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며칠 전 화장실 창틀에 거미가 크게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굳이 죽이지는 않았다. 우리 집 화장실의 나방파리들은 나를 성가시게 했고, 따라서 나는 동맹군이 필요했다. 그리고 얘도 우리 화장실 창틀이 그의 입장에서 목 좋은 곳이란 걸 탐지해내고 그렇게 거미줄을 쳤겠지.
하지만 웬지 쎄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곧 추워지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추워져도 그 거미는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거미줄은 그 거미가 스스로 자신의 단백질을 뽑아내 만드는 것이다. 양분이 없으면 거미줄을 튼튼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거미들은 거미줄이 영 신통치 않으면 자신의 거미줄을 스스로 먹어치운다. 그리고 장소를 바꿔 다시 거미줄을 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봤는데 거미는 창틀에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죽은 것일까. 다른 곳을 찾아 떠난 것일까. 거미줄의 상당부분은 없어져 있었다. 다시 자신의 입속으로 가져간 것일까.
문득 그 거미의 존재에서 자영업자들이 생각났다.
자영업자 각 개인은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열심히 상권분석도 하고, 연구도 하여 자신의 예산제약 안에서 최적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열심히 상권분석을 하고 연구를 해도 코로나 19를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보증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자신의 사업을 중단해야 했을 것이다. 마치 거미가 자신의 거미줄을 다시 먹어치우는 것처럼...
샤로수길의 적잖은 가게들이 2020년 상반기에 개업을 하자마자 사회적 거리두기의 유탄을 맞았었고, 최근 2.5단계가 풀리고 2단계, 1.5단계 등으로 하향하면서 그나마 버텼던 곳은 좀 회복되는 낌새이고, 그렇지 않은 곳들은 또 간판들이 바꿔 달리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은 그야말로 "하늘의 뜻"이다.
그들의 탓이 아니다.
우리집 화장실에 있던 그 거미는 어떻게든 살아야했고, 먹이를 얻기 위해 열심히 거미줄을 쳤을 뿐, 그가 어떻게 날씨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기후 변화는 또 사람들의 뜻이 반영되는 일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을 얼마나 쓸 건지, 고기를 얼마나 먹을 것인지, 화석연료를 얼마나 태울 것인지,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정할 일이다.
인간과 거미가 다른 점은,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는 결사체와 함께 한다는 점일 것이다. 예측불가능한 "하늘의 뜻"을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것, 이를 테면 우린 기후변화의 속도를 제어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할 것이냐를 함께 뜻을 모아 결정할 수 있다.
결국 하늘의 뜻도 "사람의 뜻"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람의 뜻을 모아내 그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 정치라면, 정치야말로 "사람이 곧 하늘"이란 말의 실현이란 생각이 든다.
하늘을 바라보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힘내."란 말을 문득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