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살아계셨다면

by 참울타리

1. 겨울 공기 속의 이름들


인천공항에 도착한 밤, 짐을 찾고 나오자 차창 너머로 겨울 공기가 스며들었다. 오래된 이름들이 떠올랐다. 한국에 올 때마다 마음속 명단을 꺼내든다. 이번에도 두 형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 분은 벌써 1년 전, 다른 한 분은 그보다 조금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그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두 분을 떠올리는 건, 아마도 아직 작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 따뜻했던 사람


내게는 한국에 올 때마다 꼭 만나야 할 두 분의 형님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 웃으며, 인생을 나누던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한 분은 췌장암으로, 또 한 분은 지병 악화로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중 한 분, 치과의사였던 형님은 참 따뜻한 분이었다.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그리고 좋은 친구였다.



3. 마지막 식사


미국행이 결정되던 날, 형님은 밥자리에서 축하를 해주셨다.

“가서 필요할 때 쓰라”며 내민 봉투가 참 따뜻했다. 늘 그렇게, 조용히 응원해주는 분이었다.


작년에 형님의 부고를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회식 자리에서 함께했던 식사가 마지막이었다 그날, 재수 중인 아들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겪을 수험의 고단함과 아버지의 걱정을 함께 이야기하던 모습이 아직 선하다.



4. 약속


아드님이 대학에 들어가면 작은 용돈이라도 전해주려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형님의 부재와 아이의 재수로 미뤄졌다. 공원묘지 앞에 서서 묘비를 바라보며 그 약속을 마음속으로 다시 되뇌었다.


그리고 올해 초, 형수님께 서울대 합격 소식을 들었다. 형님의 후배가 된 아드님을 생각하니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5. 그리움의 자리


한국에 들어온 김에 형님과 친했던 친구 한 분과 함께 아드님을 만나 식사를 했다. 작은 봉투와 손편지를 건네며 말했다.

“형수님께는 말씀드리지 말고, 꼭 필요한 곳에 쓰라.”


그런데 그날 저녁, 형수님께서 감사 인사를 보내오셨다. 메시지를 읽으며 웃음이 났다. 형님이 제게 베풀어주셨던 사랑에 비하면 그건 너무 작은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기억하고,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되돌려드릴 수 있다는 게 살아가는 맛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건 하나뿐이다. 형님과 함께 축하주 한 잔 나누지 못했다는 것. 친형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눴던 형님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부재가 남긴 빈자리는,

슬픔이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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