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소설가를 꿈꾸고 있나요

by 한여름

고3 아들의 생기부에 적혀 있는 장래희망이 회계사, IT 연구원, 프로그래머였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게임을 즐기는 걸 보면 IT 연구원이나 프로그래머는 그럴 듯했는데 회계사는 낯설다. 아들에게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언제 했던가. 분명 중학교때까지 그의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디자인하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온갖 도구들을 사달라고 했을 때 부모로서 기대가 컸다. 그 꿈이 언제 회계사로 바뀌었을까. 대학 입시를 위해서 미술학원에 등록했다가 두 달 만에 관두면서,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겨두고 싶다고 한 그 때 이후 인가 싶다. 아들은 벌써 직업과 꿈을 분리한 것인가.


나에게도 아직 여러 꿈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 된 꿈은 소설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울산시에서 주관하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 글은 수필이었지만 소설이었다. 제목은 “나무”. 우리 가족은 양옥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나는 주인집 딸인 것처럼 마당에 있는 나무 이야기를 지어냈다. 당시 작업복을 만드는 봉제 공장에 다니시던 새벽같이 나가시던 엄마, 버스 운전을 하시던 아빠 덕분에 온 가족이 모두 같이 밥 먹는 일이 드물었던 나는, 상상 속에서 퇴근길에 아빠가 사 온 나무를 심고 온 가족이 함께 저녁 먹는 장면을 그럴 듯하게 썼던 것 같다.


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대학원까지 갔지만, 소설가가 되어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꿈이 직업이 될 수가 없겠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셈이다. 졸업할 때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인문학도의 사회적인 효용성을 입증해보자는 쓸데 없는 사명감으로 테헤란 로의 수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그 숫자만큼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 당시(IMF시기 였슴) 나의 꿈은 어디든 취직을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88만원 짜리 인턴으로 임시 취직이 되었고 운 좋게 정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서른 여덟 살이 되면 회사를 관두고 소설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소설은 커녕 육아일기도 한 장 안 쓰는 피곤한 직장인으로 27년을 살아 내었다.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고 첫 수업을 가는 길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가는 만큼 설렜다. 아주 오랜만에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진 느낌이다. 60살에 첫 장편소설을 출간하면서 등단한 마쓰이에 마사시와, 1931년생으로 90세 중반의 나이에도 글을 쓰는 소노 아야코를 보면서, 나는 소설가의 꿈을 꾼다. 심지어 등단한지 10년 이내 작가는 “젊은 작가”로 불린다고 하니, 될 수만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지는 좋은 직업이다.