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할 수도 있는 일
배민, 요기요, 마켓컬리, 쓱, 쿠팡 로켓배송, 카카오택시, 대리운전, 우버이츠.... 요즘 이중 하나쯤 앱으로 주문하는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우리 멤버들은 특히 배민과 쓱과 쿠팡 의존도가 높았다. 택배기사들이 과로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새벽배송 택배 박스에서 나오는 포장더미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이 익숙한 편리함은 포기하기가 힘들다. 플랫폼 노동은 앱을 포함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배달업, 대리운전 등의 노동 형태를 일컫는다. 정말 쿠팡과 배민의 광고대로 주말 이틀 하루 8시간만 일해도 7~80만원은 벌 수 있고, 자전거나 도보로도 음식 배달을 할 수 있고, 월수입 400만원도 가능할까? 이 책의 저자 김하영은 <프레시안> <피렌체의 식탁> 등에서 기자, 편집장으로 일하다 2020년에 '플랫폼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고 200일 동안 일한 현장의 생활을 기록했다. 모른다, 우리가 지금 누워서 또 앉아서 주문 중인 물건을 우리 중의 누군가 포장하고 배달하는 날이 올지도.
10월 9일 한글날 아침,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플랫폼 '줌' 감옥에서 만나 플랫폼 노동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보고 우리의 미래까지 한번 걱정해 봤다.
발제자 예가 물었다.
1. 책을 읽고 난 감상평을 얘기해 보자.
예: 요즘 알바나 취준생들이 일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플랫폼 노동자가 그보다는 편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다. 일본의 흐름을 우리도 따라가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을 쓰는 기업이 남긴 할 것 같다.
정: 음악을 하는 내 친구 주변인들도 배민이나 쿠팡 같은 데서 알바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 예전과는 배달업에 대한 시선이 달라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에 비해 이 저자는 좀더 나이브하고 약간은 기업의 편에 서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자기가 일하는 직장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포: 모두가 본업 없이 알바만 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쿠팡이 기계화가 되면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우: 플랫폼 노동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게 되면 인간이 '부스러기 노동'을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나도 저자가 다소 해맑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고 재미있는 심층 취재 잘 봤다는 느낌이다.
옥: 나 역시 조금 아쉬웠다. 기획 취재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영: 같이 일했던 50대 외주 교정자가 자기도 쿠팡에서 일할까 고민 중이라고 해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진담이었다. 언제든 쿠팡의 사용자였다가 노동자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이 책에 나오는 플랫폼 노동자들도 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아닌가. 기업들 경쟁이 심화되면서 그 부담을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지고 있고, 소비자들은 죄책감을 안고 기업이 놓은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한다. 정치와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고 있을까 궁금했다.
SSG 닷컴은 온라인 물류센터 '네오'로 물류 작업을 80%까지 자동화했다고 한다. 사람이 물건을 찾으러 가지 않고, 물건이 작업자를 찾아온다는 무슨 미래 SF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저자가 맨 처음 일한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개인당 하나씩 지급되는 PDA가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하면 된다고 한다.PDA 옆의 버튼으로 바코드를 읽고 화면에 뜨는 상품을 찾아 카트에 싣고 포장대에 갖다주면 된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쿠팡의 일당은 6만 8170원(2020년 기준). 시급으로 계산하면 8590원. 2021년 우리나라 최저 임금은 8350원.
2. 요즘 자주 사용하는 플랫폼(온라인 제품, 음식, 서비스 구매 분야 등)이 있다면?
영: 네이버 쇼핑, 오아시스 새벽 배송, 온라인 서점 앱을 많이 이용한다.
예: 쿠팡 플래시백 자주 이용했다.
포: 편의점을 통해 택배를 보내는 것 말고는 없다.
정: 쿠팡을 이용하다가 사고가 연이어 터져서 사용을 안한다. 요즘은 쓱 배송을 이용한다.
은: 쿠팡이나 배민을 자주 이용한다. 독립하면서 쿠팡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비대면 배송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사는 어린 친구들일수록 배달앱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다우: 배민밖에 이용하지 않는다.
"시간당 평균 1만 5000원.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 시간날 때 한두 시간,
가볍게 운동 삼아 한두 시간, 가볍게 주말 오후 한두 시간, 함께해요 배민커넥트!"
배민커넥터 모집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홍보문구라고 한다.
가볍게 운동 삼아 한두 시간이라니!! 당장 뭐라도 잡아 몰고 달려나가고 싶게 만드는 문구다! 금방 집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도 그런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 배민커넥터 일을 시작했다. 전동킥보드, 심지어 도보로도 배달할 수 있다고 한다. (말은 되게 멋있어 보이는데) 배민커넥터는 배달가방, 헬멧, 우비까지 자기 돈으로 사야 되는 그야말로 그냥 알바다. 그렇게 마스크, 헬멧, 배민커넥트 배지, 배달가방, 장갑, 스마트폰 등을 (자비로 사서) 갖춰 입고 '배민라이더스' 앱을 켜고 콜이 뜨면 다른 수많은 배달원들과 경쟁하는 시스템. (오토바이 기준) 이렇게 한 달에 25일 하고 이것저것 떼고나면 손에 쥐는 돈은 160만원 정도라고 한다. 최저임금이 안 되는 돈이다.
또 발제자 예를 비롯한 참여자들이 쿠팡 등의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자리를 로봇이 대신하는 날이 올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 인간이 로봇을 관리하고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인간에게 일을 지시하고 감시하며, 언젠가는 그 자리마저 모두 로봇이 대신할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만 같다.
3. 특정 음식을 배달 시킬 때 배달거리, 배달시간, 추가 배송비 등 구매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예: 내가 배달앱을 이용할 때 가장 많이 따지는 세 가지다.
영: 보통 픽업해서 먹는 편이며, 배송비를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은: 리뷰를 제일 눈여겨보지만, 질문에 맞춰 답하자면 나도 배송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 나는 쿠팡 판매자의 입장이다. 쿠팡이 판매자에게 배송비 무료를 유도하고 있어
결국 배송비를 판매자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우: 주로 주말에 배민을 쓰는데, 배달거리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 이용하지 않는다. 별점 테러 때문에 누가 죽고 이런 꼴이 너무 보기 싫다.
4.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은 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걸까?
이 질문에는 거의 모두 필요하다고 답했다. 술을 안 마시게 할 수는 없으니, 대리운전이나 그 비슷한 서비스는 필요한 것 같다고 했고, 더불어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과 이용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대리운전 서비스가 너무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택시운전사들이 반발할 새도 없이 정착된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유럽처럼 저녁 6시가 넘어가면 상점의 불이 꺼지기 시작하는 대한민국 거리도 상상하기 힘들다.
5. 저자처럼 플랫폼노동자로 일해 본 적 있는지? 혹은 꼭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지?
영: 운전을 못하니 선택의 여지 없이 쿠팡 물류센터.
포: 우버가 있다면 우버 운전. 크몽 같은 디자인 작업은 해봤고, 또 한다면 디자인 분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 물류센터에서 일해본 적도 있고, 나도 쿠팡.
은: 운전과 관련된 일은 하기 싫다. 쿠팡 피커맨을 부업으로 해보고 싶다.
정: 걸어서 서류 배달해 주는 일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하루 정도는 일해보고 싶다.
예: 쿠팡이츠. 돈을 벌기 힘든 구조인 것 같기는 하다.
요즘은 택배 기사, 물류센터 직원, 음식 배달 라이더가 과로나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드물지 않게 듣는다. 경찰은 오토바이가 신호위반을 해도 쫓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도망가는 과정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도 음식배달, 당일 배송, 새벽 배송 등 점점 빠른 서비스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안고 있다. 책의 저자는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시급에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플랫폼 노동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생겨나는 이 같은 노동 형태와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게 될 미래에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담은 가이드처럼 읽히기도 한다.
2021.10.09(토) 오전 11시
"뭐든 다 배달합니다" (메디치)
ZOOM
참여자: 예, 영, 포, 우, 은, 정, 옥 (총 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