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보다 깊은 감정, 외로움
누군가는 밤이 무섭다고 말하지만, 나는 밤이 외롭다고 느낀다. 골목은 사람들의 감정을 삼킨다. 낮 동안 어디로든 분주하게 흩어졌던 마음들이 밤이 되면 조용히 모여든다. 불빛이 꺼진 창문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침묵이 가장 큰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밤의 골목을 걷다 보면, 마치 사람들의 숨겨진 감정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결국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서울의 밤은 네온사인으로 가득하다. 모텔 간판이 깜빡이고, 녹색과 붉은 불빛이 건물 벽에 부딪혀 번진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도시의 한 장면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공기가 다르다.
불빛은 쏟아지는데, 거리는 조용하다.
누군가 지나간 흔적만 남아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도시의 불빛은 사람을 위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고독을 만든다. 밝을수록 외로운 밤이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에는 잔잔한 흔적들이 있다.
벽에 붙은 오래된 포스터, 먼지가 쌓인 자전거, 낡은 간판. ‘가정식 백반’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곳은 한때 누군가의 단골 식당이었을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기대어 울던 곳이었을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흔적은 있지만, 정작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밤의 골목은 늘 그런 식이다.
낮에는 쉽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밤이 되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밤이 더 정직하게 느껴진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
조금 더 걸어가니 골목 끝이 붉게 물들어 있다.
무언가 불길한 듯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해 보이기도 했다.
벽이 온통 붉은색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저 멀리 선 채로 어둠 속에 스며든 사람 때문일까?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무료 체험”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무슨 체험일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밤의 골목은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를 걷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