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부끄럽다
수치심(羞恥心, shame)이란 무엇인가? 수치 감정은 다른 감정들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말한 것처럼, “우리 어법상 부끄러움의 영역에 포함되는 현상들은 워낙 다양하고 이질적이어서 오직 언어 표기의 공통성만 갖는다고 할 수 있다(Simmel, 1901/김덕영·윤미애 옮김, 2006: 227).” 그러니까 우리가 부끄럽다는 하나의 표현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도 사실 이 표현으로 포착할 수 있는 상황들은 꽤나 다양해서 공통점을 찾기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수치심을 둘러싼 우리의 모든 정서적 경험들을 하나로 꿰뚫는 포괄적인 정의를 시도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작업처럼 보인다.
보통 이 감정의 개념을 파악하려고 할 때 흔히 취하는 접근방식은 두 가지 정도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이 감정을 경험했을 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신체 또는 행동의 변화를 포착하고, 이로부터 어떤 의미 있는 규정을 이끌어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관련 연구들은 이런 점들에 주목함으로 다른 감정들과 구별되는 수치심만의 특징을 포착하고자 한다. 수치심에 빠진 사람들은 주로 얼굴을 붉히고 손으로 가리거나 고개를 숙임으로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며, 입술이나 혀를 깨물고 어깨는 앞으로 움츠리는 등의 행동 패턴을 보인다.
진화론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찰스 다윈은 동물과 인간을 비교 대조하는 연구과정에서 수치심에 대한 매우 훌륭한 통찰을 오늘날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이 겪는 수치심의 발현의 원인을 유전적 요인에서 찾는데, 얼굴의 홍조를 인간 진화과정에서 수치심을 지시하는 대표적인 증상 가운데 하나로 본다. 이런 접근에 따르면, 수치 감정은 이것만의 특수한 신체 변화를 수반하거나 그것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고유성을 가진다.
둘째, 언어적 어원 분석을 통한 이해이다. 이는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언어공동체 속에서 수치심이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고 또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 속에 반영되어 왔는지 파악하는 방식이다. 가령 수치심의 독일어 표현 Scham의 어근 kam과 kem, 고대 그리스어 aidōs과 aischron은 성적인 의미를 가지는 데, 이로부터 인간 신체의 성징이 드러난 특정한 부분이 주는 힘과 그것을 은폐하고 터부시 했던 서구 고대인들의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접근은 수치 개념에 대한 인류의 역사적 통찰과 관점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접근은 수치 감정의 다채로운 양상을 드러내는 데는 유익할 수 있으나, 하나의 명료한 학문적 정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처음 보는 어른에게 인사하기를 꺼려하여 부모의 뒤로 피하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많은 지인들 앞에서 자신의 치정이 밝혀진 채 집에 돌아와 혼자 있게 된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어떤 측면에서 같거나 다른가? 두 사태는 붉어진 얼굴이나 귀 등 겉으로는 동일한 신체적 증상을 보일지 몰라도, 면밀하게 고찰해보면 서로 다른 층위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처럼 생각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감정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른 한편, 수줍음, 창피, 염치, 체면, 후안무치, 망신, 무안, 주책, 철면피, 인면수심 등 수치 감정의 한국어 용례만 살펴보더라도, 각 어휘는 수치심이라는 용어로 포괄되어 있는 이 감정적 경험의 일부분을 반영하는 것이며, 미묘하게 다른 상황별 특징과 그에 따른 심적 경험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구별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적 연구들은 이런 이해만으로 만족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접근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기 전 일종의 개괄적 수준에서 다루는 접근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수치심은 매우 다양하고 풍성한 결을 가졌기에, 사뭇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명제로 규정하기 어려운 감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로 포섭하기 힘든 수치심 유발의 원인들 혹은 계기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이 무언가 공통적인 구심점을 가진 하나의 감정으로 부를만하다고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추측컨대, 이 감정의 가장 내밀한 시발점은 우리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심적 역학에 있는 것 같다. 짐멜은 이 측면과 관련하여 가장 집약적으로 수치심의 핵심을 포착해낸 학자 중에 하나다.
그는 수치 감정이 경험되는 모든 현상들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자아의 강한 부각과 위축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수치 감정을 경험하는 주체는 고통을 느끼는 데, 자신의 자아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으로 분열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주목되면서 자신의 자아가 원치 않게 강하게 부각되며,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그가 암묵적으로 상정하고 있던 규범적 이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불완전함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기를 경멸하게 된다(Simmel, 1901/김덕영·윤미애 옮김, 2006: 230). 즉 수치심은 타인의 이목과 같은 외적 요소와 그에 따른 자신의 자아의 결함의 각성이라는 내적 요인의 결합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부끄러움의 심리적 구도는 자아의식이 도덕적 과정 속에서 고양됨과 동시에 격하되는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때 비로소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외적 요인은 언제나 남들의 이목인데, 이것은 우리 자신이 관찰하는 부분적 자아와 관찰의 대상이 되는 부분적 자아로 나누어지는 것을 통해서 대체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은 자기 자신과 대면해서 자신을 대상화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능력으로 정신의 전체적인 본질을 규정한다. 이로서 우리의 정신은 외부의 존재와 자기 전체와의 관계를 자신 안에 설정할 수 있다. 수많은 관계에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의 판단, 감정, 의지를 대신하도록 자신의 일부를 스스로에게서 분리시킨다. 마치 제삼자가 하듯이 자신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판결을 내릴 때 우리는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타인의 예리한 이목을 이제 우리 자신 안에 이식한다. ... 따라서 우리는 보통의 경우 다른 사람의 이목을 통해서 일어나는 내적 상황을 순전히 자신 안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한 자신 앞에서 부끄러워할 수 있다.(Simmel, 1901/김덕영·윤미애 옮김, 2006: 233-234).
짐멜의 설명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점은, 수치심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치를 느끼는 개인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보다는 그 특정한 상황으로 인해 발발한 자아의 어떤 형식적이고 내적인 변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치심은 그 감정의 원인이 되는 외적 상황의 공통성보다는 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심적 체계의 특징에 주목할 때 보다 용이하게 이해될 수 있는 감정으로 보인다.
수치심을 겪고 있는 한 개인을 둘러싼 외적 상황들이 이 감정이 발생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개념적 정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는, 이 감정이 발생하는 상황들의 외연이 지나치게 크고 따라서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우리가 부끄러움을 경험하는 것은 반드시 엄밀한 도덕적 틀이 개입된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발이 걸려 헛디디거나 넘어진 경우, 또는 많은 청중을 앞에 두고 중요한 발표를 하는 와중에 갑자기 전달할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 경험하는 느낌은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꼭 누군가가 내 앞에 있어야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에도 수치를 느끼고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 그리고 단지 지금 막 발생한 실수에 대해서만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나 심지어 미래의 특정한 순간을 회상하거나 예상하며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사람마다 혹은 어떤 사회문화적 조건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수치를 느끼지 않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으며, 때로는 수치심이 아닌 다른 감정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치심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시도할 때 유념해야 할 사항 중에 하나는 이 감정이 특정한 내용을 가지는 상황 의존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감정 주체 내면의 어떤 일정한 도식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감정에 가깝다고 보는 것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