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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Nov 21. 2023

네가 끝없이 행복해지기를 바라

나를 스무 번 넘게 울며 잠들게 한 너에게.


네가 행복하지 않은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울면서 잠들게 만드는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드&리즈 투칠로


*

네 결혼식이 벌써 내일이네.

내가 다 떨려 죽을 맛인데 너는 어떻게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차분히 정리하고 준비하고 있겠지? 너는 남 걱정 안 시키는 똑 부러진 애잖아.

내 인생에 너 덕분에 부케라는 것도 받아본다. 네 앞에선 짐짓 곤란한 척 무안한 척 생색냈는데 사실 나 지금 무지하게 기대돼. 행복하기도 하고. 부케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너무 거대해서, 나는 평생 받아볼 일이 없을 줄 알거든. 네가 나한테 부탁할 줄 몰랐던 건 물론이고.


네 옆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걸 알아. 네가 사랑받는 것도 알고, 그 많은 좋은 사람들 중에 가장 멋진 사람이 너라는 것도 알지. 내가 주변을 챙기는 데에 원체 소홀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널 서운하게 한 적도 많을 텐데 넌 뭘 믿고 나한테 부케를 맡기냐. 역시 넌 좀 실속을 챙길 필요가 있어. (쪽)

내가 너 아니면 누구한테 귀한 꽃다발을 받아볼 수가 있겠니. 너만큼 소중한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는데. 그래서 더 얼떨떨하다. 정말 내가 받게 될 줄이야. 신기하고 고마워. 너한테 잘해준 게 없는 것 같은데 둘도 없을 순간에 나를 생각해 줘서.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설레며 누군가의 결혼식을 기다릴 날이 없었을 거야.

감히 마음의 크기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모아서 너와 너의 신랑에게 행복만 쏟아지길 바라. 내 마음이 부족하다면 내 몫의 행운도 조금 떼어서 너네한테 달라붙길 바라. 그만큼 네가 아주 많이 끝없이 행복하기를 바라.


내가 백만장자였다면 좋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300만 원 3000만 원도 주고 싶었다는 걸 알아줘. 돈욕심 없다가도 네가 시집가는 날이 오니 역시 조금 더 모아둘걸 그랬다 싶어. 괜히 너에게 주는 축의만큼은 욕심을 부리게 되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진심만 꽉꽉 눌러 담아서 보내는 계좌이체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너의 결혼식에서도 매번 나한테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들만 가져다줬으니까 너도 나의 이런 처음을 가져가야지. 지금도 너의 결혼식에서 어떻게 하면 울지 않을 수 있는지 궁리 중이야. 너한테 쓸 편지 내용을 생각할 때마다 울었거든. 매번, 매번. 내가 우는 건 상관없으니까 네가 맑은 날 아침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우는 만큼 네가 잘 살 수 있다면 눈알 두쪽이 다 빠져도 상관없을 거 같아.

하지만 내 눈알이 멀쩡히 박혀있어야 네가 웃는 걸 보겠지. 이번에 엄마가 초중고등학교 졸업앨범을 가져왔는데 그 속에 네가 어제 본 것처럼 똑같은 거야. 내 사진은 처참하기 그지없는데. 예나 지금이나 너는 다정하고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놀라울 만큼 그대로 나를 만나줘서 고마워. 늘 나한테 처음 해보는 새로운 것들을 가져다줘서 고마워. 내가 너를 생각하면 한 톨의 어두움도 없이 햇살만 떠오른다는 걸 기억해. 너는 누군가한테는 그런 사람이야. 불시에 어디선가 네가 폭탄처럼 몰아닥쳐도 너무 날씨 좋은 하루가 되는 게 전부인 자랑스럽고 따사로운 사람이야. 매일매일 행복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네가 마구 쏟아졌으면 좋겠다. 그럼 세상이 평화로워질텐데.


나 축사 썼으면 너무 잘했을 것 같지 않냐?

왜냐하면 내가 너를 아주 사랑하니까!


결혼 축하해.

너를 사랑하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만큼 너의 결혼을 축하한다.


식장에서 봐.

쪽!


ps. 이 편지를 기어코 다 썼으니 이제 더 이상 네 결혼식을 생각하며 질질 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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