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일기

facebook, 7년 전 과거의 오늘

by 유노유보

#1.

독일에 워크캠프를 갔을 때, 미국인 친구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했었다. 이 친구도 좀 성향이 네이더를 좋아하지만 투표때는 민주당을 찍는 전형적인 깨시민 류(?)의 친구여서 그냥 적당히 술마시고 이야기하다보면 죽이 적절히 잘 맞았다고나 할까. 이 친구가 미 제국주의 어쩌구 할때 좀 웃겼었다.(얘도 army 다녀왔는데, 입대일과 제대일이 비슷해서 마이 프랜드 마이 프랜드 이랬다.)


이 친구랑 점심때 밥먹을 때 이야기하다 얘가 e-book 보길래 뭐 보냐고 물었었다. 케네디에 관련된 소설이란다. 그래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토크빌 이야기하면서 내가 그랬다. "니네는 그래도 우리보다 디모크라시가 역사가 더 깊으니까 사람 죽었다고 숭배하고 그런 거 없지 않느냐. 나는 그런 게 참 부럽다. 아무리 그 사람이 bad, or the worst ever해도 죽어버리면 모두가 그 사람을 respect한다. 너희는 그런 거 있냐?"

라고 하니까 의외로 "우리도 그런 거 비슷한 거 있다. 케네디가 4년 하고 암살 당해서 사람들이 무턱대고 케네디 케네디 하고 많이 좋아한다. 난 죽어서 그렇게 myth가 되는 건 정말 mistake라고 생각한다." 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웃긴 건 지도 그러면서 케네디의 복수 어쩌구 추리 소설 읽고 있었...;;;)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우리가 특별히 뭐 못났고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운운 어쩌구 해도, 사람의 근본적인 감수성이란 건 어디 가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우리일 뿐이다. 화내지도, 실망하지도 말자. 그러려니 하고, 거기서부터 받아들이고, 타협하면서 시작하자.


오늘 홍대 버거베이에서 그런 이야길 나눴다. 우린 결국 타협해야 된다고. 역사의식에 대하여. 어떤 조직, 기업, 사회, 국가든 최고의 권력과 권위를 지닌 최고 책임자가 당연히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 최종책임을 최고 책임자가 졌지만, 어쨌든 그 한 사람만큼은, 누가 뭐래도 모피아와 기득권층과 기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숭고한 뜻이 좌절되었다고, 그렇게 "협상하고 합의해야 한다"라고. 그게 우리의 살 길이고, 그게 우리한테 남은 길이라고. 우린 그걸 역사를 애써 부정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훨씬 다수의, 그런 "합의"를 통해 함께 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원래 그랬다고 생각한다고. 그런 생각 꿈에도 하지 않는다고. 설령 백번 양보해서 그때 잘못을 했어도 결코 그 사람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그때 뭘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잘못을 했다 인정해도 그 사람이 한 게 아니라 다른 놈들이 눈속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고. 그건 넘어설 수 없는 마지막 선과 같은 것이라고.


겨울에 가을이 말했다. "야, 나는 일단 김규항이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전제를 깔고 말하는 거야. 논객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솔직히 속시원하지 않냐? 물론 김규항 딴에는 지가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고 그런 글을 썼겠지만, 걔는 그런 글을 쓰니까 플레이어가 아닌거야. 그리고 오건호는, 플레이어야."

나 또한 동의한다.


오늘도 참 추웠다. 왕십리에서 집까지 또 걸어왔다.


추운 날 걸어오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2013년 결산을 한번 써볼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무척이나 추웠던 내 인생에서 가장 눈물이 났던 해였다.


#2.

대전 집에 내려와 있을 때, 엄마가 간호학원 다니면서 기초 한자들을 외울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 조혈모세포 뭐 이런거 뜻이 피를 만드는 세포 이런 건데 그런 거 다 한자를 알면 좀 더 잘 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기초 영어 회화나 하여간 기초 영어 이런것도 좀 필요한 것 같다. 뭐 이러면서 뭘 골라야 되냐고 그러 길래, 롯데 마트에서 한 30분동안 같이 골랐다. 내가 나이 서른이 다되서, 나이 9살 10살 때 엄마가 사다주고 골라주는 책을 보다가 이렇게 엄마한테 영어, 한자 책을 골라주는 구나... 이 나이 되도록 나는 뭐했나?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엄마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이 틈을 타서 나도 오랜만에 엄마 돈으로 책이나 사자 하는 생각에 '힐러리 클린턴 살아있는 영어'를 골랐다. 옛날에 한번 볼까 하다가 안 본 책이기도 하고, 마침 앞에 있어서, 그리고 '초등학교 어린이 생활 영어' 이런 거랑 기초 한자 이런 거만 있는데 그래도 엄마랑 30 다 된 아들내미가 책 사는데 이런 책도 있어야 가오가 살지 않겠는가 하는 다목적 포석하에 골랐다.


역시 한국인들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서, 1강이 이화여대 특강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난 7강부터, 마지막 부분부터 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2008년 대선 경선 중단 연설" 이다.

2007년 가을날에 패배감에 젖었던 가을은, 2008년 초반의 힐러리의 패배 내지는 오바마와의 접전에 대해서 이렇게 평한 바 있었다. 내가 먼저 "야 이건 힐러리가 심상정이고 오바마가 권영길인가? 허허." 라고 하니,

"야! 힐러리가 노회찬이지~~!! 오바마가 심상정이고!!"

라고 한 바 있었다. 그때 참 당시에 딱 맞는 비유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몇 달 뒤 힐러리의 패배를 지켜봤다. 슈퍼 화요일에 패배에 가까운 무승부를 거뒀음에도 끝까지 경선포기를 안하다가 결국 경선포기를 해야 했던 2008년 6월의 그때, 그 연설문을 처음으로 읽게 된 것이다.


간단했다. 2013년의 나는, 결국 패배자였다. 나의 2013년은 결국 패배였다. 패배에 대한 이야기에 눈이 간 건, 그래서였다.


뭐랄까, 참 씩씩했다. 마지막에 무게와 여운, 다소간의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지지를 표명하는, 정치적으로 매우 훌륭한 어조와 내용들.


"The Way, The way to continue our fight now, to accomplish the goals for which we stand is to take our energy, our passion, our strength, and do all we can to help elect Barack Obama, the nex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oday, as I suspend my campaign, I congratulate him on the victory he has won and the extraordinary race he has run. I endorse him and throw my full support behind him."


이 부분 이야기할 때 목소리 참 당찼다. 근데 그 당찬 목소리로 이걸 말할 때, 사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환호했지만, 그 환호야말로 가슴아픈 것이다.

그리고 쭉 말하다가, 꽤 평범한 부분을, 나는 다시 듣기했었다.


"So, I want to say to my supporters : When you hear people saying or think to yourself "if only" or "what if" I say, please, don't go there. Every moment wasted looking back keeps us from moving forward."


참 힘들다. 상황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그러면서도 함께 해온 사람을 격려 하는 것,


"To those who are disappointed that we couldn't go all of the way, especially the young people who put so much into this campaign, it would break my heart if, in falling short of my goal, I in any way discouraged any of you from pursuing yours. Always aim high, work hard and care deeply about what you believe in. And, when you stumble, keep faith. And, when you're knocked down, get right back up and never listen to anyone who says you can't or shouldn't go on."


개인적으로 나에게 참 고마운 말들이었다. 그래서 다시 듣기 하며 적었다.

물론, 힘들다. 하지만 결국 개인의 안녕은 스스로 찾아야 함을, 나는 안다.

그게 내가 지난 10년간 배워온,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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