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지렁이 한마리가 버스정거장 시멘트 보도블럭
좁은 틈을 찿아내곤 그 습윤한 몸뚱아리를
보드라운 흙속에서 꺼내 놓았다
3일간의 낮아진 비구름 한자락이
그렇게 반가와서 였겠지
보일리도. . 들릴리도 없는
이녀석의 섭생이야 촉촉히 젖은
적갈색 황토를 고대 했었을건데
어쩐다. .
천만년,
아니 수억년을 그렇게 땅을 뚫고
항상 비내림과 질좋은 황토를 만났을
지렁이는 이렇게 세상이 갑자기 바뀌었음을
알기나 했을까
딱딱한 아스팔트에서 힘겨운 꿈틀거림으로
조금씩 움직여는 보지만
운좋게라도 조그만가게 앞 작은 화단의 흙이라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필시 자동차의 바퀴나 바쁜 사람의 구두 뒷굽에 연약한 몸뚱아리는 짓이겨지고 말겠지
그래 알리가 없었을게야
수억번의 세대가 지나가도록
변하지 않을거라고 믿었던,
가끔 나가보던
땅위에 갑자기 대도시가 들어섰음을
그리고 그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서
얼마나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흙의 내음을
찿아 헤매일것인지를
이건 마치 어울리지도 않고
영혼마저 없는 낱말들을 조합해놓곤
이게 시라는 거야 하고 세상에 떠벌려놓은
생초보 작가와 같은 순진함
하지만 찢기우고 짓이겨져도
어떻게든 살아져 보려고
노동과 고뇌와 진리인지 아닌지도 모를
가치관으로 꿈틀대는 인간보다야
저 지렁이의 순진함은
얼마나 본능적이며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한것을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부끄럽게 깨닫는다
위험한 도시위에서
본향같은 황토를 찿아 꿈틀대는
지렁이를 애써 외면하며
난 버스에 오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