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의 기념비, 동물원, 그리고 밀롱가의 밤
기념비에 담긴 아르헨티나의 역사
아침 러닝을 위해 팔레르모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공원의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기념비인 라 카르타 마그나와 네 개의 지역 기념비(Monument to the Magna Carta and the Four Regions)를 자세히 보고 싶었다.
이곳에서는 어느 방향에서든 기념비가 보였다. 마치 공원의 중심을 지키는 이정표처럼 느껴졌다. 기념비 주변으로는 아침부터 차들이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공원의 고요함과 도로의 분주함이 묘하게 대비되면서, 이 도시의 활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기념비는 1927년, 스페인 정부가 아르헨티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기증한 조형물로, 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상징한다. 기념비의 중심에는 ‘라 카르타 마그나(대헌장)’를 들고 있는 인물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어, 법치주의와 독립 정신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기단에는 풍요, 노동, 예술, 정의를 표현하는 조각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네 개의 조각상은 아르헨티나의 주요 네 지역(북부, 중앙, 남부, 안데스 지역)을 상징한다. 꼭대기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상이 자리하고 있어, 이 기념비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구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기념비가 스페인이 아르헨티나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선물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때 이곳을 식민 지배했던 스페인이 독립을 축하한다니?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 이주민의 후손들이고, 스페인과의 연결성은 여전히 이 사회의 일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기념비 자체가 단순한 축하의 의미를 넘어, 이곳이 유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였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일본 정원(Jardín Japonés)이 나타났다. 울타리 안쪽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일본스러웠다. 알고 보니, 1967년 당시 일본의 아키히토 황태자와 미치코 황태자비의 방문을 기념하여 조성된 정원이라고 했다. 아직 개장 시간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지만, 멀리서 바라만 봐도 조경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이 도시에 일본식 정원이 있다는 것이 묘하게 낯설면서도, 국제적인 색채를 가진 도시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같은 곳을 달리면서도, 매번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면서, 이 도시를 조금씩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기린이 있다면 동물원으로 인정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숙소 인근의 동물원을 가보기로 했다. 한때 동물원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생태공원(Buenos Aires Ecoparque)으로 탈바꿈한 곳이라고 했다. 주변을 달리면서 늘 보던 장소였기에 별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물은 보이지 않고, 온통 다양한 식물들만 가득했다. 한참을 둘러보며 걸었지만, 동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멈춰 지도를 다시 확인해보니, 이곳은 동물원이 아니라 식물원(Jardín Botánico Carlos Thays)이었다. 동물원을 찾으려다 엉뚱하게 식물원에 들어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동물원을 찾느라 허둥지둥했지만, 조경이 잘 정돈된 이곳을 천천히 걷다 보니 뜻밖의 여유가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였지만, 조용히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다시 길을 건너 진짜 동물원을 찾아갔다. 마감 시간이 18시라 입장이 가능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부모와 함께 동물원을 찾은 아이들이었다. 동물원 자체는 아주 크지는 않았고, 특별히 희귀한 동물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그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듯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기린이 보였다. 먹이를 먹고 있는 기린을 아이들과 함께 한참 바라보았다. 속으로 “기린이 있으면 동물원으로 인정!”이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보았다. 조금은 단순한 기준이지만, 동물원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동물 그 자체가 아니라,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가족 단위로 동물원에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속에서,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탱고의 발상지에서, 밀롱가를 만나다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밤에는 특별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밀롱가(Milonga)를 방문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발상지다. 탱고는 19세기 말, 유럽 이민자들, 아프리카계 후손들, 그리고 남미 원주민들의 문화가 어우러지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된 춤이다. 처음에는 노동자 계층에서 유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들과 상류층에게도 인정받으며 발전했고, 이제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수십 개의 밀롱가가 있다. 밀롱가는 단순히 탱고를 추는 공간이 아니라, 탱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교류하는 곳이다. 화려한 탱고 공연장과는 달리, 이곳은 현지인들이 직접 춤을 추고,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었다.
나는 업무 장소로 자주 방문하는 Libros del Pasaje에서 한 한국인 부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에서도 탱고를 취미로 즐겼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자주 밀롱가를 찾는다고 했다. 그들과 대화하던 중, 언젠가 함께 밀롱가에 가보고 싶다고 부탁했었고, 드디어 오늘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 혼자였다면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광객들처럼 정식 탱고 공연장만 방문하고 끝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진짜 탱고가 살아 숨 쉬는 현장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밀롱가 'La Argentina' – 영화 같은 공간으로 들어서다
입구에서 입장료 7,000페소(약 8,500원)를 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첫 느낌은 마치 영화 속 무도회장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공간은 화려했다. 오래된 샹들리에가 천장을 밝히고,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마도 오래전에는 귀족들이 이곳에서 연회를 열었을 법한 장소였다.
사람들의 드레스 코드도 확연히 달랐다. 남성들은 깔끔한 정장, 여성들은 우아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있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주얼한 복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렇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무언가를 안내하더니, 중앙 무대에 사람들이 짝을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음악이 흐르자, 한 커플이 무대로 나섰고, 곧이어 다른 커플들도 하나둘씩 무대에 올랐다. 탱고를 추는 커플들은 절도 있었다.
서로를 쳐다보지 않아도, 남자의 리드대로 한 몸처럼 움직였다. 나는 탱고를 춰본 적이 없었지만, 그들의 춤이 신기했다. 격렬한 움직임도 아니었고, 빠른 스텝도 아니었지만, 부드러운 흐름을 타며 음악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그들이 왜 이 춤을 그렇게 사랑하는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집중된 눈빛과 조화로운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탱고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감정과 교감을 나누는 방식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라이브 악단과 한층 뜨거워진 분위기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에 라이브 악단이 등장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졌다.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이 터졌고, 무대의 분위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악단은 피아노, 비올라, 바이올린, 그리고 두 명의 반도네온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반도네온(Bandoneón)은 탱고 음악의 핵심 악기로, 아코디언과 비슷하지만 훨씬 깊고 감성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반도네온의 선율이 흐르자, 무대 위 커플들의 움직임이 더욱 감정이 실린 몸짓으로 변했다. 탱고의 리듬 속에서, 춤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라이브 음악과 탱고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특별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가수가 등장했다. 그가 노래를 부르자, 무대 위의 춤이 더욱 깊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까랑까랑하게 울려 퍼졌고, 춤과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연출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스페인어 가사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와 음악이 만들어내는 감정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에서 악단을 보고 싶어 무대 앞으로 다가갔다. 또렷하게 들리는 반도네온 선율,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탱고의 리듬.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탱고의 밤 그리고 긴 여운
공연이 끝났지만,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Otra! Otra!"(또 한 곡!)를 외쳤다. 이곳에서는 앵콜을 원할 때 "Otra"라고 외친다고 했다. 악단은 준비된 마지막 곡뿐만 아니라, 서너 곡을 더 연주하며 무대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탱고의 리듬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무대 위의 커플들은 여전히 정열적인 몸짓으로 춤을 췄다. 마침내 사회자의 마무리 멘트가 나오고, 밀롱가는 끝이 났다.
나는 마지막 곡의 잔향이 남은 무대를 바라보며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이 단돈 8,500원짜리 입장료로 경험한 탱고의 현장. 경쾌한 라이브 음악과 노래, 그리고 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듯한 순간. 밀롱가를 나오면서, 그들의 문화를 지켜본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한 기분이었다.
문을 나서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공기가 선선하게 불어왔다. 아직도 귓가에는 반도네온의 선율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숙소로 향하며, 이곳에서 보낸 지난 열흘을 되돌아봤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삶은, 점점 더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 도시의 일상이 내 안에 녹아들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저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탱고의 여운 속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