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싶었던 마음
결혼을 앞둔 커플, 저녁식사 이야기를 하며 알콩달콩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문득, '결혼하자'는 이선균, 이내 식어버리는 김민희의 표정. 잠깐 휴게소에 들러 자리를 비운 그녀는 돌연 사라진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러 단서를 바탕으로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왜 그런 인생을 살아냈는지 천천히 추론하게 한다.
결국 답은 찾았지만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 아등바등 버티는 개인을 발견하도록 한 것은 이 영화의 찝찝한 부분이었다. 영화의 말미, 김민희의 대사는 이 같은 감정을 극에 달하게 한다. ‘나 사람 아니야, 쓰레기야’ 그녀를 쓰레기까지 몰고 간 것은 절대 줄어들 리 없는 사채와 거짓말 때문이었다. 빚을 만들어야만, 거짓말을 해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그녀는 마지막 안간힘을 쓰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몰락해가는 그녀의 삶을 조명하며 그녀의 행실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사회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존재로 그려낸 점이 인상 깊었다. 왜 그녀는 이름도, 감정도, 모든 것을 거짓으로 두어야 했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빚을 떨어낼 수 있음에도 그냥 아버지 빚이기에 물려받고, 신용카드로도 소비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마구잡이로 발급해 썼던 것이다. 결국 8,000만 원에 가까운 사채를 끌어안은 그녀는 빚을 내야만, 거짓으로 자신을 위장해야만 일상 생활이 가능한 처지에 내몰린다.
이선균은 그녀의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고 혼란에 빠지지만 결국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자 했다. 그러나 실패한다. 도움을 주려할수록 그와 연결된 많은 사람, 환경들이 그녀를 사회로부터 도려내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선균이 그녀에게 집착할수록 형사인 형이 김민희를 용의자로 만들고 있으며 그의 동료 또한 김민희의 뒤를 캐며 이선균을 압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의 가치를 알아보고 도우려는 조력자가 있어도 이 사회 시스템은 이미 몰락해버린 그녀를 정리하고 자정 하려는 모습이었다.
김민희는 자신을 동정하고 편들어주는 이선균보다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자립 가능한지에 대해 확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릴 적 그녀는 유약했지만 잦은 추심과 협박 과정에서 스스로 강해지고 결국은 누군가 죽여야만 살 수 있는 환경 속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마음 먹게 된다. 그 과정을 막는 어떤 것도 장애물에 불과하다. 이선균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이선균과 행복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게 진짜 감정이었는지, 가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자아가 붕괴되며 무기력해진다.
영화는 어려운 주제의식을 던지고 있지만 그냥 주위를 둘러보면 욕망을 드러내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욕망이 있고 그걸 표출하는 게 굉장히 건강하고 장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반대로 욕망이 없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점이 홍미롭게 느껴진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미덕인데, 그렇지 못한 일부가 침묵할 수밖에 없다. 3포, 5포 세대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희생양은 필요하고 영화는 길을 찾던 희생양이 끝끝내 무너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