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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폭동: '극우 이대남'이 등장한 이유는?

by 삼중전공생

윤석열 대통령 개인에 대한 광신적인 지지를 보내고, 탄핵 찬성 세력의 배후에 중국, 조선족 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러면서 폭동의 '주모자'가 될 만큼 자신들의 신념을 거스르는, 여기서는 사법부에 대한 폭력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 모든 이대남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봐야 할 정도로 많은 이대남들이 소위 '극우화'되었습니다.


이들을 왜 '극우'라고 할 수 있는가, 정치학에서 극우는 민족적 기준에 따라 "내집단과 외집단"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내집단이 외집단에 의해 존재론적 위협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제가 이들을 '극우'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들은 '한국 남성을 위시한 진정한 한국인(내집단)'과 '중국 및 조선족, 그것들에 동조하는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한국 내 일부 집단들(외집단)'을 분명히 구분하고, 외집단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전제하며, 이들과 '공존할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들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많은 정치학자나 시사평론가들은 이들이 등장한 원인을 피상적인 수준에서 파악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이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원인을 제시합니다.



[일반적으로 지목되는 '극우 이대남'이 등장하게 된 원인들]


(1) 사회, 경제적 불만과 소외감


높은 실업률, 저성장, 주거난 등이 이들의 내면에 분노를 만들었고, 그 분노를 투사할 대상을 찾다보니 페미니스트나 중국을 찾게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요인이 배경적인 촉매제가 되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것이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20대 청년들의 생활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원인이 되려면 20대 청년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보수화 되어야 할 뿐더러, IMF 직후 그러니까 꽤나 오래전부터 보수화 경향이 뚜렷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열린 문재인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대남은 분명히 '문재인'을 찍었었습니다. 이대남이 '보수화'되었다고 볼 맥락은 한국에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결국 이대남의 극우화는 적어도 '여성'이라는 키워드와 떼어놓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젠더 갈등의 심화


그렇다면 젠더 갈등의 심화가 '극우 이대남'이 등장한 '원인'일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도 보지 않습니다. '젠더 갈등'은 모든 이대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입니다. 따라서 이대남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었다면, 그 원인으로 '젠더 갈등'을 꼽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대남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극우화'가 되었다면, 이들은 '젠더 갈등' 뿐만 아니라 다른 추가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젠더 갈등이 극우 이대남 등장의 핵심적인 원인이라면, 모든 이대남이 극우화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극우' 이대남들이 반페미니즘 성향이 매우 짙다는 점에서 이들이 젠더 갈등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겠으나, 이것을 핵심 원인으로 보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봅니다.


(3) 보수 세력의 정치적 동원


보수 세력이 유튜브 등 SNS을 통해서 음모론이나 자극적인 선동을 유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극우 이대남이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의 '필터 버블'이 정말 이들이 극우화된 원인일까요? 이들의 극우화를 부추긴 요인은 아닐까요? 일단 '필터 버블'이 발생하려면, 애초에 이들이 해당 영상들을 관심있게 찾아보고 알고리즘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들이 그런 영상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필터 버블'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태의 원인을 성급하게 '필터 버블'로 찍을 것이 아니라, 극우 이대남들은 왜 이런 극우 유튜브 등을 찾아보기 시작하게 되었느냐고 묻는 데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4) 사법부에 대한 불신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비롯해서 문재인 정부 기간 내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정체 불명의 법리로 한국 남성들에게 불리한 판례가 쌓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바탕으로 이대남들 사이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역차별적인 판례'들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폭동을 일으킨 적은 없고, 하다못해 모여서 시위를 한 적도 극히 드뭅니다. 더구나 이번 폭동은 '윤석열 대통령 구속'에 관한 안건에 있어서의 사법부 불신이기 때문에, 설령 일련의 역차별적인 판결로 사법부 신뢰가 저하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한 사법부에 대한 극우 이대남들의 불신을 '폭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짚기에는 무언가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많습니다.


(5) 군대 경험


군 복무를 통한 조직문화와 위계질서에 대한 학습 경험이 폭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저는 이건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모든 한국 남성들은 20대 시절 군 복무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한국 역사상 존재했었던 모든 20대 남성들이 극우화 되었나요? 심지어 보수화 되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이들의 폭동 방식과 평소 사고방식에 군대식 문화가 옅게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이번 폭동과 군대 문화는 관련성이 적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극우 이대남'이 등장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들이 유년 시절에 무엇을 보고 배우며 자라왔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으면, 모든 설명은 '원인'이 아니라 '배경'을 짚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극우 이대남'의 유년 시절 학습해온 것들]


['남초 커뮤니티'의 등장]


현재의 이대남들은 인터넷이 일상화된 '첫 번째 세대'입니다. 이 사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것은 뭘까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활동한 커뮤니티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활동했고, '남초'에 '익명성'이 보장되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요인들은 구체적으로 그들의 커뮤니티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갔을까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젊다'는 사실이 미친 영향]


'일베' 등을 위시한 이용자들의 평균 연령은 대체로 10대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이건 이들이 한창 '학업'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을 시기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한창 커뮤니티에 빠져있을 시절, 학교의 교사와 부모들은 좋은 대학에 대한 열망을 이들에게 강제로 주입시기키 위해 노력했고, 공부를 못하는 것이나 좋은 대학에 못 가는 것을 '사회에서 도태된 것', '멸시해도 좋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도록 방치하거나 유도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한 것이고, '노력'을 하지 않는 인간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럴 만한 환경적 배경이나 그들의 책임이 없는 다른 요인이 작용해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학부모나 교사들에게는 자칫 학습 부진아들의 '핑곗거리'가 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현재의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대학 서열도 이 당시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필요성과 의미를 학습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팩트 일베'니 '팩트 폭행'이니 같은 것들이 유행하면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불쌍하다기 보다 지나친 수혜자들이다'와 같은 황당한 논리가 유포된 것도 그 일환으로 봐야될 것입니다. 또 이런 식의 학습은 이들이 '능력주의' 서사에 빠지도록 만드는 효과도 낳았습니다. 무자비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은 거세되고, 여하간 이 사회 체제 속에서 내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여성 가산점제' 뿐만 아니라 '재외국민 전형', '기회균형전형', '농어촌전형', '학생부종합전형' 등에 광범위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들이 능력주의 혹은 그와 유사한 서사를 무의식 중에 공유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제가 위에서 짚은 '10대들이 커뮤니티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커뮤니티가 '남초'였다는 사실이 미친 영향]


여성들은 여성들 만의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은 남성들 만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이 많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게임, 스포츠, 군대' 등 여성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들로 대화가 자주 오갔고, 이는 여성들에게 진입장벽으로 다가왔습니다.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은,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하며 소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 익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관리자가 잠든 새벽을 틈타 '야짤 달린다' 같은 문화가 생긴 것도 커뮤니티가 남초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커뮤니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지게 되면서, 이들은 보다 쉽게 '여성 혐오'에 빠지게 될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슈가 된 사회 현상이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면 저마다 의견을 개진하고는 하는데, 이때 커뮤니티의 주된 여론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객관적이고 타당한 주장이기 보다는 '반박해줄 사람이 없는' 주장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때문에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때때로 사회 이슈에서 그 원인으로 가해자나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식의 주장이 유포될 개연성이 커졌던 것입니다. 그런 서사들이 차츰 쌓이고 자체 논리를 갖추게 되면서 '김치녀, '된장녀' 같은 담론이 등장하게 됐고, 현재에도 '설거지론' 같은 서사가 퍼지기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부재한다는 점은 또다른 효과도 낳았습니다. 바로 이들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상과 여성상이 현실과 괴리되고 균형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성들끼리만 논의하는 '남성상'은 실제 여성들이 선망하는 남성과는 거리가 있었고, '여성상' 또한 실제 여성들의 정체성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2000년대 내지는 2010년대 동안 이들은 아직까지는 건재했던 '가부장제' 속에서, 가정에서도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순종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남성상'과 '여성상'도 여기서 기원했을 것입니다. 마초적이고 지배적인 남성, 반면 순종적이고 내조하는 여성. 그들은 이런 이미지를 이상화 했고, 그들끼리 이런 남성성, 내지는 여성성을 확대재생산해 나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기가채드' 같은 밈 또한 이들의 '이상적인 남성상'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카 강력한 '익명성'을 보장했다는 사실이 미친 영향]


이용자들이 '젊다'는 사실로부터 '약자 혐오'와 '능력주의'가 나왔습니다. 또 이용자들이 '남초'라는 사실로부터 '여혐'과 '왜곡된 남성상과 여성상'이 나왔습니다. 익명성은 이것들을 대단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것도 굉장히 급진적으로 확대재생산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체면을 차려야 할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 그들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주장을 자유롭게 펼쳤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주장과 서사 중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더 극단적인 것, 더 자극적인 것이었습니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정도를 넘어가면 자연히 온라인에서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혼합하여 혼동을 주는 가짜뉴스', '이성적인 판단 이전에 감정적인 분노를 먼저 끌어내는 프로파간다', '거짓임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음모론'이 유포되고 소비되는 것이 쉬워집니다. 그러니 그들이 구축한 세계관과 가치관은 더욱 빠르게 공고화 되고, 극단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극우 이대남'들은 이렇게 유년 시절에 '남초 커뮤니티' 활동에 깊게 관여했던 인물들이라고 보고, 그렇기에 이들이 '극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평균적인 이대남들과 다르게 급진화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남초 커뮤니티'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었던 '일베' 유저들이, 과거 인터넷에서 그렇게 논란을 많이 만들어냈던 10대 일베 유저들이, 20대 중후반이 되어서 '극우 이대남'의 주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인터넷이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봅니다. 실증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인터넷 보급 이전에 비교해서 이후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인데, 저는 이건 명백한 실수라고 봅니다. 현재의 40대 이상 세대는 '인터넷' 세대가 아닙니다. 한때 '노사모'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것도 당시 20~30대 사람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 인터넷을 활용한 결과입니다.


저는 인터넷이 한국 정치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은 유년 시절부터 인터넷 세계에 깊이 참여한 세대가 한국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그 세대가 바로 현재 20대이고, 이들이 유년 시절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독'된 사람들이 등장한 첫 세대입니다. 이들이 한국 정치에 중심으로 등장하는 건, 이들 세대에서 본격적으로 중진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때, 그러니까 이들이 40대 이상 정치인이 되는 때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 뒤이며 그때 가서야 우리는 인터넷이 한국 정치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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