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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l 15. 2024

발리에서 생긴 일, 강아지 구출 대작전

발리, 우붓

발리 우붓에서 한달살기를 하던 어느 날, 강아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발리에서 우리가 머물던 에어비엔비는 방 한 칸에 테라스가 딸린 곳으로 테라스에 앉아있으면 우리 숙소와 옆집을 나누고 있는 낮은 담이 보였다. 담 너머로 옆집 마당이 보이기도 했다.


숙소 테라스와 아래로 보이는 옆집 낮은 담 (파란 동그라미)


호스트 부부에게는 3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추정되는 장난꾸러기 막내딸 오망은 자신의 집과 옆집을 나누는 담에 능숙하게 올라앉아 담 너머의 무언가를 구경하곤 했다.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오망이 담벼락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내가 뭐 하고 있냐고 묻자 오망은 작은 손으로 담벼락 아래를 가리키며 '멍멍' 소리를 냈다. 오망의 손짓을 해석해 보자면 담벼락 너머에 강아지들이 여러 마리 있는 듯했다.


나도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고 싶었지만 2층 테라스에서는 담벼락 바로 아래 있던 강아지들이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낑낑대는 소리와 밥을 주러 오는 옆집 할아버지를 보며 강아지가 있나 보구나, 추측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날도 어김없이 테라스에 앉아있었는데 강아지들이 큰 소리로 낑낑대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는 소리였다. 오망이 어디선가 달려왔고 담벼락에 앉아 강아지들을 관찰했다. 나도 1층으로 내려가 까치발을 들고 담 너머의 상황을 확인했다. 나에겐 철장의 윗부분만 간신히 보였는데 오망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 강아지 3마리가 있다고 했다. 철장이 너무 좁아서 그런가... 마음이 쓰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날, 강아지들은 하루종일 괴로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괴로웠다. 


철장을 실제로 본 다음날, 테라스에 앉아있었는데 옆집 할아버지가 강아지 밥을 주러 담 근처로 다가오셨다. 나는 2층 테라스에서 익스큐즈미! 를 외치며 할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했다. 주제넘은 행동일 수 있지만 강아지들이 괴로워하는 것 같다고, 철장문을 열어주면 어떻겠냐고 영어와 몸짓을 섞어 열심히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내 몸짓을 이해했다는 듯 웃어 보이셨고, 그날 오후는 강아지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부터 다시 강아지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숙소에 머무르기 어려울 정도의 소리에 시달렸다. 차라리 그냥 짖는 소리였다면 괜찮았을텐데... 괴로움 섞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호스트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호스트의 시어머니로 추청 되는 할머니가 옆집으로 출동하셨다. 우리는 괜한 소리를 한 것 아닌가, 조마조마하게 그 장면을 지켜봤다. 할머니는 옆집 할아버지에게 무언가 한참을 설명하시더니 모두 해결이 된 듯 집으로 돌아오셨다.


2층 테라스에서 옆집을 건너다보니 아기 강아지들이 넓은 마당을 뛰어놀고 있었다. 소리로만 존재를 인식했던 강아지들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정말 귀여웠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또 다시 강아지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그냥 낑낑대는 정도가 아니라 울부짖는 소리였다. 사람으로 치면 이건 분명 비명소리였다. 그 소리에 귀 밝은 오망이 뛰쳐나왔고 우리와 같은 숙소를 쓰던 외국인 한 분도 담벼락으로 나오셨다.


밤이 깊어 담 너머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사이 옆방 외국인 분이 용기 있게 담을 넘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위급상황이라며 'help'를 외치셨다. 알고 보니 강아지 한 마리가 까치발을 들고 철장 문에 목이 끼인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추측해 보건대 몸이 자란 강아지는 철장이 좁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얼굴을 철장 밖으로 내밀었을 것이고 그러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철장 문에 목이 끼어 까치발을 든 채 애처롭게 매달리게 됐을 것이다. 얼굴을 아래로 내리려고 하면 할수록 목이 더 졸려 비명을 지르게 되었겠지...


우린 다급했다. 옆집 사람들을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이렇게도 큰데... 우리가 행동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강아지 목이 졸려 정말이지 큰일 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철장을 당장 잘라야겠다고 판단했고, 칼과 가위를 들고 나왔다. 두꺼운 철장을 자르려면 힘이 필요했고 옆방 외국인 분은 남자인 짝꿍에게 손짓했다. 짝꿍은 칼과 가위를 들고 담을 넘었다. 나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철장을 비췄다.


강아지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기에 짝꿍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잘못하다 강아지가 다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강이지는 계속 애처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짝꿍이 강아지를 진정시키려 하거나 철장을 잡기만 해도 강아지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강아지와 우리, 모두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짝꿍은 우여곡절 끝에 강아지의 목을 철장에서 빼냈다. 강아지는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옆방 외국인 분은 연신 강아지를 진정시키셨고 우리는 스스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날 옆집에 지난밤 있었던 상황을 전달했다. 옆방 외국인 분은 강아지들을 철장에서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면 자신이 강아지를 데려가 키우고 싶다며 옆집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러 갔다. 우리도 차라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이후로 옆집 마당에서 뛰어노는 귀여운 강아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리에서 우리는 한 생명을 구했다. 가슴이 떨리는 일이었다. 부디 넓은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살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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