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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 살로메 Feb 18. 2022

맨해튼의 반딧불이

당신이 보았을 반딧불이를 추억하며

뉴욕의 노란 택시와 라디오 시티


10여 년 전 겨울, 나는 미국으로 40여 일 여행을 떠났다. 크리스마스 전후였다. 마침 친척동생 P가 맨해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의 아파트에 머물 계획이었다. 물론 뉴욕에서만 지낼 생각은 아니었다. 동부에 계시는 이모 댁에도 들르고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문도 만날 예정이었으니까.


훗날 되돌아보면 그때 조금 무리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꼭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컸기에 (아마도 맥컬리 컬킨이 출연한 '나 홀로 집에' 영향이 컸겠지.) 당시 담당하고 있던 대학 토론 프로그램을 급히 마무리 짓고 비싼 비행기 티켓 값을 지불하며 뉴욕으로 향하였다.




동생 아파트에서 바라본 뉴욕의 밤 풍경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미국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은 내게 이상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주 오랫동안 그 도시에 살았던 것만 같았고(이런 느낌은 몬트리올에서도 계속되었다.), 그 골목들과 도시의 불빛들 그리고 큰 쥐가 예고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더러운 지하철까지도 친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동생이 출근을 하고 나면 혼자 아파트를 나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Good Morning.'

'How are you?'

'Have a nice day~'


같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올법한 인사를 이웃들과 나누며 하루를 맞이하곤 했다.

아! 그리고 친척동생 P가 살던 아파트 바로 옆 건물에는 조그마한 스타벅스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하루의 일과 계획표를 작성하고는 했다. 맨해튼 지도를 펼치고 갈 곳들을 정하였다. 커피의 맛 같은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본 뉴욕의 야경


요즘은 손보미 작가의 소설들을 읽었는데 그중에서 '맨해튼의 반딧불이'를 읽으며 나는 그때의 뉴욕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 내게 맨해튼은 친숙한 동네 같기도 하면서 아주 낯선 꿈결 같기도 했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그 저녁.


멀리서 반짝이는 높은 빌딩들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무섭지 않았고 그렇다고 낭만적이지도 않았던 이상한 풍경과 그 밤들이 여전히 나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적막한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건너가면 마치 부모님이 사는 서울이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어린 시절 꿈속에서 쓸쓸하게 비행하던 동네가 나올 것도 같았다.



어느 날 뉴욕의 푸르고 푸른 하늘 그리고 초승달


뉴욕을 떠난 후 나는 그곳이 그리워서 맨해튼이 배경인 영화들을 찾아보곤 하였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들은 역시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었다. 특히 '맨해튼'과 '애니홀'. 어쩜 뉴욕은 이토록 한결같을까. 영화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도 같다. 그곳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층층이 쌓여있었다.


그래, 바로 그런 곳이 뉴욕이다.


지금은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하였을 '뉴욕'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없을 것만 같다. 오랜만에 나는 추운 겨울 깜깜한 센트럴 파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미처 보지 못한 반딧불이들을 생각한다. 아마 어쩌면 누군가는 보았을 반딧불이를.  당신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을 그 불빛들이 오늘은 유독 그립다.


뉴욕 센트럴 파크를 거닐다가 발견한 불빛들


그런데 우연히 이 글을 정리하면서 그때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센트럴 파크 허공에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맨해튼의 반딧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날 어둠속에서 마주한  반딧불이였을까?


(. 그런데 문득 반딧불이는 여름에   있다는 이야기가 언뜻 생각나서 찾아보니 역시 겨울에는 빈딧불이를   없다고 한다. 그럼  불빛은 무엇이었을까?)


* 읽은 책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넘기지 못한 페이지>


지난해 여름 나는 뉴욕에 혼자 머물렀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고 열흘 남짓. 뉴욕은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혼자 간 건 처음이었다. 물론 열흘 내내 혼자는 아니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나와 놀아줬다. 뉴욕에서 머무는 마지막 저녁, 나는 홀푸드마켓에서 구입한 샐러드와 음료수를 들고 혼자서 센트럴 파크에 갔다. 해가 지면 공원 안 풀밭에 앉아 있으면 안 되는 그런 법이라도 있는 건지, 사람들은 거의 철수를 한 후였거나 철수 중이었다. 결국에는 나만 혼자 덩그러니, 풀과 나무 사이의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서 샐러드와 음료수를 먹게 되었다. 내가 머무는 동안 뉴욕의 여름은 아주 선선했고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불었고, 커다란 나무에 붙어 있는 잎들에서 우수수 소리가 났다. 나는 천천히 샐러드를 씹으면서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눈앞에 어떤 불빛들이 깜빡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저게 뭐지? 나는 안경을 고쳐 썼다. 넓은 풀밭 곳곳에서 무언가 작은 불빛이 퐁퐁퐁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 저게 뭘까?
그건 반딧불이였다.

그때만 해도, 그러니까 지난해 여름만 해도 내가 이제껏 쓴 짧은 소설들을 책으로 묶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어떤 순간들은 그런 식으로 퐁퐁퐁. 거리면서 부지불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고,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그런 순간들을 하나쯤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그런 마음이 든다.

- 맨해튼의 반딧불이 <작가의 말> ㅣ 손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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