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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Jan 07. 2024

끌림 없는 삶을 삶

진짜로?

나는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이다.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의 정의는 여러 번 말한 것 같지만, 로맨틱한/성적인 끌림을 누군가에게도 느끼지 않거나 매우 드물게 느끼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로맨틱 혹은 섹슈얼 끌림의 불연속성의 존재가 정의에 조금 더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널리 통용되는 정의는 그러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나 사실 나를 설명하는데 만큼은 앞선 정의가 더 들어맞는다. 


나는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로맨틱한 어떠한 연애적인 끌림이든, 섹슈얼한 끌림이든 말이다. 어떤 성별에게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고 오 이건가?? 싶었던 순간들마저 거의 없다. 그러니까 나는 보통사람들이 저 정의를 듣자마자 떠올리는, 혹은 무성애자를 아주 단편화한 상과 꽤나 일치한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삶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이다. 그리고 때로는 이러한 내 특성을 가진 채로 이어나가는 글쓰기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무성애 커뮤니티의 어떠한 편견을 지니게 만들까 두렵다. 


나는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것도 심리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교양서적이나 몇 번 들춰 봤을 뿐이고, 그리 깊이 읽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종종 에이엄 담론을 만들어 나가지 못하는 한계가 내 개인의 한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담론을 형성하고 학습하는 과정은 분명 혼자 할 수 없는 일임에도, 외국의 담론이 들어오는 것 마저 멈춰진 지금의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려는 삶은 분명 이성애정상성에 도전하는 것과 맞닿아 있지만, 겹쳐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시대의 최전선이 어디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겠지만, 섹슈얼리티 분야에 한정해서 대답하자면 나는 에이엄가시화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게 느끼면서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몇 자 적어 내려 가며 지금 내가, 내 주변이 느끼는 답답함과 혼란의 일부를 기록해 놓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오랜만에 키보드 앞에 앉았다. 브런치를 켜고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고 언젠가 내가 익명이 아니라 이름을 내걸고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단순한 가시화 이상의 것을 목표로 삼을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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