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몹시 차요.”
78세 아저씨는 들이쉬는 숨이 버거운 듯, 짧은 문장을 힘겹게 내뱉었다. 곁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따님이 말없이 서 있었다.
병동 내과의로서 익숙한 광경이다. 말기 폐암. 요즘은 면역치료가 개발되면서 ‘관리’할 수 있는 폐암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폐암은 예후가 좋지 않은 암으로, 암 사망 원인 상위를 차지한다.
왼쪽 폐는 이미 암으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고, 오른쪽 폐에는 재발하는 암성 흉수로 배액관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무섭도록 빠르게 진행하는 질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굴을 뒤덮은 산소 마스크에 의지해 겨우 숨을 이어 가는 아저씨는 언제나 그랬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곧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따님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비슷한 이유로 전에 입원하신 기록을 살펴보았습니다. 암이 계속 진행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종양내과 선생님과 암 치료 계획에 대해 이야기 나누신 적이 있으신가요?”
따님은 지난주 종양내과 의사를 만났고, 호스피스를 권유받았다는 이야기를 의외로 담담하게 늘어놓았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호스피스 치료가 어떤 것인지, 아버님도 혹시 따님도 잘 이해하고 계신가요?”
완화의료팀의 기록에는 그동안 아저씨의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를 위해 고군분투해 온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그것이 곧 환자와 가족의 완전한 이해를 의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환자가 스스로의 언어로 자신의 이해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아저씨의 의중이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다만 그는 지금 들이쉬는 숨, 내쉬는 숨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문득 그가 이 대화의 무게를 과연 어느 정도나 이해하고 계실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항생제, 스테로이드, 네뷸라이저 치료 등은 적극적 치료에 들어갑니다. 이미 암이 많이 진행했기 때문에, 이 치료를 한다고 해서 이번 위기를 적절히 넘길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환자분께서 어떤 치료를 원하시는지, 지금까지의 이해를 바탕으로 제게 원하시는 바를 말씀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님은 놀란 눈으로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스테로이드, 네뷸라이저 치료 같은 것도 적극적 치료에 들어가나요?”
나는 다시금 아저씨와 따님에게 적극적 치료의 범위에 대해 설명드렸다. 힘겹게 이어지는 아저씨의 호흡에 더해, 마치 내가 그를 고문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선 다 해 주세요.”
호스피스와는 반대되는 치료 방향이었다. 사실 아저씨의 이 바람은, 의료진이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적극적 치료 옵션이었지만, 환자가 저렇게 매달리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네, 원하시는 대로 우선 치료를 진행하겠습니다. 혹시 연명치료에 대해 전에 완화의료팀과 이야기 나누어 본 적이 있을까요?”
아저씨는 불안한 눈으로, 힘겹게 심폐소생술이든 인공호흡기를 다는 것이든 자신에게 모두 해 달라고 마지막 주문을 남겼다. 따님은 곁에서 조용히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대로 다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예후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심폐소생술은 아저씨 갈비뼈를 부러뜨리고도 결국 의미 있는 소생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공호흡기도 마찬가지로, 일단 달게 되면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떼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잔인하지만 필요한 말이었다. 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환자와 가족과 나누고 다시금 그가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었다. 일단 환자가 연명치료를 원한다고 밝히면, 어떤 의사 동료들은 이런 이야기를 꺼리는 편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조심스럽게 한 번 더 묻는 편이다. 내가 편하고자 환자가 끝까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 해 주세요.”
아저씨의 외마디에, 여기서 나의 역할은 일단 끝이 났다. 완화의료팀이 다시 와서 나와 똑같은 상담 과정을 거쳤다. 아저씨는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숨을 쉬지 못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포기되는 것 같다는’ 공포였다.
따님은 완화의료팀의 상담 도중, 이렇게 빨리 이별이 올 줄은 몰랐다며 말했다. 그날 상담 시간의 대부분은 그녀의 눈물로 가득했다. 결국 완화의료팀도 나도, 환자와 가족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기로 했다. 전략적 후퇴였다. 이미 긴 투병 끝에 지쳐버린 사람들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그의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를 병원에 입원시킨 지 하루 뒤, 환자와 가족들은 연명치료를 내려놓고 그의 마지막 길의 편안함을 택했고, 오늘 새벽 그는 가족들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의사는 때로 마지막 길의 곁에 서는 사람이다. 진료가 점점 더 세분화되고 파편화된 요즘, 암 환자가 삶의 끝자락에서 끝까지 함께 울어줄 종양내과 의사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항암 치료의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 그 이후의 시간은 종종 누구의 몫도 아닌 채 남겨진다.
그래서 이런 말기 암 환자들은 결국 병원으로 돌아온다. 입원이라는 형태로 다시 한번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 내가 한 일은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아저씨가 남긴 마지막 숨이, 조금은 덜 가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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