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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Jun 08. 2021

교차로에 머무르기

오늘의 눈감기

2021년 6월 7일


 하루가 극단적으로 짧아졌다. 지난 새벽, 엄마가 응급실에 다녀오길 기다린 탓에 아침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다행히 별일 없었으나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새벽의 경험이다.


 아침에 잠들었으니 당연히 일어난 시간이 저녁일 수밖에. 바깥의 상황이 어떻든 내 하루는 아주 느리게 흘러가다 고여버렸다. 아침 같은 저녁을 먹고서도 정신은 아직 꿈속에 머물러서 거의 곧바로 또 잠에 들었다.


 다음날로 넘어가기 거의 30분 전에야 눈이 제대로 떠졌다. 그니까 내게 오늘은 사실상 내일과 같은 시간이었던 셈. 누군가 빠르게 넘어가버린 교차로에 나 홀로 머물러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교차로에 홀로 머물고 있다. 어제 같은 오늘을, 오늘 같은 내일을 사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뒤로 밀린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은 조금 더 이 시간의 교차로에 머물러도 되지 않을까. 눈뜨면 다시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겠지만. 이 시간의 교차로에서도 결국 나는 흐르고 있으니까.


 주말에 자르고 온 짧아진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 넘긴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과 익숙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눈다. 고여있는 동안에도 나는 몇 번이고 달라진다. 그래도 내일은,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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