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플로리다를 휩쓸었습니다. 전력망과 발전소 등도 큰 피해를 입으면서 전력 공급이 부족해지게 되었고, 가정용 발전기와 얼음 등의 수요도 치솟았습니다. 문제는 탐욕스러운 지역 상인들이었습니다. 재해로 인한 물자 부족 사태를 악용해 발전기와 얼음 등을 비롯한 각종 필수재들의 가격을 이전보다 4~5배 높여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비용을 몽땅 지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플로리다 주 당국은 가격폭리처벌법을 집행함으로써 이 사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폭리를 취한 상인들에게 벌금을 물리고 피해자들에게 환불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런 가격폭리처벌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이 마치 있다는 듯이 여기는 이른바 '공정가격'이란 단지 우리에게 익숙한 가격일 뿐 본질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매겨진 우연한 값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플로리다 주의 빠른 사태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각종 필수재의 가격이 치솟으면 시세차익을 누리기 위해 전국에서 온갖 상인들이 플로리다 주에서 해당 재화들을 판매하고자 필사적으로 물자 공급망을 구축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격폭리처벌법을 통해 물가를 인위적으로 때려잡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물가를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플로리다 주의 복구 또한 가장 신속하게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샌댈의 해설
샌댈은 가격폭리처벌법 집행에 찬성하는 측을 공동체의 미덕을 보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직관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탐욕스러운 이익 추구에 이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강력한 느낌을 갖고 있으며, 이건 부당함에 대한 인식이자 도덕적으로 고민할 값어치가 있는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가격폭리처벌법에 반대하는 측은 공동체 전체의 행복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쪽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로리다 주의 빠른 회복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람들 간의 자발적인 재화 교환에 주 당국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설
개인적으로 또 단적으로 딱 잘라서 말하자면 샌댈은 틀렸습니다. 상인들을 '탐욕스럽다'는 이유로 가격폭리처벌법을 통해 단죄한 대가는 무엇인가요? 결과적으로 플로리다 주의 더욱 느려진 복구 속도입니다. 즉 가격폭리처벌법이 시행되지 않았더라면 좀 더 빨리 가정용 발전기를 돌려 에어컨과 냉장고를 가동하고 집도 수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 법이 시행된 탓에 그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비교의 문제에 들어가게 됩니다. 플로리다 주의 물가 폭등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느낌'을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일지라도 플로리다 주의 실제 이재민을 구제할 것인지 말입니다. 즉 이건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는 문제도 아니고, 개인의 자유에 관한 문제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가진 도덕적 직관이, 과연 어디까지 죄 없는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을 만큼 값어치가 있고 도덕적으로 중요하냐의 문제입니다.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밀림에 사는 한 가난한 부족은 자기들이 사는 곳에 자신들의 생업이 될 작은 공장을 짓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당신네가 거기다 공장을 지으면 아프리카 희귀 식물종들이 멸종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러자 선진국들의 구호물자 공급이 중단될 것이 두려웠던 아프리카 부족은 공장을 짓기를 포기했고, 10년 뒤 닥친 기근에 해당 부족의 어린이들이 모두 아사했다고 합시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사람들의 도덕적 직관이란 언제나 기회비용을 갖는 것이며 공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연 환경보호의식이 높은 선진국 대다수의 시민들이 희귀 식물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지관을 가졌다는 사실이, 아프리카 부족 어린이들의 기근과 아사보다 도덕적으로 더 중요한가요? 만약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면, 우리는 샌댈이 말하는 '미덕'이란 것이 언제나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샌댈의 핵심 주장이 반박된 것은 아닙니다. 샌댈은 미덕이 다른 모든 가치 보다 항상 우선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샌댈은 책을 진행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끌어와 공동체의 미덕을 존중하는 것이 사회의 안녕과 유지에 중요하다고 강조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비교적 약화된 주장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허리케인의 사례로 돌아가봅시다.
허리케인 사례에서 가격폭리처벌법이 옳다는 사람들의 도덕적 직관의 손을 들어주는 대가로, 플로리다 주의 일부 이재민은 그렇기 않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오래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부의 이재민들은 과연 인간적으로나 시민으로서나 제대로 된 존중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다른 많은 사람들의 '도덕적 직관'이란 그것이 아무리 강력하고 호소력이 짙다고 할지라도 실상 본질적으로는 타인들의 '느낌'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나의 느낌이 손상받았다는 이유로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나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가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정당한 때는 타인이 나와 어떠한 경우에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자유로운 자의로 약속한 경우에 한정됩니다. 가령 상대가 나와 계약을 위반하면, 위약금을 100만원 내겠다고 약정한 경우에 나는 상대에게 100만원을 강제로 징수하는 손해를 입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고 단지 상인들의 폭리를 취하는 행위가 나의 '느낌'을 거스르게 했다는 이유로 이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이재민들이 손해를 봐야 한다면, 이것은 사실상 이재민들을 나의 '느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에 해당합니다. 즉 이재민을 나와 동등한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미덕으로 포장된 나의 '느낌'을 담는 그릇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부족의 예시에서는 그 부분이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진국의 시민들은 아프리카 부족의 아이들을 제물로 삼아 자신들의 환경보전에 관한 도덕적 직관이란 것을 보호하고 드높였습니다. 이것은 아프리카 부족의 아이들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태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마무리
가격폭리처벌법은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만 대우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미덕 추구 이론으로만 정당화되는 가격폭리처벌법은 수적 우위나 권력적 우위에 있는 집단이 그들에 의해 전유되는 가치를 자신보다 약자인 존재에게 강요하고 해를 입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상호동등해야 합니다. 동등함이 전제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평화도 협력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실질적인 사회적 권력의 격차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두 바로잡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민주 국가가 있는 한 사람들은 서로 법적으로 그리고 그 법을 지탱하는 배경적 신념 하에서는 평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사회적 특권 계층을 헌법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헌법에 명시한 것도 모두 그런 맥락입니다.
앞으로 시리즈가 연재되면서 이러한 인간 사이의 상호평등과 호혜적 관계를 중시하는 철학적 견해가 샌댈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유도하는 결론과 어떤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지 또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샌댈과 동일한 결론을 지지할 수도 있지만 그 이유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샌댈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읽는 과정은, 이렇게 샌댈과 '또 다른 경로'로 사고할 수 있음을 엿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