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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an 11. 2021

어린이의 세계를 통과해온 어른이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신년에 읽는 새 책으로 참 좋았다. 어린이책 편집자를 10년 동안 하고, 어린이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는 저자가 세심하게 관찰하고 쓴 어린이에 관한 에세이를 읽으며, 독자도 자신의 어린이 시절을 떠올리게 되고, 주변의 어린이들을 새삼 다시 보게 되는 책이다.

이번에도 역시 카톡방에서 모인 우리 어른이들은 자신의 어린이 시절이 담긴 사진 한장씩을 꺼내 자신의 어린이 시절이 어떠했는지 이야기하면서 모임을 시작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시대에서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정희 시대를 경험한 정의 사진.

"1979년 국민학교 1학년 입학식 할 때 사진입니다. 우리 집안의 첫 입학이라고 없는 돈에 정장과 부츠를 사줘서 멋내고 갔고요, 옆의 뚱한 애는 우리 옆집 살던 광현인데 둘이 같이 입학했어요. 서울 우이동이고, 삼촌이 찍어준 사진이예요. 뒤에 '너도 나도 서명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는 플래카드와 왼편의 생맥주 간판, 당시 시내버스랑 자동차가 다 찍혀 있어서 그 시절 느낌이 좋아서 이걸로 골라봤어요. 저는 어릴 때 얌전하고 쑥맥이고 내성적이고 부끄럼이 많았고요, 저의 어린이 시절이 피어난 건 3학년 이후입니다."

코끼리 엉덩이가 주인공인가, 뒤의 검은바지 입은 아저씨가 주인공인가 논쟁을 일으킨 영의 사진.

"남동생들이랑 부산 양정에 사는 작은할아버지댁에 놀러갔을 때 사진으로 추정하는데, 빨간 옷 입은 언니는 잘 기억이 안나고요, 앞의 애는 남동생, 뒤의 하얀 티가 접니다. 저날 남동생들 인솔하고 가게에 갔다가 작은할아버지댁에 돌아오는데 똑같은 집(국민주택)이 수십개 늘어져 있어서 너무나 당황했어요. 거의 울먹거릴 때쯤 옥상에서 작은할아버지가 "너네 거기서 뭐하냐?" 불러서 겨우 집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집을 나갈 때는 자신있었는데, 돌아올 때는 정말 모든 집들이 완전히 똑같아 보이더라고요."

모든 회원들이 ㅋㅋㅋㅋㅋㅋㅋ만 찍어댄 현의 그루브 가득한 사진.

"1978년 12월 31일 밤으로, 7세에서 8세로 넘어가던 어린이였습니다. 왕관을 좋아해서 블록을 왕관처럼 만들어서 머리에 쓰곤 했고, 빨간내복을 걷어올려 호방한 기운이 가득하죠? ㅋㅋ 나는야 세상의 왕~ 블록을 엄청 좋아해서 맨날 그걸로 놀았는데, 유연한 블록이라 머리에 꼭 맞게 만들어서 머리에 쓰고 사진 찍었어요. 외할머니 집에 얹혀 살았는데, 이모가 사진 찍어줬어요. 31일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해서 무서워 하며 저렇게 놀았습니다. 춤을 춘 건지 무술이었는지는 잘...ㅋㅋㅋ 저는 좀 주목받는 아이였어요." 

인형인가? 사람이 어찌 저리 귀여울 수 있냐는 부러움을 받았던 달의 사진.

"저 땐 아직 유치원 때고 잠깐 대구에 살았을 때의 집 같습니다. 저는 타고난 춤꾼이었으며 외할머니와 그녀의 친구들이 원을 그린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춤을 추던 사진은 엄마에게 있습니다. ㅋㅋ 저 맨날 춤 연습하고,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행사 때 무대 위에서 춤 춘 이력이 있습니다.ㅋㅋ 유치원 때 담임선생님은 울 엄마에게 "달이가 참 똑똑하고 영악해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습니다. 이쁨 받을라고 별짓을 다한다고. 중학교 때까지도 아파트 복도에서 집집마다 애들 불러 모아서 그들만의 리그를 열어주고 심판 역할했어요. 그리고 그 애들 엄마한테 가서 이렇게 놀아줬다고 자랑하고. 그 엄마들은 제가 애들 봐줬으니까 편했을 거예요." 

본인은 나이들면서 용됐다고 하지만, 모두들 지금 얼굴이 그대로 있다고 했던 옥의 사진.

"저는 달리기가 느려서 민폐인 아이였어요. 유치원 소풍가서 이어달리기 했던 사진 같은데, 원래는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저러고 달렸어요.ㅋㅋㅋ 체육은 좋아했는데, 달리기는 못했어요."

16세인가 17세인가? 아무리 잘 봐줘도 14세 정도의 얼굴로 보이는데 학교 입학 전에 찍었다는 윤의 사진.

"미운 7살쯤 찍은 사진이에요. 뭔가 혼나고 울다가 엄마 친구가 와서 찍어준 사진이에요. 엄마가 짜준 도꼬리 입고, 제일 좋아했던 고양이 삔을 꽂고 있어요. 엄마가 모자부터 양말까지 싹 떠서 입혀주셔서, 저는 사제옷, 메이커옷 입는 게 소원이었어요. 머리는 파마한 거구, 동네 미용실 부엌에서 쭈구려 앉아 머리 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성격은 선머슴아였고, 대문으로 다닌 기억이 없어요. 담 넘어 다녔어요. 여자애들이 와서 이르면, 가서 혼내주는 언니 역할을 했어요. 나름 애기애기한 사진으로 골랐는데 저렇게 조숙할 줄이야..."

은 _ 저는 어릴 때 해맑은 웃음으로 수원시 웃음상을 차지했습니다. 아빠가 안고 있는 사진인데, 옷에 달린 저 동그란 배지는 당시 제가 제일 좋아하던 치킨집 배지예요. 어릴 때 사진보면 저 배지가 종종 눈에 띄어요. 어릴 때부터 먹는 거 좋아하고 일관성이 있었죠.

진 _ 어릴 때부터 동생의 관심을 구걸하던 언니였네요. 당당해보이는 저 포즈는 어릴 때 심취했던 포즈라, 어릴 때 사진보면 항상 허리에 손 얹고 저렇게 찍었네요.

우 _ 서울 도심의 어느 계곡에서 찍은 사진으로, 확실치는 않으나 장승배기란 곳을 지나간 기억이 희미하게 납니다. 이 날 계곡 물 속에서 희한한 벌레를 발견했었어요. 나뭇가지 조각이 움직여서 신기하게 보고 있다가 용기를 내서 잡아봤더니 벌레였는데, 인터넷에 뒤져보니 '날도래애벌레'라고 하네요. 


모두의 어린이 시절을 보며 다들 귀여워하고, 지금 얼굴이 남아 있다며 놀라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학교에서 담 넘었던 사건, 고무줄놀이, 오징어 하다가 조카 울린 사연이 줄줄이 엮여 나왔고, 종국에는 코로나가 끝나면 엠티 가서 춤추고, 오징어하고, 피구하고, 술 마시고, 담 넘기로 합의를 봤다.ㅋㅋ

책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은 다들 비슷했다. 재밌게 읽었고, 울고 웃으며 봤다고. 글쓰기 교실에서 받은 초콜릿을 부모와 함께 먹겠다고 안녹냐고 물었던 부분(우리도 그렇게 부모님을 사랑했을 거다)에서 다들 울컥했고, 튀'김소'보루에서 선생님 이름은 '김소'영을 찾았다는 부분에서도 울컥했다. 다들 신년 첫 책으로 좋았고, 이 책 사길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달은 "어린이 관련이라 나의 주관심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그림책과 동화책을 좋아하고 조금씩 모으는 이유가 '어른에게도 동화는 필요하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며 나는 이런 순수하고 맑으면서도 배울 점 있는 글을 좋아하는 거구나, 내 취향이구나 

생각했어요. 이 책이 마냥 예쁘게만 쓰여졌어도 감흥이 덜했을 것 같은데, 챕터를 잘 나눴고 내용 너무 좋고 북 디자인도 잘했고, 이름도 잘 지었어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책을 쓸 수 있을까 또한번 고민했어요."라고 했다. 영은 주변에 이 책을 어서 읽으라고 마구마구 권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엄마가 아니어서 좋았다는 것도 공통된 의견이었다. 부모라고 아이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엄마여서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그런 부분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서 좋다고 했다.

영이 조카에게 받은 새해 편지

이 모임에는 엄마가 한 사람, 조카를 둔 이모(혹은 고모)가 세 명 있다. 조카들이 5명이나 있는 영은 조카에게 초콜릿 붙인 편지를 받았다며 자랑했고, 우리는 이 편지에서 조카가 고모를 "꽁몽"이라고 부르는데서 다들 쓰러졌다. 조카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부러움에 몸부림치는 회원도 있었다. 이에 더해 영은 조카가 이모와 일주일간 캐나다 여행 갈 거라고 돈을 모으고 있다고 자랑했다. 정은 장남과 장녀의 첫딸이라 어릴 때부터 사촌을 비롯한 아이들을 돌봐야해서 지금도 아이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고, 달과 옥은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잘 논다고 했다. 이 책에서는 어린이를 인격체로 대하면 된다고 하지만 달은 반대로 자신이 아이가 되어 아이와 함께 논다고 했다. 옥은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쓰는데, 그때문인지 조카가 자기를 자꾸 선생님이라고 부른단다. 

이쯤에서 우리 중 유일하게 엄마인 윤의 입장을 들어봤다. 

"이 책은 80% 좋았고, 20% 좀... 애를 길러보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ㅎ 아이들도 사회생활을 하지요. 밖에서 만나는 어른에게는 관계라는 걸 생각해요. 그런데 집이라는 공간에 오면 애들이 거의 동물의 상태로 떨어져요. 참지 않는 공간이죠, 집은. 그런 감정 노동이나 가사 노동을 엄마가 다 받아내니까. 물론 책에서 그런 부분을 일부 이해해줘서 좋았어요. 그런 과정에서 아이와 엄마는 모자가 되어갈 거라고. 칭찬과 사랑만으로는 어쩌면 반쪽짜리 관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여튼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좋았는데, 뒤쪽에 아이들을 너무 완전한 존재로 대하는 부분은 물음표가 들었어요."

멀쩡하던 아이들도 집에 오면 괴수가 된다는 부분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현은 저자가 경향신문 칼럼에서 쓴 글을 인상깊게 읽었다며, 초보자를 '~린이'라고 부르는 거 하지 말자는데 동의했다. 요린이, 헬린이, 런린이..같은 워드에는 어린이를 미완의 존재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어 슈돌 같은 유아관찰예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어른들은 대체로 TV에 나오는 귀여운 어린이를 감상하고, 아이를 예뻐할 때도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귀여운 아이로 예뻐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주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의 첫 장에는 어린이들이 신발을 신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각자 어릴적 유난히 시간 걸렸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장 연장자인 두 사람이 타이즈를 입는 것과 알약을 삼키는 것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는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나머지 연하자(?)들은 특별히 느리거나 못했던 것이 없다고 하여 연장자들에게 현타가 왔다. 

이 책에는 '멋진 _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이 두살도 열두살도 여든두살도 멋질 것 같은데 마흔두살은 안멋질 것 같다고 하자 저자가 마흔두살은 돈도 많고 멋지다고 절박하게 호소하는데, 우리도 자기 나이라서 좋은 것들을 말해보기로 했다. 

정 _ 인생에서 돈이 제일 많고, 어린이 때보다 자잘한 걱정이 없어져서 좋다.

현 _ 자유로운 49살. 억지로 공부안해도 되고, 여행도 맘대로 가고, 무엇보다 돈 많아.

윤 _ 멋진 46살. 내 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느끼게 된다. 좀 덜 열심히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달 _ 멋진 40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만큼 사 먹을 수 있어요.

옥 _ 멋진 44살.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있으면 제거)

영 _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싫다고 말하고 안하기로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오~ 그러고 보니 다들 멋진 40대를 보내고 있는 듯.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키즈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책에서는 그것이 왜 나쁜 것인지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고, 우리 또한 그 의견에 동의한다. 정은 "인터넷에서 보는 개념없는 엄마나 아이는 실제로 본 적 없다. 정말 일부의 얘기를 인터넷에서 여론화 해서 이끄는 것 같다. TV관찰 예능이 늘어나는 것과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것이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고, 정인이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는 무조건 엄마 소관으로 돌리고 배제시키는 게 다 일맥상통하며, 그렇게 외면하고 혐오해놓고 애가 죽으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고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한 아이의 엄마인 윤은 "배드페어런츠 존이라는 이름조차 웃기다. 아이와 관련되어 그렇지 실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장애인, 여자, 아이 등 약자에 대한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세팅해야 하느냐의 문제인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초상화를 그리듯 타인을 보고 대한다는 부분이, 어린이를 대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가져야 될 태도로 연결된다. 즉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했다.

달은 "고급진 샵을 꾸며놓고 돈 없어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면 응대 안 해주고 무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원하는 사람만 받겠다. 이 분위기를 해치거나 자격 없는 사람은 나가라."는 건 그냥 귀찮고 싫고 우리 분위기에 안 맞는다는 것. 그런 사람들은 그냥 남의 돈 버는 일 하지 마라고 하고 싶다. 노키즈존은 모든 차별을 반대한다는 전제에서 없어져야 할 단어이며, 이렇게 말한 저부터 벽보고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점심 시간이 넘어가며 급하게 체력이 떨어진 우리는 급마무리에 돌입해 조카로부터 편지를 받은 영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아이를 대하는 태도일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조카들에게 정성들여 답장을 써야겠어요. 우선 아는 어린이에게라도 최선을 다하자."했고, 현은 "저는 남의 집 애한테 이상하고 재밌는 할머니가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며 2시간 여에 걸친 온라인 독서모임이 끝났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연 | 사계절)

참여자 _ 윤, 옥, 달, 영, 정, 현 (게스트 : 우, 은, 진)

일시 _ 2021년 1월 9일 AM 10:40~12:40

장소 _ 온라인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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