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숫자 누가누가 더 어렵나

프랑스어, 이런 숫자는 처음이라

by 열대초록




두둥


드디어 나타났다. 외국어 학습의 첫 난관, 숫자가.


프랑스어 숫자는 스페인어와 비슷해서 생각보다 금방 외웠다. 60까지는.


문제는 70부터였다. 스페인어 70인 setenta가 7인 siete가 살짝 변형된 거니 프랑스어도 7인 sept와 연결 고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니. 70은 7과 아무 상관없는 60 더하기 10, soixante-dix라는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숫자를 쓰는 외국어를 처음 만나 매우 황당했다. 그럼 프랑스어는 60진법인가?


71=60+11(soixante et onze) 72=60+12(soixante-douze) 이렇게 쭉쭉 가서 69까지 왔고 80은 60+20이겠지 했더니 또 80은 4 곱하기 20, 즉 quatre-vangts이란다.


응.....?


90은 4 곱하기 20 더하기 10, quatre-vangts-dix. 바 포함해서 무려 스물 한 글자다. 여기서 완전히 멘붕이 왔다. 외우고 외워 어떻게든 입에는 익숙하게 만든다 치더라도 듣기가 무지막지하게 헷갈린다. 수업 시간에 전화번호 받아쓰는 연습을 했는데 70이 바로 들리지 않으니 60+10을 먼저 쓴 다음에 70을 파악하고 90은 4*20 +10을 받아쓰고 90을 도출해 내야 했다. 덧셈 곱셉 기호가 가득한 공책을 보니 이게 외국어 시간인지 산수 시간인지.





프랑스어와 비교했을 때 한국어 숫자는 어떤가. 11, 십일은 십에 일을 더한 것이고 20, 이십은 이에 십을 곱했단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규칙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나? 하지만 복잡하기로 따지만 한국어도 만만치 않다. 한국어는 순 우리말로 된 '하나, 둘, 셋...'과 한자어로 된 '일, 이, 삼...'을 모두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자어 숫자가 삼십, 사십, 오십처럼 규칙성을 보이는 데 반해 고유어 숫자는 스물, 서른, 마흔.... 아혼까지 규칙성이 없다. 한자수는 숫자를 읽을 때, 고유수는 수를 세거나 -개, -명 같은 단위 명사가 붙을 때 사용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늘 그런 것도 아니다. 열 명을 십 명이라고 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스무 명은 이십 명, 쉰 살을 오십 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시간은 두 개를 다 같이 사용해야 한다. 5:05는 다섯 분이다. 시간 개념을 말할 때는 또 어떤가. 달과 함께는 한 달이지만, 개월과 함께는 일 개월이고, 일(日) 앞에는 한자어 숫자가 온다. 한국인이라면 한자어 단위 명사에는 한자수가, 우리말 단위 명사 앞에는 고유수가 온자고 유추할 수 있겠지만 한자어인 시간은 일 시간이 아닌 한 시간이라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한국어 직관이 없는 외국인들이 한자어와 순수 우리말을 구별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이유로 숫자 말하기는 한국어 학습자들이 고급 단계가 되어서도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다.

이걸 생각해 보면 프랑스어 숫자가 마냥 어렵다고 하기도 좀 머쓱해진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까지 공부해본 외국어 중에서 어느 나라 숫자가 제일 어려웠나요?





대문 사진 출처:

https://mammothmemory.net/languages/french/numbers/french-numbers-introducti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