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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Jun 03. 2021

평온한 반지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6월 2일, 오후 8시 2분


 아주 오랜만에 잠을 푹 잤고, 일어났을 때 몸이 개운했다. 그리고 나를 반기는 건 촉박한 과제 마감시간. 그렇지만 차분하게 커피를 타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초연해진다. 조급해봤자 실수가 들어올 틈만 잔뜩 생기고, 좋은 쪽으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수없이 체득했기 때문이다.


 밥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냥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를 서너 잔 빠르게 비워내며 다행히 시간에 맞춰 과제를 끝냈다. 중간중간 동생이랑 장난도 치고, 동생이 구운 삼겹살도 뺏어먹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끝냈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요즘은 완벽함에 대한 마음이 희미해졌다. 당장의 나에겐 좋은 점이 훨씬 많은 듯하다.


 저녁엔 엄마가 지난번에 맞춘 커플링을 나 대신 찾아왔다. 실물로 보니 마음이 더 이상했다. 싫은 건 아니고, 그냥 좋으면서도 먹먹한 그런 기분. 그리고 곧 들떴다. 반지 사진도 찍고, 엄마와 같이 반지 낀 손가락을 맞대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엄마가 사진 찍기 편하게 해주겠다며 반지의 위치를 조정하기도 했다. 기분이 좋은 걸 표현하는 엄마만의 방식임을 알았다.


 그날 같이 주문했던 내 귀걸이에 작은 문제가 있었다. 짜증이 날 법 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했다. 문의를 남겼다. 문제가 있는 귀걸이를 일단 착용하고, 일주일만 기다려주면 교환해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오늘은 문제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평온하고 차분하게 해결되는 날인가 싶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수박을 먹을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노트북 타자를 칠 때에도 왼손에서 반지가 반짝인다. 귀걸이는 거울을 통해서야만 볼 수 있지만, 반지는 의도하지 않아도 눈에 걸린다. 반지가 평온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응원을 보낸다. 무언가를 더 이루고 싶은 욕심이 갑자기 스멀스멀 올라온다. 엄마의 일상에서도 반지가 시야에 걸릴 텐데, 그때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요즘 탈 많은 엄마의 직장 생활에서 내가 선물한 애정이 응원이 되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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