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한다는 것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차'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교쿠로'!!! 라고 답할 것이다. 교쿠로를 처음 알게 된 건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본 티 코스 자리에서였다. 차를 머금는 순간 입안으로 퍼지는 감칠맛 '우마미'가 강렬하고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차에 대하여 잘 모르는 나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 알게 되었다. 앞으로 가장 좋아하는 차는 '교쿠로'가 될 것이라는 걸.
일명 차린이인 나는 그 이후로 차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게 되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차' 역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세분화되고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그렇게 책을 읽던 어느 날 우연히 '잇포도'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잇포도(IPPODO)'는 교토에 본점을 둔 약 300년 된(1717년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일본 전통 찻집이다. 책에는 일본 차(교쿠로, 센차, 호지차, 마차) 등을 재배하는 과정과 차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차문화까지 섬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던 당시에는 아직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절이어서 먼 훗날 해외여행이 다시 자유화되면 꼭 교토의 '잇포도'를 찾아가 보겠노라 다짐했다.
사실 그 이후 '잇포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졌다. 국내 저자들이 출간한 훌륭한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내 저자들이 소개하는 차들을 마셔보았고 코로나가 감소하던 작년 11월, 단풍을 보기 위해 즉흥적으로 교토여행을 떠났다. '잇포도'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이었을까. 내가 묵게 된 호텔이 잇포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교토에 도착한 첫날 구글맵을 켜고 잇포도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에 도착한 나는 '교쿠로'를 주문하였다. '프리미엄'이란 글자가 붙은 교쿠로였다.
'와~!'
한국에서 마신 교쿠로와는 또 다른 우마미가 느껴졌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쿠로'구나. 혼잣말을 하며 차를 마셨다. 카페인 때문인지 몇 번 리필을 하자 머리가 핑그르르 어지럽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교쿠로는 워낙 호불호가 강한 차이지만 내게는 언제나 '극호'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나는 가게를 나올 때 매니저님께
'오늘 제가 마신 차가 무엇인가? 그 차를 사고 싶습니다.'
라고 적힌 구글 번역기를 내밀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프리미엄 교쿠로'라고 적힌 차를 내밀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남편에게 이 차를 소개했다. 남편은 인상을 찌푸리며
'향이 너무 강하잖아.'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는 국내 일본 차 티코스에서 배운 대로 차를 우리고 남은 교쿠로에 들기름을 뿌려 남편에게 건넸다. 일본에서는 차를 우리고 남은 교쿠로에 이처럼 들기름을 부어 나물처럼 음미한다고 한다. 차 한잔에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나는 왜이토록 교쿠로가 좋을까. 가장 좋아하는 건 언제나 독보적이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이유가 없을 때도 많다. 무언가가 정말 좋을 때 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좋아하는 것, 꽃이 이유 없이 좋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계절과 같이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
'교쿠로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한 아직은 불행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