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포기해야 할까

by 열대초록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한 지 오 개월째, 야심 차게 시작할 때는 언제고 벌써 포기를 생각하고 있다니.


일단 핑계부터 좀 대어 보겠다. 코로나 때문에 학습 환경이 이전 같지 않았다. 완전 초급 수업임에도 마스크 때문에 선생님의 입모양을 보며 발음을 공부할 수 없었다. 수업은 원래 일주일에 두 번인데 코로나 방역 수칙 때문에 그룹을 두 개로 나눠 일주일에 한 번씩만 나갔다.


이틀에 걸쳐 배워야 할 내용을 하루 몰아 배우니 수업 중 충분히 연습을 하지 못하고 진도는 2배속으로 나갔고, 수업의 레벨은 어느 순간부터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번역기로 지시문과 교재 텍스트를 모조리 번역해 가는 예습을 하지 않으면 수업을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 이게 제일 기초인 A1라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거기다 휴일은 또 어찌나 많은지, 공부에 탄력 좀 붙는다 싶으면 일이 주를 내리 쉬어버리니, 쉬고 돌아오면 리셋되어 제로에서 좀 나아갔다 제로로 돌아오기를 무한 반복하는 기분이었다.



제일 분한 건 이런 상황 속에서 나만 헤매고 있다는 거다!


어째서?? 다들 왜 잘 따라가는 거야?


이 수업에서 프랑스어가 완전히 처음인 사람이 나뿐이기는 했다. 다른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웠거나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가 비슷한 단어가 많다 보니 전혀 모르는 단어들만 있는 텍스트를 봐도 학생들은 대충 추측하며 내용을 이해하더라. 나도 스페인어를 통해 유추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정적이었다.


어느 날은 전 수업에 결석하고 예습을 못 해갔더니 완전히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듣기 지문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책에 있는 프랑스어로 된 질문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선생님이 프랑스어로 던지는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외계어로만 들리는 말들 속에 둘러싸여 교실에 있으니, 집에서 가깝고 수업료가 싸고 새로운 도전이고 뭐고 간에 시간이 너무 아까워 현타가 왔다.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러고 있는 시간에 스페인어나 더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닌가? 아니, 그럼 난 뭘 기대하고 이 수업에 온 걸까. 왜 프랑스어를 듣겠다고 결심한 거지?


어떤 언어든 외국어를 공부하는 일은 어렵다. 처음이 비교적 쉬운 언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어려워진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난 지금 프랑스어가 재미있나?


프랑스어를 배운다는 자체는 처음에는 재미있었지.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앙팡' 치즈가 아이를 뜻하는 프랑스어 enfant에서 왔고, 디올의 '자도르' 향수의 이름도 너무 좋다는 뜻의 J'adore라는 프랑스어 표현이고, 서울의 '마먕 가또'라는 케이크집 이름은 프랑스어로 'Maman gâteau', 엄마의 케이크라는 뜻이라는 것처럼 프랑스어를 배우며 '아, 그게 이런 뜻이었구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초반에는 이런 새로운 언어에 대한 흥미가 모든 걸 상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이 이걸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대면 수업에다 학생도 일곱 명밖에 없으니 활동하기 가장 좋은 조건인데도 진도 나가기 바빠서인지 초급 수업에서 흔히 볼 법한 활동이 전혀 없었다. 교재에 있는 듣기, 읽기와 문제 풀이에만 충실해 지루했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이상적인 수업의 상이 너무 확고해 그렇지 못한 수업을 만났을 때는 머릿속으로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하고 수업을 재설계하고 있는 거다. 으으 내 수업에 그런 학생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징그럽고 싫을 것 같은데.





한 달씩 결제하는 학원을 다녔다면 벌서 그만뒀겠지. 하지만 이 코스는 일 년짜리 코스도 돈도 한꺼번에 냈고

(그래도 한 달 가격도 안 하지만) 아직 5개월을 더 공부해야 하는데. 앞으로 5개월도 이렇게 멍하게 앉아 있기만 하면 어쩌지?


다음 시간부터는 나오지 말아야겠다는 쪽으로 거의 마음이 기울었는데 수업 끝날 무렵 선생님이 다음 주부터는 정상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할 거라고 한다. 학생 수가 줄어 한 반에 모두 들어가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천천히 진도를 나가고 연습도 더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꼭 내 속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선생님은 덧붙였다.


일단은 예습과 복습을 좀 더 철저히 하며 일주일에 두 번식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바로 그만두기에는 지금까지 공부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면 그때 포기할 거다. 포기하면 뭐 어때. 나중에 강한 동기가 생겨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하게 된다면, 그때 제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해도 이때 공부한 것들이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줄 거니까.


그러니, 일단은 좀 더 해보는 걸로. 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