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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Jun 26. 2024

"난 팔기 싫어요" 교단 에세이 (3/21)

<탐험> 교과서를 펼쳤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1학년, 바뀐 교육과정.

연구실에 학습준비물 담당 옆 반 선생님이 주문한 아이클레이가 생각났다. 4교시보다는 5교시 하는 날 아이클레이 풀어야 하는데. 월요일에 아이들에게 한 봉지씩 나눠 주고 수업을 시작했다. 지퍼백 안에 다섯 가지 색깔이 골고루 들어 있어서 내가 일일이 떼 주지 않아도 된다. 

<탐험>교과서에는 '내가 탐험 간 세상의 시장'에서 팔 물건을 만드는 수업이 있다. 우리 반에는 바다 탐험하겠다는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막상 아이들에게 만들어 보자고 했더니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만들고 나서 탐험할 시장을 거꾸로 정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클레이 덕분에 1학년 모두 신나 보였다. 

월요일 4교시에 한 가지만 만들었다. 작품은 사물함 빈 공간에 보관했고 남은 아이클레이는 지퍼백에 넣어 밀봉했다. 어제 화요일 5교시, 비장의 무기 아이클레이 다시 꺼내서 물건 더 만들었고 오늘은 3교시에 시장을 차리기로 했다.

색종이로 모든 걸 해결한다. 달리 인쇄해서 주지 않는다. 연구실 임대 컬러복사기가 짱짱하게 있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이 알아서 돈도 만들고, 가게 이름도 쓰고, 가격표도 붙였다.

무엇이 공평할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다음 질문 때문이었다.

"안 팔면 안 돼요?"

"팔아야지!"

자기가 만든 아이클레이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다. <탐험> 탐험 간 세상의 시장, 시장놀이를 하자고 제안한 상태라 말을 되돌릴 수도 없다. 시장놀이 안 해도 그만이지만 내가 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할 거리를 던져주고 놀게 하고 싶었나 보다. 1학년이긴 하지만 국어와 수학 대신 교실 안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건수가 필요했다.

한 명에게는 가장 비싼 가격을 정하라고 했다. 색종이 세 장을 절반으로 잘라 여섯 장 만들고 각 장마다 1000원이라고 쓰게 했다. 모두 6000원 가진 셈이니 물건값은 1000원부터 6000원까지 정한다. 가장 비싼 6000원.

"A야 네가 만든 물건이 인기가 있어서 팔린다면, 기분 좋은 일이지 않을까? 너는 다시 만들 때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1학년이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팔지 않으려고 했던 A는 6000원에 팔렸다며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또 한 명의 친구 B는 자기가 만든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겨표를 만들지도 않았다. 본인은 친구 물건을 사 왔는데 자기 물건을 팔지 않겠단다. 주인 마음이긴 하지만 친구들의 불평이 터져 나온다. 

어떻게 해야 하나? B도 다른 친구 것 샀으니 네 것도 팔아라고 해보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뱉은 말을 취소할 수도 없고. 

마무리할 때 활동 후 느낌을 쓰게 했다. 1학년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한 마디라도 써보자 했더니 글자도 물어본다. 

우리 B는 이렇게 적었다.

"속산해다"

급식실에서 식판 정리한 후 나를 뒤에서 안고 내 손을 잡고 앞으로도 와서 안기고. 나와의 친밀도가 높았는데 4교시 때 B 표정으로는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였다.

다 집에 보낸 후 B에게 남은 아이클레이 한 세트를 줬다. 집에서 다시 만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친구에게 판 작품보다 더 멋질 거라고. 그런데 친구들한테 말하면 안 된다는 말도 추가했다.

내일 B가 말할 것 같다.

https://blog.naver.com/giantbaekjak/2234866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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