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핵무기 사용과 고문의 정당화 사례 풀기

by 삼중전공생

실전 문제


다음은 몇 년 전 S 대학교 로스쿨의 면접 제시문입니다.


갑: 제2차 세계 대전 말엽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어. 그 덕분에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몰락' 작전 없이 전쟁이 마무리될 수 있었지. 만일 '몰락' 작전이 실행되었다면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피해자보다 훨씬 더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났을 거야. 즉 세간의 인식과 달리 원자폭탄은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살린 결정이었고,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수단이었어. 원자폭탄 희생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 십만 명이 희생되는 것과 수 백만 명이 희생되는 것 사이에서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면, 책임감 있는 정치인은 전자를 택할 결단력도 때론 필요한 법이지.

을: 목적의 정당성이 그 목적을 지향하는 모든 수단의 사용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야. 지금과 같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린 결정이었다고 해도 그 수단이 지극히 부정의하였다면 올바른 결정이라고 볼 수 없어. 원자폭탄의 끔찍한 잔혹성과 압도적인 파괴력을 생각해봐. 그런 비인간적인 무기의 사용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을 거야. 따라서 원자폭탄의 투하를 승인한 정치인은 결단력이 있기보다는 그저 동정심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라고 봐야 해.
[문제1] 갑과 을 중 타당한 의견을 선택하고 해당 의견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체계적인 근거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논증하시오.

[문제2] 폭발한다면 도시 전체가 날아가 수십 만명이 희생될 수 있는 시한폭탄을 설치한 테러리스트를 긴급체포하였다. 늦기 전에 시한폭탄의 위치를 알아낸다면 폭탄을 해체하고 수십 만명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를 비인간적으로 고문하지 않는 한 폭탄의 위치를 시간 안에 알아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폭탄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테러리스트에게 고문을 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증하시오.




문제 풀이


갑의 주장은 다수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전형적인 행위 공리주의 논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 시리즈에서 살펴본 바 있는 '이익의 저울질'에 해당합니다. 인간의 다종다양한 삶의 양상과 그 양상의 토대가 되는 생명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동시에 이 가치들은 서로 '통약불가능'합니다. 즉 1억 명의 쾌락과 1명의 고통을 비교하는 문제일지라도, 이 비교가 마치 이들을 동일한 잣대로 양화하여 줄 세우거나 저울질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갑은 '전쟁 종식'이라는 '공익'에 원자폭탄 희생자들의 '생명권'을 부당하게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자폭탄 희생자들이 기본권 주체로서 가진 존엄한 지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입니다. 원자폭탄 투하로 희생될 그들의 삶과 존재가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잠재적으로 구제될 이들의 삶과 존재보다 열등하거나 무가치하다고 선언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후자의 수가 더 많다는 이유로 원자폭탄 투하를 결단하는 것은, 마치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이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보다 쪽수가 적고 얇다는 이유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뒤 지구상에서 영원히 불태워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소거법으로 보건대 갑을 지지할 수는 없으니 을을 지지하는 것이 합당할 텐데, 제시문을 살펴보면 을의 논증에도 문제가 있어 보충이 필요합니다. 을은 원자폭탄 투하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왜' 용납될 수 없는지에 대한 규범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고가 경유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수인의 기대가능성'입니다. 기본권 제한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기본권이 제한되는 당사자를 포함하여 모든 기본권 주체의 인간존엄성을 근본적 층위에서 방어하거나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자폭탄 투하 같은 경우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일방적인 생명권 침해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수인할 수 있는 부담이라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즉 원자폭탄 투하는 기본권 주체에게 수인을 기대할 수 없는 부담을 지우고 원자폭탄 투하로 수혜를 볼 집단에 비해 희생자들을 열등하거나 희생되어도 좋을 존재로 취급한 것으로 국가의 체제 정당성을 훼손하는 부당한 기본권 침해가 됩니다.


이러한 사고의 발로가 미친 끝에 갑을 부정하고 을을 지지하며 그에 더해 보충하는 의견까지 제시했다면, 이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문제2]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2]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다수의 생명권'과 '고문 당하지 않은 권리'입니다. 언뜻 보면 이번과 같은 경우에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문이 정당화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사고를 밟아나가다 보면 원자폭탄 투하의 경우와 동일한 방식으로 같은 취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고문이 인간존엄성을 극단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임은 명백합니다. 또한 테러리스트라고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엄연한 기본권 주체로서 그는 자신의 도덕적 가치로서의 존중을 국가에 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체제 정당성의 수호를 위해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줘야 할 규범적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문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테러로 인해 희생될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국가에 자신의 생명권 침해를 호소하여 테러리스트를 고문할 것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요구는 부당합니다. 기본권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보유하는 것이 양립가능하면서 평화로운 공존과 공정한 협동이라는 공동체의 규범적 토대를 침식시키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들의 '생명권'으로부터 도출하는 것으로 보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고문할 권리'는 이러한 조건과 논리적으로 양립이 불가능합니다. 즉 이들이 테러리스트를 고문하지 않는 국가의 부작위를 탓하며 국가에게 테러리스트를 고문할 것을 청구할 권리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에 하나 국가가 테러리스트를 부당하게 고문하여 수만 명이 실제로 목숨을 구했다고 할지라도 이는 불법행위에 의해 누려진 반사적 이익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사적 이익의 상실은 기본권 침해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테러리스트를 고문하지 않는 것은 테러리스트의 기본권을 보호하면서 수만 명의 테러 희생자들의 잠재적인 반사적 이익을 상실시키는 조치인 반면에, 테러리스트를 고문하는 것은 테러리스트의 기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방식으로 수만 명의 테러 희생자들의 반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조치인 것으로 사안을 분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본권 유사충돌'의 국면으로 분석을 마칠 수도 있을 것이나 실제적인 기본권 충돌 사안으로 보아도 '고문받지 않을 권리'를 '생명권'에 견주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까닭도 있습니다. 기본권의 제한은 모든 기본권 주체의 인간존엄성을 근본적으로 방어, 유지, 개선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테러리스트의 고문받지 않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여도 적어도 테러리스트의 인간존엄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아닙니다. 더구나 나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가 필요한 경우 모든 시민에게 극단적인 비인도적 대우를 가할 수 있다는 규범적 선례를 남기는 것은 테러리스트를 넘어 모든 기본권 주체의 존엄성에 대한 진지한 존중의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결론


철학적으로 일관된 입장은 때로 반직관적인 결론으로 초대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상식적으로 [문제2]와 같은 경우에서 테러리스트를 고문하지 않는 것은 현실 정치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면접 제시문으로 나온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접근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A 사안에서는 공리주의의 편을 들었다가, B 사안에서는 자유주의의 편을 들면 면접관은 필히 면접자의 논리 충돌을 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충돌은 논리적으로 도저히 해소될 수 없는 것이기에 면접자는 말문이 막혀 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어느 입장이 되었건 일관된 논지를 견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느 경우에도 차라리 반직관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이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발견되어 면접자의 논리적 사고 능력에 면접관들이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되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차원의 논리 전개는 때로 반직관적인 결론을 내포하는 철학적 입장 중에서도 그 정도가 그나마 '봐줄 만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가령 테러리스트를 고문해야 한다는 입장을 선택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면접관이 이런 변형된 사고실험을 물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 테러리스트는 본인이 고문당하는 것에는 전혀 끄떡이 없지만 4살 딸 아이를 끔찍히 사랑하기 때문에 이 무고한 딸 아이를 테러리스트 앞에서 대신 참혹하게 고문한다면 시한폭탄의 위치를 실토한다고 할 때, 그렇다면 이 4살 여자아이도 마찬가지로 고문해야 할까요?


공리주의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한다면, 수십 만명의 목숨이 여하간 4살 딸 아이가 고문당하는 것보다야 더 중요하다고 보이기 때문에 고문을 피할 수 없다고 답해야 하겠으나 이것은 우리의 윤리적 직관과 충돌합니다. 이것이 그 어떤 경우에도 테러리스트를 고문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결론보다 더 나은 수준의 직관과의 충돌인가요? 사람의 목숨과 고통에 값어치를 매겨 그 무게를 저울질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면 이러한 반례에 직면했을 때 대부분의 면접자들은 마찬가지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제가 권해드리는 것은 이러한 법철학 내지는 헌법학적 배경지식을 충분히 숙지하여 다양한 사례를 풀이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고, 이것이 남들보다 로스쿨 면접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에도 일정한 도움이 되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범학적 사고방식에 숙달되는 것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겠으나 장기적으로 두고 본다면 얻어가는 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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