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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Jun 09. 2021

마지막 장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6월 8일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났다. 그래도 저녁에 가까운 시간임은 변하지 않는다. 2시간 이른 시작은 하루가 좀 더 길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밥도 먹고, 간식도 잔뜩 먹고, 여러 잡다한 일을 했는데도 가족들이 자러 갈 시간이 아니라는 게 조금 어색했다.


 침대 위에 엎드려서 얼마 남지 않은 책을 읽었다. 대략 한 달 전쯤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데, 전공책만큼이나 두께가 엄청나서 언제쯤 다 읽을 수 있을까 속으로 가늠해봤었다. 매일매일 10페이지, 많으면 더 많이 꼬박 읽다가 오늘 드디어 마지막 장에 도착했다. 맨 마지막에 찍힌 온점까지 읽어냈을 때 느낀 성취감이란. 


 이 두께의 이야기를 다 읽어내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작가의 말에서 이 두께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데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과 읽어내는 일에 걸리는 시간은 참으로 불공평하다. 누군가가 고뇌하며 완성해낸 시간을 비교적 짧은 노력을 들여 마음에 옮겨올 수 있다는 게 묘하다.


 문득 내가 지금까지 해온 과제들, 어떤 업적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많은 것들에 들인 시간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옮겨갈까. 옮기는데 걸린 시간은 짧아도, 그 후에 남을 시간은 훨씬 길다는 걸 아니까, 모쪼록 그들에게 나의 흔적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일을 잘 벌리고 마무리에 약한 내가 두터운 책의 마지막에 도달한 것처럼 다른 일들도 이렇게 잘, 마지막 장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늘 ~하면 좋겠다로 귀결되는 문장이 ~했다로 끝날 수 있게 내 시간을 좀 더 넣어야겠지만.


 오늘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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