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국민일 수 있도록.
“1960년대부터 시작된 여성계의 가족법 개정 운동은 1973년에 활기를 띠게 되었다. 4월엔 YMCA(기독교여자청년회)와 이태영의 가정법률 상담소가 ‘가족법은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고, 6월 28일엔 범여성적인 연대로 확대돼 61개의 여성 단체가 연합하고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를 결성하는 성과를 보기에 이르렀다. 10월 유신 이후 모든 법률을 손질하는 때인 데다가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여성 의원 열 명이 국회에 진출해 있어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촉진회는 그해 7월 다음과 같은 10개 항목을 개정하자는 건의문을 의원들에게 보냈다.
첫째, 호주제도의 폐지. 둘째, 친족 범위 결정에서의 남녀평등. 셋째, 동성동본 불혼 제도의 폐지. 넷째, 소유 불분명한 부부 재산에 대한 부부의 공유. 다섯째, 이혼 배우자의 재산 분배 청구권. 여섯째, 협의이혼 제도의 합리화. 일곱째, 부모의 친권 공동 행사. 여덟째, 적모서자관계와 계모자 관계의 시정. 아홉째, 상속 제도의 합리화. 열째, 유류분 제도.
이렇게 단체의 이름으로 건의서를 보내는 정도나마 성과를 보기까지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을 비롯한 여성 단체 대표들은 ‘노처녀 과부 집단’이니 ‘패륜녀’니 하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1972년부터 본격화된 보수 진영의 반대 운동은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전개되었다. ”
위의 내용은 강준만 교수의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본문 중 일부다. 사전에서는 결혼, 자녀 출산 및 양육과 가사 분담, 노부모 부양 등의 가족 형태 및 생활 방식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가치 의식이라는 지루한 설명으로 가족가치관을 정의하지만 이것들은 전혀 이 시대의 나에게 와닿지 않는다. 1973년부터 여성 단체들이 싸워온 것들이, 내가 살고 있는 2022년에도 영 속이 시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긋지긋하게 부여 쥐고 있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캐캐 묵은 가부장제의 폐단이다. 가족이라니, 그 단어에 애정만 담뿍 담은 사람이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궁금하다. 국가가 바라는 이상적이고 화목한 가정의 형태가 통계적으로 얼마나 될지, 그 사각지대 밖에 있는 ‘이상 가족’을 국가는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했는지. 가족은 애증의 단어다. 마치 목숨과 같다. 세상에 나오고 싶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는데 어리둥절 이름까지 불리며 세상을 살아가게 된 것처럼, 선택할 여지도 없이 누군가와 한 소쿠리에 담겨서 평생을 지지고 볶고 한탄하는 것이다.
2008년에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딸 둘인 우리 집은 장손인 아빠에게 아들이 없으니 대를 잇지 못할 것이다. 나와 동생이 조상의 제사에 일절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시면 차례상과 명절 음식도 사라질 예정이다. 아버지란 뭘까? 아버지의 의미는 뭘까? 품고 낳아서 기른 것은 엄마인데, 내 이름 앞에 붙는 것은 본관 다른 아빠의 김 씨다. 아들을 낳으라는 압박에 시달려 이혼을 한 엄마는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한 것에 안도한다.(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남동생을 가지려는 시도를 했다.) 우리 집에 아들이 있었으면 나와 동생과의 연은 진즉 끊어졌을 거라는 게 그 이유다. 태어나지도 않은 남동생은 이미 집안의 돌림자를 따서 이름까지 붙였다. 둘째가 딸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전봇대 옆에 주저 앉았다는 엄마가 아들을 봤으면 얼마나 극성이었을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나는 근현대 한국의 가족가치관에 매우 부정적이다. 딸 여섯을 낳고도 아들이 없어 병원에서 아들로 바꿔 데려온 외할머니,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들을 낳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엄마, 아빠의 다혈질적인 폭력. 가족이란 무언가? 여성을 가두고 말라 죽이는 울타리다.
호주제는 폐지되었으나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붙이는 게 관례로 보인다. 맨 위에 적은 여성운동의 열 가지 조건들은 아무리 봐도 제 발로 결혼문화에 걸어 들어가고 싶은 내용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여성과 남성을 모두 성애적으로 사랑하는 성소수자다. 내가 원하는 가족가치관은 정부의 차별금지법 제정 후에 이루어진다.
여성들의 목소리에 독립운동이라도 하듯 결연한 반대 공작을 펼쳤다던 세력이 여전히 건재할 텐데,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얼마나 기함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양성애자이자 이 나라의 청년으로서 생각하는 것은, 이제라도 세상 잣대를 남성의 시각이자 이성애자 비장애인으로 맞춰놓은 오만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애를 낳고 애를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는 것은 당연한가? 남성의 술자리 접대 문화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인가? 동성애자는 결단코 가족의 형태를 이룰 수 없는가? 이제는 이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는 사회다. 어째서 의문이냐 하면, 지금까지는 이러한 문제들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여성의 프레임을, 남성에게는 남성의 권력을, 성소수자에게는 필사적인 침묵을 강요했던 세상이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태어나고, 어리고 젊은 피는 두려울 게 없다. 버젓이 눈앞에 있는 것을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사상을 빌미로 시민운동을 탄압했다고 해서 민주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병이니 사탄이니 온갖 오명을 씌워도 성소수자들과 장애인, 노약자, 독신 여성들 역시 이 사회 속에서 섞여 들고 무리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다. 결혼과 출산, 자녀 양육과 노부모 봉양이라니 이 얼마나 남성들만 속 편한 정의인가. 어떤 여성도 이만큼이나 많은 짐을 지워주는 사회적인 굴레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혈연 따위가 가족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숨이 막힌다. 피는 사람의 선함과 악함을, 옳고 그름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나는 내가 함께할 가족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아끼고 배려하고, 긴 시간을 아울러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이자 성소수자이고 아시안인 내가 차별이 사라진 사회에서 정부와 법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나의 안정적인 가정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법률이 공식적으로 공표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 하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남성에게, 비장애인에게, 이성애자에게 차별받아온 소수자들의 권리도 이 법에서 시작한다. 비가시화되던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 현대의 가족가치관은 차별금지법을 논하지 않고서는 완성될 수 없다.
진정 건강한 형태의 가족을 논하려면, 유전자를 받고 태어났다고 해서 소유물이라 여기지 않을 부모들의 인식개선과 가정에서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포용시킬 교육이 필요하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장, 엄마, 딸, 아들, 가족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더라도 잘못된 것이 아님을, 각자의 힘을 가진 개인으로 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