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한낮과 한국의 한밤
알람 소리에 잠이 깨면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고 미간을 찌푸린 채 시간을 확인한다. 지금 스페인은 오전 7시. 한국은 몇 시지? 곧바로 일곱 시간을 더해 본다. 오후 2시네. ‘회사원 친구들은 점심 먹고 막 사무실로 돌아갔을 테고 엄마는 믹스커피 한 잔 타고 있겠네.’ 이런 생각을 하며 불을 켜고 안경을 찾아 낀다.
나의 새벽 동안 먼저 오늘로 가 있던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이 휴대폰에 쌓여 있다. 음소거 해놓은 카톡 단체 채팅방 여기저기에서 빨간 숫자들이 보인다. 침대 모서리에 어정쩡하게 걸터앉아 가족 채팅방과 친구 채팅방, 개인 메시지와 SNS, 이메일의 알림을 후루룩 확인한다. 벌써 한낮에 가 있는 사람들한테서 어떤 활기가 느껴진다. 만 킬로미터 거리의 미래를 구경하다 보면 어둑했던 이곳도 어느새 밝아온다.
오후 2시, 여기도 한낮의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볕 좋은 테라스는 점심 먹으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 얼굴에 그늘 하나 없다. 한국은 낮의 열기가 식은 밤 9시. 한국에서 올라오는 SNS 피드의 글도 차분해지거나 다소 끈적해진다. 나는 아직 뽀송뽀송한 시간대에 있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밤에 쓴 내 피드는 한국의 산뜻한 아침에 전송되기에 두 배로 느끼해지곤 했다. 시계를 확인하고 황급히 지운 적이 몇 번인지.
오후 5시가 되면 활발하던 단체 채팅방과 소셜미디어의 피드가 일순간 조용해진다. 한국은 자정. 내일로 넘어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때쯤이면 놀이터에서 잘 놀다 말고 갑자기 집으로 뛰어가는 친구들 뒤꽁무니를 우두커니 쳐다보는 아이 같은 심정이 된다. 아직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가 버린 애들의 빈자리가 아쉬워 반쪽만큼 외로워진다.
밤 10시 30분에는 매일 엄마한테서 비디오 콜이 온다. 한국은 새벽 6시 30분,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누운 채로, 나는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앉은 채 통화를 한다. 엄마가 한가한 한국의 저녁은 내가 한창 어수선할 시간이고, 내가 숨 좀 돌릴만하면 한국은 이미 잠든 시간. 그동안 서로의 전화를 무수히 놓치고서 시행착오 일 년 반 만에 서로의 스케줄을 방해하지 않는 황금 시간대를 찾아냈다.
우리의 대화는 매번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아침은 먹었나?”
“아침은 무슨요, 이제 자야 되는데.”
“맞네, 맨날 까먹노.”
이틀에 한 번꼴로 똑같이 반복되는 인트로가 끝나면 엄마는 어제의 하루를, 나는 거의 끝나가는 오늘의 하루를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면 엄마는 카메라를 돌려 오른팔, 왼팔, 다리에 한 마리씩 붙어 있는 개 동생 둘과 고양이 동생의 얼굴도 비춰준다. 초코야~, 미키야~, 옹군아~, 한 마리씩 애절하게 이름을 불러보지만 다들 귀찮은 표정으로 눈만 끔뻑일 뿐이다. 엄마는 이것들은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구박하는 시늉을 한번 해보고선 슬슬 통화를 마무리한다.
“이제 얼른 주무셔요~~.”
“주무시기는 무슨, 일어나야 하는데.”
“아, 맞네. 나도 또 까먹었다!”
“그래, 니도 얼른 일어나서 출근 준비해라.”
“자야 된다니까요~~!.”
“맞다, 그래. 잘 자거라.”
엄마에게 하루를 바통터치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생각한다.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겨우 엄마를 볼까 말까 한다면 앞으로 엄마를 볼 수 있는 날이 횟수로 30번은 될까. 엄마에게서 영원히 전화가 걸려오지 않고, 전화를 걸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1초도 안 돼 눈물이 차오르니까 1초가 되기 전 얼른 생각을 털어내고 불을 끈다.
얼른 생각을 털어내고 불을 끈다.
스페인의 밤과 한국의 새벽을, 스페인의 새벽과 한국의 낮을 동시에 산다. 내 한낮은 너무 뜨겁지 않고 한밤도 쉽게 끈적해지지 않는다. 7시간 미래에 있는 한국의 사람들과 하루의 바통을 주고받으며 오늘도 두 개의 시간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