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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Jul 20. 2024

지금은 멕베스를 볼 때.

애플 TV <멕베스> 


출처가 불분명하고 애매한 예언을 믿고 권력을 위해 무서운 일을 저지르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남자를 여자가 부추깁니다.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없는 왕좌를 탐하는 이들의 욕망은 결국 이들의 삶을 갈기 갈기 찢어놓게 되지요. 


아니 일요일 8시반의 스트레이트 내용이 아닙니다. 

애플TV에서는 조엘 코헨 감독, 덴젤워싱턴, 프란시스 맥도먼드 주연의 멕베스를 볼수 있는데, 이건 정말 짱입니다!! 


내가 본 멕베스 커플 중 최연장자인 덴젤 워싱턴과 프란시스 맥도먼드 


프로덕션의 모든 면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에겐 작품의 모든 레이어가 더 확실히 튀어오릅니다. 모든 에언은 듣는 사람들의 욕망을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든지, 내면의 공포와 불안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같은 점이 예전에 볼때보다 더 잘보이네요. 아무튼 지금은 맥베스를 봐야하는 때인 것이지요. 


1. 멕베스는 가장 많이 상연되는 세익스피어 극중에 하나입니다. 일단 햄릿의 절반정도되는 길이로 무대나 영화에 적당하다는 이유가 있겠고, 살인, 욕망, 예언, 자유의지, 권력욕 등등 뭔가 우리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소재인 점도 영향이 있겠죠. 


하지만 수많은 멕베스 영화 중에 ‘좋은’ 작품이 많이 떠오르지는 않네요. 음.. 지금 생각나는건 피가 뚝뚝 떨어지던 로만 폴란스키와 구로사와 아키라 정도? 저는 거미줄의 성도 상당히 좋아하지만, 영어 대사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얻고 있는 이익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냐하면, 




세익스피어의 대사들은 너무 훌륭하고, 너무 시적이고, 심지어 어떤 것들은 오페라 아리아 만큼이나 유명해서 돈을 쏟아부어서 만든 어마어마한 전쟁장면으로 영화적 스펙타클을 보여주다가도, 길고 아름답고 모든 관객들이 숨을 참게 되는 독백 장면에 이르면 금새 그 스펙타클의 쓸모가 무너지고 맙니다. 무대에 올려지건, 필름에 새겨지건 이 작품은 문학입니다. 이건 영화버전 맥베스가 갖고 있는 태생적 불리함입니다. 맥베스뿐만 아니라 좋은 세익스피어 영화가 그렇게 적은 이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조엘 코엔은 전쟁의 스펙타클을 포기하고 안개의 벽으로 꽉막힌 야외와 장식하나 없는 하얀 벽의 실내에서 현기증나는 폐소공포의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4:3 의 화면비 역시 판데믹의 신경증과 조바심처럼 관객을 옥죄어 오면서 (이제 4:3 화면비는 거의 정사각형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스크린이 허락하는 사실성을 포기하는 방향을 잡았고, 이것은 베르히만이나 오손웰즈, 쿠로사와를 불러내면서 독특한 느와르의 분위기를 드리웁니다. 


2. 검은 핏자국, 불길한 까마귀, 결코 잊을수 없는 느와르의 이미지가 될 마녀의 낮은 목소리만큼 인상적인건 두 배우 - 덴젤 워싱턴과 프란시스 맥도먼드입니다.


덴젤 워싱턴은 땅과 하늘과 안개속에서 불길하게 존재 속으로 조여드는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희생자이면서, 피를 씻을 수 없는 끔찍한 악당이며, 의심과 회의로 무너지는 지친 남자입니다. 초반에는 아내를 만족시키려고 안간힘쓰며 고통스러운 의심속으로 달려가는 오셀로처럼 보이고, 후반에는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리어왕처럼 보이는 면이 있는데, 다른 세익스피어의 영혼들이 스쳐갔다가 오는 모든 순간에도 그는항상 완벽한 맥베스 입니다. 무고한 왕과 순결한 잠을 죽이고, 예언에 의해 삼켜지는 고통스러운 영혼이 미국남자의 억양으로 이렇게 훌륭하게 드러날 줄이야!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레이디 멕베스는 단지 권력에 취한 야망의 여신이 아닙니다. 그녀는 사과를 먼저 먹는 에덴동산의 이브처럼 예언의 힘에 마음을 먼저 빼앗기지만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맥베스의 연인으로서 그에게 보장된 미래를 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자기 내면이 모두 부숴질때까지요. 




맥도먼드 여사의 얼굴에는 그녀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야망의 지옥같은 행군이 남편에 대한 애정이랄까,  하나밖에 없는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랄까 하는 식으로 터무니없는 순간에 말도 안되게 강해지는 어머니의 힘 같은게 있습니다. 미쳐서 돌아다닐때 폭발시키는 에너지도 좋았지만, 멕베스가 던컨을 죽이고 돌아왔을때 공모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둘 간에 느껴지는 단단한 결합의 느낌을 줄수 있는 레이디 맥베스는 그렇게 흔하지 않을 거에요. 그 공모의 단단한 느낌 때문에 이 결합이 깨지면서 각자의 지옥으로 외롭게 걸어가는 이 인간들의 아픔과 고통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아내의 죽음 후 묘하게 리어왕 연기 비슷한 것을 하면서 지치고 늙은 남자가 자살하는 느낌 비슷하게 힘을 완전히 빼버린 것도 좋았어요. 아아 그렇구나 역시 사랑이었나 하는 느낌이랄까. 


잠깐. 둘은 원래 사랑하는 사이인가? 다른 작품은 어땠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 부부의 관계에 이렇게 큰 관심을 두면서 이 작품을 본건 거의 처음이라는 점을 깨달았는데. 


3. 네, 앞부분에 언급하기도 했지만, 2024년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면 점쟁이가 대통령 된다고 했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권력을 탐하는 이 부부를 자동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김건희씨가 자기 남편에 대해 했다는 평가가 사실이라면, 왕좌는 절대 그들의 것이 되어서는 안됐을텐데요. 맥베스를 보면서 저는 그 부부가  16세기에 쓰여진 자기들 얘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여사님은 영화 속의 맥베스가아내가 죽고난 후에 거의 자살하는 느낌으로 죽음과 운명앞에 무기력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을 보면서는 또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무튼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는 이걸 보면서 맥베스의 진정한 교훈을 다시한번 마음에 새길수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교훈은


좋은 잠은 왕좌보다 낫다는 것이지요. 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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