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는 불가능합니다

나에게 다짐하는 글쓰기

by 한여름

국민학교 방학 일기는 개학 하루 전날 한 달 치를 몰아 썼다. 손가락은 저리고 어깨가 부러질 것 같고 급기야 지쳐 졸릴 때면 마지막 주 일기는 매일 같은 문장으로 끝냈다


" 참 재미있는 하루였다."


재미없는 일기를 읽고 "방학 동안 숙제하느라 수고했어요"라고 적어주셨던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다.

방학 일기 다음으로 내 글쓰기는 회사 이메일이 전부였다. 27년이나 썼으니 내공이 좀 쌓였다 싶었는데, 글쓰기를 배우면서 그동안 얼마나 읽기 싫은 이메일을 많이 보냈는지 깨닫게 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때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 쓰기}를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다수에게 보내는 이메일일수록 설명에 설명을 보탠 수많은 수식어들이 자꾸 들어가서 길어지던 내 메일은 읽히지도 않고 지워졌으리라.


"조직에서 일한다고 해서 조직처럼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조직도 온기를 띨 수 있고 관리자도 인간이 될 수 있다. 명료하게,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 p.193 비즈니스: 업무와 관련된 글쓰기)


출간한 지 50년이 되는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 쓰기}는 잘 정리된 가이드 북이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글을 썼지만, 재미없는( 혹은 관심을 못 받고 있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다시 읽어야 한다. 목차만 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으로 글쓰기가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원칙을 익혔다면 실전에 적용, 글쓰기도 운동처럼 해야 하는 것이다. 운동처럼 시간을 정해두고 하면 잘 되려나? ( 이것도 아직 생각뿐이다.)

윌리엄 진서 교수의 수업은 어땠을까? 책을 읽다 보니 그의 수업이 궁금해졌다. 그는 명료한 평서문만을 쓰는 배우다가 긴 글을 구성하는 방법을 소홀히 하는 것을 보고, 글을 전혀 쓰지 않은 실험적인 글쓰기 수업을 한다. 각자가 쓰고 싶은 장소에 대해 '왜'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쓰고 싶은지 이야기해보는 것이었다. 특정한 장소는 그의 교육적 장치일 뿐, 글을 쓰게 하기 전에 주제에 관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게 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 수업을 들었던 한 변호사는 수업 후 3년이 지난 1996년에 그에 전화를 걸어 글을 완성했다고 말해주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도 학생도 얼마나 진지하게 글쓰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p296~301. 최종 결과물의 횡포}


친절한 글쓰기 가이드 윌리엄 교수는 말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편한 길을 가야 한다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그 길은 대개 논픽션이다. 논픽션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관찰할 수 있는 것, 발견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쓸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자기 삶과 관계가 있거나 자기에게 맞는 주제에 대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쓴다.(p.100. 문학으로서 논픽션, [글쓰기 생각쓰기])


글이 안 써질 수도록 자신감을 잃던 나에게 좀 위안이 되었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주제에 쓰자 생각하며 브런치에 '오늘의 커피'를 연재하면서 글 쓰는 재미가 생기기 시작하겠다. 일주일에 몇 편씩 쓰게 되었다. 아직 완성 못한 글은 서랍에 모아두었다. 한식요리 학원을 다니면서 요리에 대한 글도 서랍에 쌓이기 시작했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훌륭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더라도 글쓰기의 지름길이나 속성코스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농사나 운동처럼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글쓰기다. 로또를 맞은 벼락부자는 있어도 벼락 작가라는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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