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윤리가 공존할 수 없을 때
심윤경의 <영원한 유산>은 '적산'에 대한 이야기다. '적의 재산'이라는 뜻의 적산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곳곳에 남겨진 일본인의 재산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심윤경은 1970년대까지 옥인동 언덕배기에 있던 기이하게 아름다운 건물 벽수산장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없어진 벽수산장은 흐릿한 사진으로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건물이다.
<영원한 유산>의 주인공 윤원섭은 벽수산장을 지은 친일파 윤덕영의 딸이며, 그녀를 원치 않게 보필하는 이 소설의 화자는 이해동이라는 언커크의 호주 대표 애커넌 씨의 비서다. 탁월하게 형상화된 인물들을 통해 친일, 적산, 국제관계 등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위드 코로나를 앞두고 마지막으로(과연 마지막일까?) 줌 모임을 했다.
Q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가장 감동적이거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은 _ 초반에는 의고체라 상당히 읽기 힘들었다. 다행히 적응하고 나선 괜찮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해동이 윤원섭에게 했던 "1등을 할거까지 있을까?"하는 말에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고모가 해동의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았다.
예 _ 나도 해동이 윤원섭에게 질문 공세를 할 때 사소한 복수로 느껴져 좋았다. 화재가 나기 직전 진형의 식구들이 나무 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도 좋았다. 마지막에 벽수산장에 화재가 나면서 끝나는데, 복원을 할지 다 없애버릴지 선택할 기회를 주는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윤 _ 상가집에 진형의 가족들이 와서 이성준이 해동의 아버지가 맞다고 증언해줬을 때, 지원군이 온 느낌이었다. 나무와 비견해서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살 수 있듯, 해동에게 그런 뿌리 같은 제2의 가족들이 등장했기에 해동은 언커크를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포 _ 고모가 제사 지낼 때 다 사람이 먹고살자고 하는 거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건물은 없어져도 사람의 기억이 그것을 추억하고, 이 소설도 그런 일환으로 기록으로 남겨놓은 게 아닐까. 다 남은 사람들이 하는 거다.
정 _ 처음 읽었을 때는 고모 장례식에 진형 식구들이 와서 해동 아버지 이야기를 해줄 때 울었는데, 이번에 두번째 읽으면서 고모가 해동의 서울 집에 와서 "서울에서 장하다" 하는 장면에서 울었다.
Q 나는 적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호불호, 없애야 하는지 놔둬야 하는지 어느 쪽인지 얘기해봅시다.
은 _ 적산인 걸 모르고 봤을 때는 아름답다고 했다가 적산이라는 걸 아는 순간 발길을 뚝 끊은 적이 있다. 군산 쪽의 적산 가옥도 그랬고, 예전에 내가 발제를 했던 만리동의 카페도 적산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내가 싫은 것과는 별개로 굳이 다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역사는 역사니까.
윤 _ 나도 은과 같은 생각인데, 적산을 밀어버리는데도 돈이 드니까 없앨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그것들이 허물어지고 고스란히 사그라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적산 가옥의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미의식와 역사의식이 짬뽕되어 가스라이팅 당하는 느낌이 있다. 그것들이 아름답다고 칭송 받는 게 싫다. 해동의 마음과 같다. 예전에 조선호텔 100년사 사사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광고주 쪽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마치 황금새가 날개를 쳐 올라가는 느낌이라는 둥 굉장히 미화해서 쓴 원고를 줬다. 그 부분이 불편해서 결국 방향을 수정해 팩트 위주로 바꿨다. 해동이 벽수산장에 대한 카탈로그를 만들 때 윤원섭의 말을 받아적으면서 느꼈던 경험을 나도 한 셈이다. 그래서 더 이 소설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신세계 백화점도 미츠코시 백화점일 때부터 100년을 헤아려서 기념행사를 거하게 하려다가 반일 정서 때문에 창립기념일도 1960년대 한국 자본으로 바뀐 이후부터로 바꾼 걸로 알고 있다.
포 _ 나는 적산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프라하의 그 아름다운 건물들이 다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하더라. 만약 그것들을 다 없애버렸다면 지금의 아름다운 프라하도 없다. 시련없는 아름다움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식민지뿐 아니라 바티칸 성당 같은 건축도 전부 고혈을 빨아 만든 건물이다. 그런 건물들을 개조해서 다른 용도로 쓰거나 남기는 건 좋다고 본다.
정 _ 나도 적산을 좋아하는 편이다. 일부러 여행을 다니며 적산 가옥을 찾아가기도 한다. 마포 시의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없애겠다고 단골 공약으로 나오는 상암동 일본인 관사 같은 데도 들어가서 구경하고, 없애지 말았으면 하는 쪽이다. 역사는 역사대로 남기고,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자체로 볼 수는 없는 걸까?
예 _ 나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경우는 사진을 보고 없애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조선총독부 폭파와 남대문 재건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조선총독부는 너무나 크게 경복궁과 우리땅을 침범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결국 폭파되고 경복궁이 복원되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에 대해 사람들은 세 가지 의견이었는데, 1. 없애자. 2. 옮기자. 3. 땅속에 묻고 그 위로 밟고 다니자. 였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1을 택했다. 남대문 같은 경우는 화재 후 같은 자리에 복원되었는데 그걸 그대로 국보1호로 두는 게 맞냐는 의견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이번 기회에 국보1호를 다른 걸걸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급진적인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수능 볼 학생들이 외우기 힘들다" "그걸 바꿀 수도 있는 거냐?" "공무원들이 골치아파할 거다" 하면서 반대 의견을 냈다. 다행히 남대문은 재건 되면서 섬처럼 고립되어 있던 곳에서 주변의 성곽까지 복원되어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문이 되었다고 한다.
Q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름다음과 윤리가 충돌할 때 나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은 _ 당연히 윤리 쪽이다.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윤리 내에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 비윤리적인 것이 예술성 때문에 미화되는 거 안좋한다. 예를 들어 좋아하던 드라마에 나온 배우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뭔가 폭로되면 그 드라마를 안보게 된다.
윤 _ 나도 은과 비슷하다.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나쁜 의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유니클로 불매운동이 일어난 후 유니클로는 일절 사입지 않는데, 옷이 좋기 때문에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사입는 디자이너들을 보며 약간 혼란할 때도 있었다.
예 _ 나는 언론이 기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미투나 학폭 같은 일들이 어떤 것은 침소봉대되고 비슷해보여도 정도의 차이도 있는데 모두다 획일적으로 재단되는 건 문제가 있다. 나의 입장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 _ 나도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친일파의 작품이라고 다 폄훼할 게 아니라 친일로 돌아서기 이전의 좋은 작품들은 낙인찍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 _ 나는 김기덕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고, 적산가옥도 좋아한다. 윤리와 아름다움을 논할 때, 과실과 아름다움을 함께 놓고 이야기하며 토론해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고, 윤리적으로 나빴던 건 나빴던 거라는 식으로.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사회가 너무 투명한 유리처럼 되어가서 문제인 것 같다. 유명세가 있는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짓을 저지르면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데, 사실 안유명한 사람 중에 그보다 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정 _ 나는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써 완성도를 중시한다. 이를테면 마광수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재판을 받고 난리가 났을 때 그 작품(즐거운 사람)이 너무나 완성도가 떨어지고 재미없어서 실망한 적이 있다. 나도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는데, 김기덕 영화 중에서도 괜찮은 작품이 있고 엉망인 작품이 있다. 서정주의 시 중에도 멋진 것이 있고, 노골적으로 찬양이 드러나 눈살 찌푸려지는 것이 있다. 그것들을 구분해서 봤으면 좋겠다. 물론 창작물에는 작가의 모든 것이 투영되기 때문에 윤리와 아름다움을 딱딱 구분해서 볼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시간, 인물 가상 캐스팅 시간이 돌아왔다.
윤원섭 역으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배우는 김혜수, 그 외에 장미희, 김민희, 강한나 등이 나왔다.
해동 역으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배우는 변요한, 그 외에 장동윤, 박해일 등이 나왔다.
고모 역으로는 예수정, 애커넌 씨 역으로는 데이비드 맥기니스가 나왔는데 너무 날카로운 인상이라며 차라리 샘 해밍턴이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벽수산장은 어떻게 보면 김구나 처칠처럼 포즈만 있는, 하지만 그 때문에 중요해보이는 유산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어 질문했더니, 윤이 슬기로운 대답을 해줬다. 벽수산장은 김구보다는 <마지막 황제>의 부의 같은 유산이었다고. 처칠이나 김구는 국민들에게 영향력이 있었지만 벽수산장에는 그런 영향력은 없다고 했다.
2021년 10월 23일 오전 10시
영원한 유산 _ 심윤경
참석자 7명 : 정, 예, 포, 윤, 은, 우, 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