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새우 토마토 파스타
2020년 10월 6일, 오전 2시 59분
잠자리에 누웠는데 생각이 하나둘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위험신호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마침 배도 출출하겠다,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떠났다. 엥엥대며 내 주위를 맴돌던 모기도 나더러 움직이라 재촉했다.
라면을 끓일지, 소스를 새로 산 김에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지 고민하다가 후자로 결정했다.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튼 후, 면을 삶고 양파와 마늘을 쫑쫑쫑 썬다. 베이컨이랑 새우도 손질한다. 삶는 사이 아차차, 면이 조금 탔다. 재료도 볶다가 조금 탔다. 소스만 넣으면 되는데 어라, 안 열리네. 한참을 씨름하는데도 열리지 않아 당황한 사이 잠에서 깬 엄마가 나온다. 엄마에게 뚜껑을 열어달라 부탁했지만 여전히 꿈쩍하지 않는다. 별짓을 다하다 손목이 얼얼해질 때쯤 마지막으로 시도해본 뜨거운 물 붓기로 간신히 성공해서 파스타 만들기가 겨우 끝났다.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시기. 매일 하루를 문장으로 만들어내다 보면 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최근의 나는 조금 방황 중이다. 요리를 하며 생각도 정리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이마저도 실패다. 그냥 라면을 끓였어야 했나, 잠깐 후회가 스친다.
베이컨의 흔적은 쪼그라들어 사라져 버렸고, 파스타의 맛은 조금 짜다. 손목도 약간 시큰거린다. 그래도 매콤하니 나쁘지 않다. 새우도 탱글탱글 잘 익었다. 자는 줄 알았던 동생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문 열고 나와 한 입 먹고 들어갔다. 과정도 결과도 생각과 달랐지만, 그래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마늘을 먹고 싶은 만큼 왕창 썰고, 손가는대로 조리하고 설거지하는 모든 과정에 갑자기 찾아온 생각들을 같이 쓸어 넣었다.
두 번째 파스타 도전치고 괜찮다. 오늘의 생각과의 전투 결과는 사실 패배에 가깝지만, 내가 발버둥 쳐 얻은 것도 많다. 결정타가 되지 못해 수포로 돌아간 모든 공격들은 레벨업은 할 수 없어도 다음으로 나아갈 경험치가 되었다. 내 다음 파스타는 오늘보다 덜 짤 거고, 베이컨의 형태는 더 살아있을 거고, 소스 뚜껑은 더 쉽게 열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