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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타강 Dec 12. 2020

닫았다 열까 열었다 닫을까

읽은지 30년쯤? 된 책. 10여 년의 청소년 상담 경험을 저자가 글로 엮은 것인데, 대부분 사랑 타령이다. 저자는 '상담가가 쓴 사랑론'이라고 주장. 약속 시간이 남아 서점에서 시간 때우던 중 경기고, 서울대라는 엘리트 코스의 선입견과는 달리 매우 친근한 인상의 저자 사진에 끌려 선택했던 기억이 난다. (고3 담임 선생님과 매우 흡사했음)


가벼운 마음으로 고른 책이었지만 어린 나에게 삶의 방향성? 같은 걸 보여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무슨 터닝포인트씩이나 되는 건 아니고. 이 책을 보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는 나로 살았지만 가슴 한 켠에 남아서 이따금씩 되새기는 정도?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다 얼마 전 고향 집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냉큼 집어왔는데, 너무 더러워서;; 다시 읽을 생각을 못 하고 있다가 중고로 다시 구입.


이 책의 제목은 잘 모르는 남자의 고백에 망설이는 여자 상담자에게 일단 마음을 열어서 만나본 후, 마음을 닫을지 말지 결정하라는 조언을 준 상담 사례에서 가져온 것이다. (상담 쉽구나-_-)


실패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일을 벌이지 않는 것, 즉 실패를 두려워만 하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음을 말해주는 사례인 듯.


1. 사랑의 이론

2. 만남, 그 힘겨운 출발과 험난한 여로

3. 사랑의 아픔, 그리고 이별

4. 자신을 향한 사랑

5. 사랑의 언어

6. 사랑에 관한 단상

7. 젊음, 그 혼란이 시절

8. 풍요로운 청춘기를 위하여

9. 부모님, 이제는 작별해야 할 분들

10. 필자의 삶과 바람


'사랑론' 답게 총 10개의 주제 중 반 이상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사랑론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용불용설(用不用說)'.

사랑은 '능력'이다. 자전거를 배운 사람만이 자전거를 탈 줄 알듯이, 사랑의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21페이지)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라고.

나 자신과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 성공한다면 누구를 사랑하는 일에서도 성공할 것이지만, 만일 그 일에 실패한다면 누구를 사랑하는 데도 실패하리라. (23 페이지)


남녀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철학적 얘기지만 일반적으로 해석하면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연애도 해본 놈이 잘한다는 얘기.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매우 공감이 간다. 슈퍼카 있으면 뭐하나. 평소 티코라도 몰아봤어야 운전을 하지. 노희경 작가가 얘기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연애 고자 되기 싫으면 평소 재지 말고 연 닿을 때 부지런히 사랑들 하시라. ㅜㅜ 


전체적으로 상담자들,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고 도움을 주고자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술술 읽힌다. 책 곳곳에 배인 유머덕에 일면식이 없음에도 저자의 낙천적이고 유쾌한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저자의 조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정리하면,


좋은 배우자는 코드가 맞는 사람

들어도 들어도 수다가 질리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와 같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또 내가 수다를 떨게 되는, 그런 사람이 당신의 올바른 짝 (73 페이지)


빨리 뜨거워지면 빨리 식는다

육체 관계의 진도에는 뒷걸음질이 없다 (92 페이지)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때 둘이 함께면 더 행복할 수 있다. 사랑을 외로움으로부터의 탈출구로 삼지 말자.

혼자서도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 누군가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없으면 못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으면 더 행복하니까' 그를 만나는 사람이 되자. (123 페이지)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상대방이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철수 씨는 왜 그렇게 신용이 없어요?' 보다는 '철수 씨, 30분이나 늦게 왔어요' 이런 식으로 표현 (171 페이지)


단적인 사건 하나를 가지고 상대방의 됨됨이나 성품을 퉁치지 말고, 현재 행동이나 상태에 대해서만 얘기하라는 것. 예전에 '비폭력대화'란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뜻밖에도 그 책이 주장하는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 '비폭력대화'는 비폭력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NVC(NonVoilent Communication) 모델의 네 단계를 소개한다.


1. 구체적 행동을 관찰한다.

2. 관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다.

3. 그 느낌을 일으키는 욕구를 찾아낸다.

4.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


'여태 청소 안했냐, 이 게으름뱅이야' 보다는 '네가 청소를 안해서 내가 마음이 안 좋다' 식으로, 한마디로 상대방을 관찰한 후, 옳다 그르다 식으로 평가하지 말고 느낌을 전달해야 하며, 이후 나의 욕구를 강요나 명령이 아닌, 부탁을 해야만 서로 상처를 주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폭력적 대화를 중지할 수 있다는 것.


두 책의 출간 시기 차이가 매우 큰데 기술하는 내용이 너무 비슷해서 신기했다. 표절은 아닐테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나 보다. 아니면 뭐 심리학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이론이거나.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대화에 사용하면 좋을 듯. '비폭력대화'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하지만 헤어진 전 여친 빌려줘서 망함. 물론 나도 빌렸다 안 돌려준 책 있으니까 쌤쌤(..) 그 외에도 좋은 구절이 많다. 몇 개 더 꼽아보자면,


모두 이런 마음이라면 이 세상은 천국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과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 (200 페이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을 꼭 오늘 하려 하지 마라

모든 인간사는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되는 일', '내일로 미루어야만 되는 일'로 나눌 수 있다 (251 페이지)


자녀가 미성숙할 때 더 친하다는 것은 동등 인격으로 보지 않기 때문?

자녀가 어렸을 때는 기본적인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엄하게 다스려야 하고, 자녀가 커가면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많이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보통은 그 반대 (300 페이지)


어렸을 때 이 책을 보면서 나중에 왠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 적당한 힐링과 함께 저자가 상담 경험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들이 피부에 와닿는 책이 아닐까 한다. 절판이라 좀 아쉽다. 저자분이 개인 카페도 운영하는데 좋은 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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