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는 무엇인가

by 삼중전공생

욕구는 불만을, 불만은 정치를 낳는다.


모든 사람은 욕구가 있습니다. 어떤 욕구는 쉽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욕구가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욕구는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쉽게 해소할 수 없습니다. 욕구가 좌절되면 우리는 불만이 생깁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불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만을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욕구를 포기하여 불만을 해결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현실을 바꾸어 욕구를 만족시켜 불만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불만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불만을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불만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면서 해결해야 합니다. 즉,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상호작용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종류든 간에 현실적인 조건들을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극복할 때에만 해소할 수 있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배가 고픈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케이크를 잘라 먹는 상황도 그런 욕구를 정치적으로 해소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케이크가 한 개라는 현실적인 조건이 모든 사람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토의를 하든, 싸움을 벌이든, 여하간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치솟는 집 값을 잡는 일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집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순순히 내도록 협조를 구하기도 해야 하고, 집이 없는 사람이 집을 살 때 더 높은 대출 이자를 감당하도록 만드는 것에 합의하기도 해야 합니다. 여하간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지 않고서는 저렴한 값에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욕구가 집 값이 오른다는 현실에 의해 좌절될 때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집 값을 잡아야 합니다.


욕구가 있으면, 불만이 있고, 불만이 있는 곳에 때때로 정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논의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정치는 '단체 여행'이다.


우리는 불만을 가지고 삽니다. 불만은 현실적인 조건들이 나의 욕구가 해소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생깁니다. 우리가 불만을 해소하고 싶다면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우리의 욕구가 완전히 충족될 때까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제한하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없는 이상적인 상태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상향이라고 합시다. 우리는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살고 있지만, 이상향을 꿈꿀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상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여행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출발점이라면, 이상향은 목적지입니다. 일단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첫째는 목적지까지 도달할 최적의 방법입니다.


둘째는 목적지까지 도달할 의지입니다.


셋째는 목적지까지 도달할 자원입니다.


문제는 이 여행이 단체 여행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 천, 수 만, 수 억 명의 사람들이 동행하는 여행말입니다.



'단체 여행'은 조별과제와 같다.


나는 파리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도쿄에 가고 싶은 사람도 있고, 방콕에 가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목적지를 통일하는 것부터가 난제입니다. 설령 목적지를 통일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최적의 방법이 무엇이냐를 놓고도 수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적의 방법을 찾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는 절실해서 빨리 가고 싶지만 다른 누군가는 심드렁해서 늦게 가려고 하거나 아예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여행의 목적지까지 돈, 짐 등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지를 놓고도 한참을 다툴 수 있습니다. 이런 단체 여행을 떠나는 일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데올로기는 여행의 '목적지'를 정당화하는 논변이다.


서로 가고 싶은 여행의 목적지가 저마다 다릅니다. 이제 사람들은 왜 이곳이 아니라 저곳을 가야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 냅니다. 서로 논쟁을 하고, 더 나은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바로 그런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왜 나의 이상향이 너의 이상향보다 더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래서 왜 우리는 내가 가자고 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이유가 바로 이데올로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정치철학이라고도 부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수의 현실에 좌절된 욕구, 즉 불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데올로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정의를 말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여행의 목적지가 가장 아름답고 배울 것이 많다고 믿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닙니다. 모든 여행지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장점이 있는 한편, 단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것은 지지하는 여행의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단지 그것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이데올로기에 푹 빠져 맹종하는 것이 위험한 까닭입니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하는 사람들끼리 묶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공산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주 크게 묶어 딱 두 가지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가 그것입니다. 결국 좌파와 우파는 서로 이상향이 다른 두 그룹을 일컫는 말입니다.



진보와 보수는 변화의 '속도'를 말하고, 권력은 '운전대'를 누가 잡을 것인가를 말한다.


이데올로기가 같아도 다툴 여지는 많습니다. 앞서 살펴 본 대로 여행의 목적지에 가는 최적의 방법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의지의 정도가 다를 수 있고, 자원의 관리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의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을 놓고 다투는 것을 노선 투쟁이라고 합니다. 비행기냐 배냐, 직항이냐 경유냐, 경유를 한다면 몇 번을 할 거냐...


이것은 폭력 혁명이냐, 교육이냐, 민주 정당을 만들어 의회 내에서 개혁을 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행지까지 가는 의지의 정도가 다른 것은 이상향에 도달하는 속도에 대한 견해 차이를 의미합니다. 누구는 급진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한편, 누군가는 변화에 신중할 수도 있습니다.


진보는 상대적으로 빠른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을, 보수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지나치게 급진적이면 테러와 같은 수단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신중하면 그 어떤 불만도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속도를 낼 필요도 있지만, 신중해져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진보나 보수 둘 중 하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닌 이유입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일정은 누가 짜고, 돈은 누가 관리하고, 짐은 누가 쌀지 등을 결정하는 일도 다툼의 여지가 많은 일입니다. 그것은 권력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여행지가 정해지고, 그 방법이 알려졌어도, 실제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단체 여행객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을 때 이들이 정해진 일정대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가이드가 이들을 통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든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들을 통솔할 권한을 인정한 권위 있는 지도자와 그 지도자의 지시 사항이 실제로 이행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합의하는 일도 대단히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여담으로, 이것을 합의하는 실제 과정과 별개로 이 권력의 동학을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학술 활동을 바로 정치학이라고 합니다.



목적지, 방법, 속도 등에 따라 다양한 조합의 이데올로기가 가능하다


이 글을 읽었다면 이제는 공산주의는 진보이고, 폭력 혁명을 주장한다는 것이 항상 참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공산주의자이지만, 공산 사회로의 이행을 활성화된 시민 교육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자유주의자이지만 폭력 투쟁을 통한 정권 전복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조합이 가능합니다. 가령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인데, 그 과정으로 탁월한 지도자가 혜성같이 등장해 공화정을 만들고 퇴장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주장을 진보적인 것으로 볼 지 보수적인 것으로 볼 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아니면 이런 경우도 가능합니다. 마르크스는 그의 독특한 경제학 이론으로 자본주의의 종말과 공산 사회의 도래를 주장했는데, 그는 이 공산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모호하게 남겼습니다.


또 푸코는 유명한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가인데, 이 이론의 요지는 정치적 주체의 'do something' 자체가 무의미, 무가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은 현대의 전위예술을 이끄는 가장 진보적인 이론 중 하나로 평가 받습니다.



이데올로기를 바람직하게 대하는 태도


어떤 이데올로기를 공부한다는 것은 가령 파리를 여행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그뿐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듣고 파리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도시를 싫어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파리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령 뉴욕으로 여행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도시들은 뉴욕보다 열등하다고 깎아 내리곤 합니다. 문제는 이 사람은 뉴욕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도쿄나 방콕 같은 도시들의 여행 자료는 찾아 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는 그런 식으로 배우면 안 됩니다. 어떤 도시를 좋아하게 되고, 그 도시의 여행 자료를 꾸준히 찾아보게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이제 그 사람은 자신의 불만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남을 나에게 동조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장엄한 시대 정신의 가호를 받은 빛나는 정의의 사도가 되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을 그저 찬찬히 들어보는 것이며, 그것이 유일한 것이며,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권은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