 더 괴롭다. 냄새가 쉽게 빠질 것 같지가 않다.


거실은 담배 찌든 내, 화장실에선 알 수 없는 식초 냄새가 난다.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는 숙소라는 생각이 든다. 숙소가 우리를 반기지 않자 내가 낯선 나라 속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새삼 슬프다. 하지만 나는 이미 별의별 에어비엔비를 다 경험해 본 세계여행자. 내가 고른 이 숙소에서 살아낼 방법을 궁리해 본다.


그래, 낯선 향기가 가득한 숙소에 강아지들 처럼 나만의 영역표시를 해보자!


아무래도 가장 먼저 마음을 달래줄 음식이 필요할 것 같다. 15분 거리 한인마트에서 신라면 두 봉지를 구입한다. 라면과 같이 먹을 오이김치를 만들기 위해 마트에 들러 오이와 양파를 구입한다.


여전히 냄새나는 숙소에 도착해 재빨리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켜고 한국 노래를 재생한다. 한국 노래에 위로받으며 짝꿍은 오이김치를 만들고 나는 라면을 끓인다. 라면 냄새와 오이김치의 익숙하고 조화로운 냄새에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라면이 익는 동안 VPN을 켜고 좋아하는 한국(나영석 아니면 정종연 PD의 예능을 주로 보는 편이다) 예능을 찾아 재생한다. HDMI선으로 노트북과 TV를 연결하고 나면 큰 화면에 한국인들이 등장한다. 한국인 한 명 보이지 않는 북마케도니아에서 모니터로나마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을 만나니 반갑다.


라면과 오이김치가 모두 준비되었다. 지구오락실을 보며 꼬들꼬들한 신라면과 아삭한 오이김치를 먹고 있노라니 비로소 낯설기만 했던 숙소가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이것이 낯선 에어비엔비를 대하는 나만의 영역 표시 방법이다.


신라면, 오이김치와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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