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박이

사춘기

by 산돌림



이제 막 두발로 설수 있는 그때 즈음의 아기였다


*


신림동에서 이사가서 잠시 살았던 봉천동 하늘아래 첫동네는 지독히도 지난했던 동네였다

하교후 집으로 돌아오는길은 차라리 등산이었다

단칸방. . . 그나마 내겐 부엌위 다락방이 허락되어졌고

가끔 자다가 깨면 쥐와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면 녀석도 꽤 귀여웠다

녀석은 녀석대로 어디론가 사라져갔고 난 죽지않을 만큼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연탄가스를 맡으며 카세트를 끌어안고 늘어진 테이프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다시 자곤했다


그동네는 사람을 늘어진 테이프처럼 만들었다

아직 사춘기가 덜 끝난 내게는 저녁마다 가기싫은 곳이었고

그래서 45원하던 회수권을 친구에게 주고는 떡볶이 반접시를 얻어먹고 5정거장을 일부러 터덜거리며 걸어가곤 했다


숨막힐듯 좁은 골목들을 지나가서 머리를 숙여 들어간 집에는 . . 어느날 그 아기가 방안에 있었다

하얀 면기저귀를 차고 있었으며 노란고무줄은 아기의 허리에 빨간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어디서 온 아기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기는 아기같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싫어서

이놈! 하고 윽박을 질렀는데 아기는 울듯말듯한 표정을 지은채 가만히 서서 한손으로 서랍장의 고리를 잡고 있었다

그 고리만이 마치 갑자기 바뀐 자신의 주위 환경에서

자신을 구원해줄것처럼. . .

난 아기의 그 꼭 쥐어진 손을 보고는 당황스러운 미안함을 느끼며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


"애 엄마가 집을 나갔다잖우

애 아빠는 일을 해야하구. . 한달에 5만원 준다니까

당분간 맡아 보려구. . "


새엄마는 그렇게 아기를 데려온거였고

가뜩이나 비좁은 방을 더 좁게 만들었다


아기는 잘 울었다

밤에도 툭하면 깨어서 칭얼거렸는데 울음소리가 묘하게도

애써 참는듯한 안으로 잠겨들어가는 소리였다

그래서 더 싫었다

아기면 아기처럼 크게 울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난 아기가 울때면 미친듯이 연습장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연시들을 마구마구 써내려갔다

내게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인것처럼. .


*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또 울고 있는 아기를 보았다

새엄마는 어디가고 없고 아기만 혼자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내 눈치를 보며 울고있었다

아기의 등을 한대 때렸다

그때 새엄마가 들어왔다


"돌려보내요!!! 저 녀석!!!"


내 고함소리에 아기는 울음마저 그치고 새엄마에게 안겼다


"애는 왜 때리고 그래!"


새엄마의 말에 난 이상한 대답을 했다


"애가 . . 애같지가 않아요!"


한살박이 아기는 세달후 되돌려 보내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수없었다

친척에게 맡기든 고아원에 보내든 그건 애아빠가 알아서 할일 이라고 매몰차게 생각했다

이제 아기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된다는것만이 좋을뿐이었다


*


이날밤 난 다락방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끅끅 대고 울었다

내가 그 아기와 같았다는 처절함 때문이었다

난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었으며

노란 고무줄은 내 피부를 압박하고 빨간 흔적으로 조이고 있었던거였다

가난이라는 굴레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춘기의 소년은 서랍의 고리를 잡고 겨우 버티고 선 한살박이 아기처럼 연약했었던거였다

그래서 그 아기가 그토록 싫었던거였다

마치 나를 보는듯해서. .

그리고 아기의등을 때린것은 자해와도 같은것이었다


울다가 내손을 보았다

그리고는

어리디 어린 아기를 때린 못된손에

볼펜을 마구 찍어댔다


이것으로 참회가 되기를,

이곳을 벗어날수 있기를,

조금더 빨리 나이가 들기를,

이것이 계속될 삶이라면 차라리 빨리 내 목숨을 거두어가기를 볼펜심에 찍히는 아픔속에서 통렬히 빌었었다


*


다락방으로 장마비가 새어들어왔다

벽에 기대어 앉아 양동이로 떨어지는 빗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온해지는것을 느꼈다

서서히 내가슴속의 지난함이 사라져가는것을 알수있었다

양동이가 다 차고 넘치기 직전까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세트에서는 늘어진 테이프가 비틀스의 렛잇비를 노래하고 있었다


(비가오니 술땡기는 옛일만 떠오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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