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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Dec 18. 2020

<뻐꾸기 둥지 비긴즈, 래치드>

넷플릭스 대신 봐드립니다.


저는 저의 소중한 여섯 시간을 들여 라이언 머피의 <래치드>를 보았습니다. 물론 그러는 대신 책을 읽거나 일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주의 기도를 300번쯤 외우거나 108배를 108번 함으로서 저의 지성과 영혼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시간을 가질수도 있었겠지만... #오열


그리하여 어차피 이렇게 된거 공익에라도 복무하자는 뜻에서,  <넷플릭스 대신봐드립니다. 래치드> 편을 써보았습니다. 이걸로 감상을 대신해도 좋다는 글이기 때문에 당연히 스포일러 있습니다. 그러니, 넷플릭스에서 이것 외에는 더 이상 볼게 없기 때문에 반드시 봐야한다는 분들은 스포일러가 가득한 이 글을 읽지말고 드라마를 먼저 보세요!!


——-


AFI 에서 선정한 영화 100년 최악의 여성 빌런 1위는 <오즈의 마법사>의 서쪽 마녀입니다. 2위는 바로 오늘 얘기할 밀드레드 래칫.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의 새디스트 간호사 입니다.  래치드는 워낙 인상적인 캐릭터이고, 라이언 머피는 드라마 시리즈를 잘 만들죠. 어쨌든 이 기획은 꽤  기대와 관심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1. The good


                    왠지 모르지만 괜히 벌써 무서움. jpg


라이언 머피는 영상을 만들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작품은 <포즈> 와 <오 헐리우드>에서 자랑한 바 있는, 예쁜 옷 보여주기+ 햇살을 가득담은 아름다운 화면에 <아메리칸 호러스토리>에서 보여준, '왠지 모르겠지만 벌써 무섭다'의 느낌을 주는 그의 장기를 백분 살리며 시작합니다. 강박적으로 대칭에 집착한다든지, 극단적인 조명사용 같은 것도 - 왠지 모르지만 기분이 나쁘다. 는 무드를 만들어내는데 크게 일조합니다. 에피소드의 초반, 솜사탕 컬러의 의상과 자동차들과 함께 밝은 햇살 아래서 불길함을 그려내는 그의 재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주인공인 사라 폴슨은 훌륭합니다. 사실 원작의 래치드 간호사랑 그다지 닮았다고 생각은 안됐는데, 단호하고 새디스틱하고 엄격하지만 어마어마한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캐릭터를 더 잘할 사람도 별로 생각나지 않네요.


레즈비언 정치보좌관으로 나오는 신시아 닉슨은 우아하고 지적이며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기품과 의지와 지성을 가진 여성 캐릭터역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사실 좋은 결말을 얻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연인 고르는 취향이 그래서야 좋은 삶을 살긴 어렵겠죠. 어마어마한 부자 미망인으로 좀 기이한 인테리어 취향을 가진 듯한 샤론 스톤은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라이언 머피의 특수 재능 - 연약하고 부서질듯한 영혼을 가진 강철 근육 미남 신인배우 찾아오기-는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의 좋은 점은 이정도 인듯?


2. The bad


라이언 머피는 사춘기 시절 래치드 간호사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은밀히 키워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니발 렉터를 성적 대상화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래칫 간호사에게 보수적이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레즈비언적인 욕망을 탐구하게 하고, 의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고, 그녀의 헤테로 섹스는 엉망이어야 해. 라고 생각하며 파트너를 끔찍하게 죽여버리는 스토리를 머리속에서 꾸려나가는 사춘기 소년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수 있습니다. 누가 판타지 자체를 나무라겠어요?


그리고 오리지널 스토리가 바닥난 헐리우드에서 어중간한 창의력을 가진 작가들이 인상적인 악당들로 끊임없이 스핀오프를 찍어내는 것도 나무랄수 없습니다. 그런 작가들은 결국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겠지만 - 생각해보면 2016년의 미국인들은 영원한 여름이 왜 나쁜지 모르겠다며 지구 온난화를 기뻐한 적도 있는걸요. 사람들은 한치 앞을 못내다 보면서 게으르게 일하지요.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욕하기는 좀 애매합니다만..


라이언 머피는 무책임한 팬픽 작가가 아닙니다. 이제는 영상산업을 이끄는 파워 30인쯤 안에 가볍게 이름을 넣을 수 있는 그에게 산업의 종사자로서 원작과 캐릭터에 대한 약간의 존중심을 요구하는 건 무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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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치드 간호사는 순수악, 권력의 새디스틱한 속성, 억압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거의 원형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뻐꾸기 둥지..> 를 보면서 그 인물의 개인으로서 역사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걸 열심히 설명하는 척하는 라이언 머피 조차 그다지 궁금해하는 거 같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래치드 간호사를 보면서, 저런 여자랑 섹스하는 건 어떨까 상상하던 사춘기 남학생의 오래 이어진 음란한 상상들을 하나의 스토리 안에 우겨넣어 풀어낸 쪽에 가깝죠. 그렇게 보면 종잡을수 없는 스토리나 캐릭터도 좀 더 납득이 되는 면이 있습니다. 사춘기! 남자아이의! 판타지! 니까요.


이 작품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40-50년대의 정신 의학계는 어떨까요? 자신감과 혼란, 약물 과용과 인간의 지식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끌고가는 기이한 지옥은 탐구할만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겠지만 미친 정신과 의사 얘기를 하기 위해 꼭 래치드를 앞에 내세울 필요는 없겠지요. 하노버 박사의 이야기는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와 훨씬 더 잘 맞습니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의 스핀 오프인 <래치드>의 스핀오프인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 닥터 하노버 편>을 기다리는 복잡한 마음...


3 . The ugly.


이 드라마에서 밀드레드 래칫은 왜 저렇게 끔찍한 인간이 되었는가의 답으로 내놓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빅 스포일러 알러트)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밀드레드는 또 다른 위탁가정애서 함께 학대를 겪던 고아 에드워드를 만나고 둘이 의지하며 세상을 표류한다.


그러던 그 둘을 아끼던 복지사에 의해 서류상의 남매가 된 둘은 어느 부유한 위탁가정에 함께 맡겨지게 되는데, 그들은 지하 무대에 이 남매를 세우고 미성년자 남매인 둘의 *** 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돈을 받는 쓰레기들로.,.


!!!!!!


시리어슬리??? 이러깁니까 진짜???  이 비밀이 밝혀졌을때는 진심 토할거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비밀을 말하는 방식도 정말 불쾌했구요.


다시 말하지만 밀드레드 래치드는 이런 과거가 필요없는 악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거를 만들었으면 원작에 1그람이라도 보탬이 되야한다는 책임감을 좀 가지면 안됩니까? 여기까지 정말 가야하는 거였을까요? 최악의 여성 빌런인 서쪽마녀 조차 이것보다는 나긋나긋한 과거를 가졌는데요!


전 조커를 엄청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가 분노한 민중의 편으로 오인된다는 결말은 평범한 코미디언을 배트맨과 맞서 싸울수 있는 빌런으로 납득시키는데 중요한 포인트라고 느끼긴 했습니다. 그게 그 영화의 주인공을 파더컴에 시달리는 미친 코미디언 얘기가 아니라 배트맨의 숙적인 조커로 만드는 포인트겠지요. 래치드 간호사에게 끔찍한 과거를 줘서 원작이 얻는건 대체 뭐죠?


넷플릭스는 제작비를 주고나면 제작자들이 뭘 만들던지 개입을 안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제껏 그 결과가 나빴던거 같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영화사에 길이남을 명작을 어처구니없는 스핀오프로 망치려고 할때, 막을수 있는 브레이크가 정말 하나도 없어도 되는건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하는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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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원 모어 띵,


저 위의 어글리포인트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 작품의 매우 아름답지 않은 점 하나를 지적하기 전에, 여러분과 하나 약속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영상업계에 있건 그렇지 않건,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되더라도,


누군가가 익조틱해보이고 좋을거 같다는 이유로 샤론 스톤의 어깨에 원숭이를 올리려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반대하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그건 어느 경우에도 절대로 좋은 생각일수가 없어요!!


  보통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잠시 하더라도, 어깨에 원숭이를 올리는 순간 어이쿠, 하고 즉시 이건 아니란걸 알아차려서, 직업을 얻은 줄 알고 들떴다가 낙담한 원숭이 한 마리 분량의 불행 정도만 증가시키는 걸로 끝나는 게 대부분인데,  라이언 머피는 어째서 그걸 끝까지 몰랐을까요. 샤론 스톤에게나 그걸 보는 우리에게나 도무지 좋은 일이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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